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선 직후 인수위원들 중 일부가 기초연금 재원 가운데 30%를 국민연금 기금에서 끌어다 쓰겠다는 구상을 언론에 흘리면서 논란이 되었고요. 다른 하나는 역시 인수위가 국민연금 수급자들에게는 기초연금을 적게 주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이것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습니다. 국민연금 폐지 서명 운동에 수만 명이 참여했고요. 꾸준히 증가하던 국민연금 임의가입자 수도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2.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대선 직후 인수위원들 중 일부가 기초연금 재원 가운데 30%를 국민연금 기금에서 끌어다 쓰겠다고 했는데요. 이것이 논란이 되자 박 대통령이 지난 1월에 기초연금 재원은 전액 세금으로 충당한다고 정리하지 않았나요?
⇨ 지난 1월에 박 대통령이 그렇게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2월 19일 일부 언론이 입수하여 보도한 인수위 문건에는 그와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기초연금 도입 관련 인수위 최종안 개요'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는 기초연금 재원의 12%(1안)~22%(2안)를 국민연금 기금으로 충당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3. 또 일부 언론이 입수한 문건에는 국민연금 급여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기초연금을 적게 주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나요?
⇨ 이 문건에 따르면 인수위는 수혜 대상을 4가지로 나누어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고자 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소득 하위 70% 계층 중 국민연금 미가입자에 대해서는 월 2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소득 하위 70% 계층 중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해서는 월 14만(10년 가입)~18만5000원(40년 가입)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셋째, 소득 상위 30% 계층 중 국민연금 미가입자에 대해서는 월 5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넷째 소득 상위 30% 계층 중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해서는 월 4만(10년 가입)~8만 5000원(40년 가입)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4. 인수위 최종안을 보면 역차별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 국민연금 미가입자만을 보아도 소득 상위 30%와 하위 70% 경계선에 따라 전자가 5만 원을 받고, 후자가 20만 원을 받게 됩니다. 경계선 주변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역차별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11년 국민연금 중 노령연금 수급자 1인당 연금은 28만 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불입액과 무관하게 주어지는 기초연금이 소득 상위 30%와 하위 70% 경계선에 따라 15만 원의 격차를 보인다면 이것은 상당히 심각한 역차별에 해당합니다.
5. 인수위가 이렇게 수혜 대상에 따라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고자 한 것은 재원 문제 때문이겠지요?
⇨ 재원 문제가 가장 컸을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한 대로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게 월 20만 원씩 노인연금을 지급하려면 연간 10조 원 이상의 추가 재원이 필요합니다. 인수위가 이것을 7조 원 규모로 낮추려다 보니 계층별 차등 지급을 모색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저런 미봉책이 나왔습니다.
6. 일부 학자들은 인수위가 대선 때 공약한 대로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게 월 20만 원씩 일률적으로 노인연금을 지급했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한 달에 1인당 200만~300만 원을 연금으로 받아가는 특수직역연금 수급자들에게도 월 20만 원씩 일률적으로 노인연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겁니까? 또 국민연금 수급자들의 수급액도 개인별로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11년 국민연금 노령연금 수급자는 모두 249만 명이었는데 이 중 월 10만 원 이하 수급자가 11만 명, 10만~20만 원 수급자가 102만 명이었습니다. 반면 70만~100만 원 수급자도 12만 명, 100만 원 이상 수급자도 2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인수위가 소득에 따라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려 시도한 것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노인들의 전체 소득에 연계하지 않고 국민연금 수급액과 연계했다는 것입니다.
7. 기초연금 논란이 가속화되면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별개의 제도로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양자를 결합해서 운용할 경우와 분리해서 운용할 경우의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양자를 결합할 이유는 없습니다. 미래에 고갈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국민연금 기금을 헐어서 기초연금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또 역차별 문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국민연금 수급액과 연계할 이유도 없습니다. 또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양자를 결합해서는 안 됩니다.
