노숙인은 '노숙인 진료 시설'로 지정된 병원만 이용해야 하는데, A 씨가 사는 대전에는 노숙인 진료 시설이 없었던 탓이다. 치료를 받으려면 한 시간 넘게 떨어져 있는 공공 병원인 천안의료원을 이용해야 했다.
건강보험 환자가 아닌 노숙인이 지정된 병원을 이용하지 않으면 진료비는 환자가 100%를 부담하는 '비급여'로 처리된다. 일반 건강보험 환자보다 몇 배나 비싼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A 씨는 결국 치료를 포기했다.
"노숙인 지정 병원 턱없이 부족…일반 병원 가면 전액 자비 부담해야"
2011년 6월 제정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의료 급여 대상자에 포함된 노숙인은 '노숙인 1종'으로 분류돼 노숙인 진료 시설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 본인 부담금이 면제된다. 문제는 노숙인 진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동익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노숙인 진료 시설 지정 현황을 보면, 전국 248개 노숙인 진료 시설 가운데 1차 의료 기관 220곳(88%)은 전부 보건의료원, 보건소, 보건지소 등 공공 기관이었으며, 2차 기관 28곳(12%)은 국공립 병원이었다.
최 의원은 "현행법상 관내 국공립 병원, 보건소, 민간 의료 기관과 협의해 노숙인 진료 시설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노숙인 진료 시설로 지정된 민간 의료 기관은 0%였다"고 밝혔다.
"응급 상황 때 치료 지연되기도…노숙인 진료 시설 지정제 폐지해야"
특히 노숙인 응급 환자를 다룰 수 있는 2차, 3차 의료 기관이 전국적으로 부족한 문제는 심각했다. 광주, 울산, 충북, 경남에는 지정된 의료 기관이 단 한 곳도 없었으며, 대전은 유일하게 한 병원이 노숙인 진료 시설로 지정받았으나 그마저도 정신병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숙인이 응급 상황에 처해도 다른 지역 공공 병원으로 이송되느라 치료가 늦어지기도 한다. 최 의원은 "새벽 6시에 울산에서 노숙인 응급 환자가 있었지만, 수술할 곳이 없어 부산의 노숙인 진료 시설까지 이송돼야 했다"며 "이러한 사례가 울산에서만 올해 들어 5건이나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최 의원은 "노숙인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외 계층이고, 평소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2011년 법 개정 과정에서 노숙인 의료 급여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며 "노숙인 진료 시설 지정 제도를 폐지해 노숙인도 다른 의료 급여 환자들처럼 가까운 병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 의원은 "만약 노숙인이 일반 병원을 이용하도록 하기 어렵다면 지역에 있는 모든 국공립 병원을 노숙인 진료 시설로 지정해야 한다"며 "노숙인 진료 시설이 없는 시도에는 국공립 대학 병원이 다수 있지만, 이를 노숙인 진료 시설로 지정하지 않아 노숙인이 병원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 성탄절 전날 행사에서 나눠준 도시락을 계단에 앉아 먹고 있는 서울역 인근 노숙인들. ⓒ연합뉴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