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쟁을 거치고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이러한 나눔 문화는 왜곡되었고, 조세 수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어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기막힌 이유로 '기부통제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군사정권을 거치면서는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이 생겨나 한층 철저한 국가기관의 통제가 이루어졌다.
국가에 의한 기부 통제라는 시대착오
2005년도 국정감사자료집에 보면 월드비전의 '기아체험 24시간', '연말연시 사랑의 이름으로', 한국복지재단(현재 어린이재단)과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 EBS의 '효' 캠페인, MBC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등 지금은 매우 뜻깊은 캠페인으로 평가되는 모금 운동의 허가 신청이 반려되는 웃지 못할 일이 바로 얼마 전까지도 버젓이 벌어졌다.
국가가 법을 통해 시민의 자율적인 활동과 자발적인 참여를 제한하고 모금 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사회의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착오적 발상일 뿐이다. 국가가 할 일은 시민의 자율적인 활동과 자발적인 모금 참여를 진작하고 지원하는 것이어야 하며, 나눔 문화 활성화를 저해하는 일부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에 그쳐야 한다.
정부는 규제의 근거로 기부금품 모집 행위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으나, 이는 방위성금이나 체육성금,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의 명목으로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관행적으로 실시해오던 준강요적 모금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조차 행정조직을 통해 강제적으로 할당되었으니, 이때 모금행위의 주체는 집권 정치세력의 비호를 받던 준국가조직이었다. 이러한 국가의 준강요적 모금 행위로 나눔 문화가 왜곡되고 폐단이 생겨난 것이다.
▲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이 2010년 열었던 '2010 기아체험 24시간' 캠프 장면. ⓒ연합뉴스 |
설익은 나눔기본법 제정안과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
최근 정부에서는 사회적 논의를 생략한 설익은 나눔기본법 제정안과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을 잇달아 들고나와 시민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나눔기본법 제정안은 복지부에서,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은 행안부에서 각각 추진하고 있는 바, 양 법안을 뜯어보면 정부안 단계에서도 상충·모순된 지점이 발견되고 있다.
우선 복지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나눔기본법 제정안은 나눔에 관한 통합관리법의 필요성, 나눔의 정의와 분류의 필요성, 나눔 단체 및 기관에 관한 규정의 정비, 새로운 나눔 문화의 내용 반영 등을 이유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나눔에 관한 통합관리는 시민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법에서 포괄적인 나눔의 정의를 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또한 되짚어볼 일이다. 게다가 복지부가 들고나온 나눔기본법안은 정부부처 간의 합의도 되지 못한 안이고, 기부연금이라는 새로운 나눔 문화의 내용 반영도 거의 논의되지 못한 설익은 정책이다.
한편 행안부의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은 합리적인 기부 문화와 나눔의 선순환을 통한 풍요로운 공동체 지향이라는 목적과는 상반되는 규제 중심의 안이다. 금지 목적 사업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등록해주도록 원칙 허용의 체계로 변경한다고 하지만, 예를 들면 결식아동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은 결식아동에 대한 급식 예산을 더 이상 책정하지 않겠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할 목적으로 결식아동지원사업을 벌이는 것에 해당하여 금지될 소지가 있다. 정부의 입맛에 맞는 모금만 허가하고 그렇지 않은 모금은 봉쇄하겠다고 하는 발상이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눔기본법안과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 모두 시민의 자율적인 활동과 자발적인 참여 지원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나눔 문화를 진작하고 확산하려면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뭘 도와드릴까요?'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이 발전시켜온 두레와 향약은 나라에서 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어왔던 것이다. 나눔 문화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 성패도 시민에게 달린 것이다. 정부는 아직 미흡한 나눔 문화를 북돋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어떠한 지원을 해야 할지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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