8.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대안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보험료를 대폭 올리는 것, 다른 하나는 수급액을 낮추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국고보조금을 늘리는 것, 물론 이 세 가지는 적절하게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현행 기초노령연금제도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첫째,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면 국민연금 수급액을 다소 낮추어도 국민들 불만이 커지지 않습니다. 기초노령연금이 차액을 보충해 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초노령연금이 확대되고 국민연금 수급액이 다소 낮춰지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과도하게 인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셋째,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고 국민연금 수급액을 다소 낮추면 국민연금 기금을 과도하게 적립하지 않아도 됩니다.
9.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일부 학자들은 국민연금 수급액을 다소 낮추는 개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 국민연금 수급액을 다소 낮추는 대신 기초노령연금 확대로 공공연금 수급액 총액 감소를 막고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일부 학자들도 이런 총체적 개혁에 찬성할 겁니다.
10. 관건은 기초노령연금이 충분히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현행법에도 2028년까지 기초노령연금을 A값(국민연금 가입자의 월 평균소득)의 5% 수준에서 10% 수준으로 확대하도록 하는 규정이 들어 있지요?
⇨ 2007년에 제정된 기초노령연금 부칙(제4조의 2)에는 그런 내용의 규정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좋은 제도를 그대로 활용하거나 또 약간 변형하거나 보완해서 활용한다면, 별 무리 없이 국민연금 고갈을 막으면서 국민연금 개혁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기초노령연금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세제 개혁을 해야 하고, 또 사회보험료 인상도 해야 합니다.
11.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은 국민연금 고갈을 막으려면 보험료율을 2010년 3.6% 수준에서 2020년 6% 수준으로 올리고, 2030년에는 10.2%로 올리며 2050년에 19%까지 올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
12. 그런데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를 높이더라도 큰 폭으로 높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 OECD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 비율은 3.2%로 OECD 평균 3.8%에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파격적인 수준으로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를 인상할 명분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앞에서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개혁이 한두 가지 수단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한 겁니다.
13.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는 어떤가요?
⇨ 역시 OECD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 비율은 2.6%로 OECD 평균 5.4%의 절반도 안 됩니다. 따라서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를 대폭 높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를 대폭 높이면 영세한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영세한 중소기업들의 사회보험료 일부를 대납해 주면서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 전체를 높여야 하는데, 이렇게 과정이 복잡해지면 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기 어렵습니다. 즉 일부 학자들의 기대와 달리 사회보험료 인상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의 대폭 인상은 명분이 충분치 못하고,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의 대폭 인상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습니다.
14. 기초노령연금 재원은 어떻게 확보해야 합니까?
⇨ 기초노령연금 재원은 세제 개혁과 재정 개혁을 통해 조달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 토건 예산을 줄이고 지하경제를 줄여서 재원을 조달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증세도 해야 할 겁니다. 증세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명분이 큰 것은 '부자 감세' 철회가 될 것이고, 그 다음이 비과세 감면 축소이며, 그 다음은 소득세 등 누진세 증세입니다. 그것도 부족하면 소폭이나마 부가가치세 증세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다만 정부가 '부자 감세' 철회나 소득세 등 누진세 증세에 주력하기보다 부가가치세 등 역진세 증세에 주력할 경우 상당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OECD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소득세 비율은 3.6%로 OECD 평균 8.7%의 절반도 안 됩니다. 반면 GDP 대비 소비세 비율은 8.2%로 OECD 평균 10.7%에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15. 연금 복지와 관련하여 일부 학자들은 선진국에서 연금 복지와 의료 복지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근거로 우리나라도 이 두 가지 복지 비중을 우선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그런 주장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나라마다 경제 수준에 따라 각각의 복지 부문에 대한 재원 배분 비율은 달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북유럽 어느 선진국의 긴급 복지 재원과 연금 복지 재원 비율이 1대 10이라 합시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두 복지 재원 비율도 그와 같아야 할까요? 오히려 아프리카 최빈국에서는 긴급 복지 재원과 연금 복지 재원 비율이 1대 10이 아니라 10대 1이 되어야 할 겁니다. 각각의 복지 부문에 대한 재원 배분 비율은 단순히 선진국 비율을 그대로 따르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16. 앞부분에서 증세를 언급할 때는 선진국 비율을 많이 참고하지 않았나요?
