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등극을 지켜보면서 적잖은 사람들은 그의 불안정한 리더십을 우려하고 북한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김정은 체제는 신속하고 순탄한 권력승계를 완료했고 그 마지막 피날레를 전격적인 리영호 해임으로 장식했다.
리영호 해임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북한 내부에 권력투쟁이 본격화되었거나 파워 엘리트간 치열한 쟁투가 시작되었다고 의심할 만했다. 왜냐하면 아버지 김정일이 김정은 후계체제의 군부 후견인으로 디자인한 핵심 인물이 바로 리영호였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최고지도자에 오른 지 석 달 만에 전격적으로 그를 제거했다는 것은 그렇게 서두를 만한 권력 내부의 절박한 상황이 생긴 게 아니냐는 분석이었고,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그려놓은 구권력과 아들이 그리려는 신권력 사이의 본격적인 싸움이 진행되는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후 진행상황은 권력 투쟁의 본격화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의 확고한 군부장악이 이미 완료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리영호 해임 다음 날, 북은 현영철을 차수로 승진시켜 리영호 후임으로 내세웠고 곧이어 김정은에게 원수 칭호를 부여하더니 모든 군부 인사들이 앞다퉈 충성을 다짐했다. 군부의 동요나 저항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리영호만 해임된 채 모든 군은 일사불란하게 '김정은 원수를 눈동자처럼 결사보위하겠다'라고 나섰다.
일각에서 추측했던 내부 정변이나 권력층 동요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김정은 중심의 권력토대가 당과 국가기관을 거쳐 이제 군부에까지 확고부동하게 마무리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011년 12월 최고사령관 취임, 2012년 4월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이어 이제 원수 칭호까지 부여받음으로써 김정은은 당정군의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로 자리잡게 된 셈이다.
리영호 해임이라는 전격적 사태 이후 김정은은 오히려 유연하고 개방적인 이미지 관리에 들어갔다. 전례 없이 부인을 공개하고 대외 행사에 직접 동행함으로써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의도다. 자신의 권력토대는 확고하게 마무리하면서 대외적으로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리더십을 과시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기대케 하는 효과마저 불러 일으켰다.
▲ 지난 24일 북한 평양의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함께 등장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AP=연합뉴스 |
부인 리설주 공개와 함께 외부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내각에 경제사업의 힘을 실어주라는 김정은의 4.19 지시가 관심을 끌었고 최근 6.28 방침이 강조되면서 본격적인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마저 나왔다. 김정은 입장에서 리영호 해임은 자신의 권력승계를 마무리하는 피날레임과 동시에 아버지 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로도 해석가능하다.
아직은 유훈통치와 김정일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이제 아무런 저항과 동요 없이 권력장악을 마무리한 만큼, 김정은만의 독자적인 비전과 정책을 보여줘야 할 것이고, 그 맥락에서 최근 6.28 방침은 김정은식의 경제관리체계를 구상하는 첫 단계일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 받은 김정은이 이제 자신만의 홀로서기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변화를 구상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김정은의 고민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이명박 대통령도 고민거리가 늘어가고 있다. 리영호 해임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노을을 보고 해가 지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통일이 정말 가까이 왔다"'고 밝혔다. 리영호 해임을 보고 마치 북한 내부에 붕괴 가능성을 혹시라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닌가 의심을 살 만 했다. 실제로 리영호 해임 이틀 뒤 북한 방송이 12시 중대발표를 예고하자 청와대는 긴급 회의를 갖는 등 분주하고 긴박하게 움직였다. 마치 정변이나 쿠데타 가능성까지를 염두에 둔 호들갑이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북한 자료를 들여다보고 그동안 북의 중대발표 사례만 챙겨봐도 예상 밖의 권력변화가 아니라 김정은의 원수칭호 부여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북한 붕괴와 정변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 속에 예고된 중대발표를 앞두고 허둥지둥 긴급회의를 가진 셈이었다. 막대한 예산과 인원을 갖고 있는 국정원이 김정은 옆에 등장한 여성에 대해 신원파악마저 못하는 대북 정보력의 파탄 상황은 급기야 북한 전문가들이 조금만 차분하게 분석한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중대발표 예고에 대해 청와대마저 허둥지둥하는 해프닝을 보여주고 말았다.
북한 붕괴 대망론과 급변사태 임박론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으로 권력토대를 마무리하고 개혁개방을 준비하는 현실에 대해 이해 못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고민에 빠지게 된 셈이다. 아직도 국정원장은 김정은의 6.28 방침과 TF 팀 구성을 확인하고도 김정은의 개혁개방 시도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예단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여전히 북한붕괴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기대와 달리 가고 있는 북한 현실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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