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 국가로 만들기 위해 소위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맹방들과 수교를 추진했고, 결국 북한의 최대 후견국 중국과의 수교에 성공했다. 중국도 국가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던 개혁 개방 정책의 지속에 중급 기술력과 경제 성장으로 축적된 자금력을 갖고 있던 한국은 매력적인 국가였다. 중국은 한중 수교를 통해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배가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도 북한과의 직접적 관계 개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지난 1992년 8월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
지난 20년 양국 관계는 기본적으로 '양자 외교'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하였다. 특히 경제 교류 영역에서는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우리도 중국의 3대 교역 파트너가 됐다. 무역액은 이미 22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일주일에 837편에 달하는 교통편으로 하루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양국을 왕래한다. 무엇보다도 각자 7~8만 명의 양국 젊은이들이 상대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등 전반적인 추세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양국 관계의 양적 팽창 및 빈번한 교류 이면에 경제 사회 교류에 미치지 못하는 정치외교 분야 등 영역 간 불균형 발전, 정부 주도의 교류에서 민간으로 급속히 확대된 교류 범위 및 '중국의 부상'에 따른 양국 간 국력 차 심화와 같은 현실적 문제가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수교 당시 외교군사 측면에서 중국이 지녔던 우위는 한국의 경제 및 사회문화 부분에서의 비교우위가 균형을 이루었었지만 중국의 급부상으로 이런 한국의 장점이나 중요성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영역 간의 불균형 발전은 기존의 성과를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향후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양국이 모두 유의해야 한다. 물론 정치·외교영역도 외형적으로는 상당한 발전을 하였다. 양국 관계는 1998년에 '협력 동반자 관계'(合作伙伴關係), 2003년에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全面合作伙伴關係)를 맺은데 이어, 2008년에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戰略合作伙伴關係)로 발전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는 양자가 군사 분야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지역 및 세계적 차원의 이슈에 대해서도 상호 긴밀한 논의와 함께 협조체계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관계의 설정은 한반도의 안정 및 비핵화 그리고 역내 협력 등 국가이익에 있어 상당 부분 일차적 목표가 합치(合致)되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공식 방문 외에, APEC, ASEAN+3, ASEM, G20, UN 등 무대에서 양국 정상, 준 정상, 외무장관 간의 대화 및 교류의 기회가 보다 증대되는 추세이며 양국 외무 차관간의 '고위급 전략대화'도 정례화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영역에 비해 정치·외교 영역은 중국의 내적 요인, 북한 및 미국 변수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며 상대적으로 제한적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양적·외연 성장과 교류의 심화 이면에는 원칙적 이견과 불신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체제 및 정책이익상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마늘분쟁', 2004년과 2006년 고구려사 왜곡, 그리고 2010년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은 양국 간 입장·이익 차이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한반도 통일, 재중 탈북자, 미국의 역내 동맹체제, 전구미사일방어체제(TMD) 등과 같은 한반도 및 역내 주요 현안에 대해 양국은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김영환씨 고문 사건 같은 인권 문제 및 서해 불법조업사건에서 나타난 한국 해경 살해, 상해 사건이나 북한 관련 사안은 양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민감한 이슈로서 최근 한·중 관계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양국 국민 간의 상호인식에도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결국 경제·사회·외교·군사 등 전 영역에 걸쳐 점진적이나마 분명히 갈등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추세가 정부 간 교류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부정적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 현 상황은 한중 양국의 양자 문제라기보다는 남북분단과 대립, 중미 패권경쟁과 전략적 충돌이라는 근본적이고도 구조적인 장애요인이 노정되어 있다. 한국은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함에 있어서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안보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민주화 지원 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인식하에 전략적 차원에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한중 양국은 서로 다른 전략적 계산을 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을 등에 업고 북한을 지속적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을 견제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남북 동시 수교국으로서 대 한반도 영향력의 유지를 추구하면서, 대미 견제의 일환으로 북한에 대한 감싸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결국 북한 용인을 둘러싼 양자의 불신이 정치외교안보 분야의 괴리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수사적 설득은 우리만의 얘기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북한 개발에 중국과 구체적인 자금 협력 등을 통한 진출로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민족 생존의 문제를 중국이 너무 중미관계의 전략적 입장에서 재단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중국 측의 사고 전환 촉구해야 한다.
이런 양국관계의 구조적 문제가 가까운 장래에 호전될 조짐은 별로 없다. 물론 최근 중국에서도 북한에 대한 부담을 떠안는데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정책으로 연결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양국의 문제의식은 조금 희박한 면이 있다. 양국 정부는 계속 양국 간에는 큰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양국관계 갈등 소지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중국은 한국의 경제, 외교 및 안보 상 매우 중요한 국가다. 한국 및 한반도에 대한 중요성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유지·제고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전면적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통일 후를 대비한 구상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여하히 한·미동맹과 한·중 협력 간의 조화를 이룰 것인가, 중국과의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며 장기적으로는 북한 및 한반도 미래에 대한 중국의 실제 역할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분간 '협력'과 '대비'라는 '이중보험'(hedging)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양자 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문제가 있으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충돌을 언제 까지 덮고 갈 수는 없다. 문제 발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해결할 메커니즘이 없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아무리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약화되었다고 해고 한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국에 중요한 국가다. 양측이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서로를 인식해야 건강한 한중관계 미래 20년, 30년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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