⇨ 세목별 증세안을 만들 때도 선진국과 경제 수준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제가 앞에서 두루뭉술하게 최근의 선진국과 비교한 것은 원칙대로 선진국과 경제 수준 차이를 고려하게 되면,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궁지에 몰리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야기가 나왔으니, 원칙대로 선진국과 경제 수준 차이를 고려하여 세목별 조세부담률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1990년 북유럽과 유사하다고 가정하고 비교해 보면 당시 덴마크의 GDP 대비 사회보험료 비율은 0.9%로 최근 우리나라(5.8%, 2009년 기준, 이하 동일)의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당시 덴마크의 GDP 대비 소득세 비율은 24.8%로 최근 우리나라(3.6%)의 6배가 넘었습니다. 복지 재원을 주로 소득세에 의존하는 덴마크와 사회보험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중 어느 나라가 서민에게 더 유리할까요? 덴마크입니다.
17. 1990년 스웨덴은 어떠했나요?
⇨ 1990년 스웨덴의 GDP 대비 사회보험료 비율은 14.2%로 최근 우리나라(5.8%)의 2.4배였습니다. 그러나 그중 95% 이상을 기업들이 부담했습니다. 당시 스웨덴의 GDP 대비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 비율은 13.6%였고, 개인 부담 비율은 0.6%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 비율이 3.2%였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스웨덴의 개인 부담 비율이 우리나라의 5분의 1에 불과했던 겁니다. 참고로 1990년 당시 스웨덴의 GDP 대비 소득세 비율도 20.1%로 최근 우리나라(3.6%)의 5.6배가 넘었습니다.
18. 1990년 스웨덴, 덴마크 모두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에 대한 의존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았군요?
⇨ 그렇습니다. 이들의 복지는 주로 소득세나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에 의존했습니다. 그만큼 저소득층 서민들에 대한 배려가 컸습니다. 물론 북유럽에서도 이와 같은 서민들에 대한 배려는 1990년을 기점으로 상당히 후퇴하게 됩니다. 1990년을 전후하여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동유럽 국가들이 자본주의형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해 조세 인하 경쟁에 나선 것, 또 이 시기를 전후하여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여 고소득층과 중산층의 불만이 고조된 것이 복지 후퇴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1990년대 이들 국가들의 복지 후퇴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또 비대한 복지 비만을 줄이는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즉 비대한 복지의 다이어트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 1990년 핀란드는 어떠했나요?
⇨ 1990년 핀란드의 GDP 대비 사회보험료 비율은 11.2%로 최근 우리나라(5.8%)의 1.9배였습니다. 그러나 그중 81%를 기업들이 부담했습니다. 당시 핀란드의 GDP 대비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 비율은 9.1%였고, 개인 부담 비율은 2.1%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 비율이 3.2%였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핀란드의 개인 부담 비율이 우리나라의 3분의 2에 불과했던 겁니다. 참고로 1990년 당시 핀란드의 GDP 대비 소득세 비율도 15.2%로 최근 우리나라(3.6%)의 4.2배가 넘었습니다.
20.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를 대폭 인상할 명분은 충분하지 않은데 국민연금 고갈 문제는 풀어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는 조세를 기반으로 하는 기초노령연금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겠군요?
⇨ 앞에서도 소개했듯이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은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완벽하게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10.2%로 올리고 2050년까지 19%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개인 부담 사회보험료를 대폭 인상할 명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연금 보험료를 일부 올리고, 수급액을 다소 낮추며, 국민연금 수급액 감소분을 기초노령연금 확대로 충분히 보충하는 방식으로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 개혁을 완성해야 합니다.
21. 국민연금 수급액을 다소 더 낮추자고 하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 그래서 지각 있는 사람들이 국민들을 잘 설득해야 합니다. 첫째,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려면 정교한 개혁 방안을 만들어 국민연금 수급액 감소분을 기초노령연금 확대로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둘째, 특수직역연금 개혁을 병행해야 합니다. 특수직역연금 개혁은 하지 않고 국민연금 수급액을 낮추려 할 경우 대다수 국민들이 크게 저항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국민연금 수급에서 세대 간의 차별이 없도록 역시 정교한 개혁 방안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세대 간 차별이 없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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