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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그랜드 바겐'만 있고 '그랜드 디자인'은 없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제19호 <5>·끝

1. 6·15 공동선언 이행을 둘러싼 갈등

대선과정에서 지난 시기를 '친북좌파정권의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여야 정권교체를 통해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와 대북정책 차별화를 시도했다. 보수정권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이명박 정부는 진보정권 10년 동안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대북정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습니다"라고 밝혔지만 실제정책에선 실용보다는 이념이 앞섰다. 이명박 정부는 상대를 부정하는 데서 자기정체성을 찾는 '자폐적인 정의관'에 사로 잡혀 남북관계 설정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임기 말을 맞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 목표로 표방했던 '비핵·개방·3000'의 관점에서 볼 때도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여 핵능력을 향상시키고,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명문화했다. 이명박 정부가 선 비핵화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비핵화 시키기는커녕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할지도 모를 단계에 이르렀다. 개방의 경우도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됐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의 첫 단추를 꿰지 못한 데는 출범 초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과 관련한 명확한 입장 정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두 선언에 대해 존재부정(2008년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 존재인정과 이행협의용의(7월 11일 국회연설)→ 합의정신존중과 구체적 실행방안마련(9월 22일 평통연설)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두 선언에 대한 전면이행 의지를 밝히지 않고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원상회복과 새로운 진전을 이룰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가장 큰 불만은 남측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서 명백한 이행의지를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다. 두 선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문서로 남측이 이를 무시할 경우 북한 지도자의 '통일지도자상'과 리더십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6·15공동선언을 '통일대강'으로, 10·4선언을 '실천강령'으로 생각하고 이를 사수하고자 한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6·15 통일시대'를 열었다고 선전해왔기 때문에 6·15 공동선언을 무시한 남북관계를 생각할 수 없다고 버텼다.

이명박 정부가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관한 이행의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하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한 '실용정부'라면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두 선언에 대한 남측의 진전된 입장을 집권 초기에 정리했어야 했다.

특히 10·4선언의 합의내용은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을 상당부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정부의 합의를 정권의 정체성과 관련지어 무시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과거 정권들이 당시의 시대정신과 요구를 반영해서 합의한 문서들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합의를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실용주의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경우 합의한 당시의 정부들도 합의내용을 그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곧바로 이행하기 어려운 합의도 했다.

2. 북한 악마 인식론과 급변사태론에 입각한 정세관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불량국가론'과 '원죄론'에 입각해서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하고 먼저 변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없다'는 식으로 대북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전면 이행을 요구하면서 대남비난공세와 함께 위기조성의 수위를 높였다. 북한이 의심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과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 표명정책과 달리 '흡수통일론', '급변사태론' 또는 '붕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머지않아 통일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고 밝히는 등 북한 체제변화를 희망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해왔다. 급변사태가 임박했다고 북한정세를 판단할 경우 대화보다는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지난해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북한 급변사태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와 경제난 심화에 근거한 것이다. 급변사태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김정일의 유고와 동시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란 희망적 사고에 기초하여 북한 붕괴를 점친다. 또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따른 경제위기의 심화로 북한이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란 가정 아래 급변사태 가능성을 언급하곤 한다. 북한은 외부세계의 급변사태론에 맞서 김정은으로의 후계구축을 조기에 공식화하고 핵능력과 재래식 전력을 과시하면서 내부 결속에 주력했다.

북한이 붕괴되면 남한주도의 흡수통일이 이뤄질 것이란 낙관적 기대는 중국변수를 간과한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북한의 핵개발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지만, 중국으로선 핵개발보다 북한 붕괴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더 사활적인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북·중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피로써 지킨 국경을 북한붕괴로 다시 위협받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3. 한미동맹 우선론과 국가중심 시각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이념에 입각한 화해협력과 공존공영을 모색해 나갔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한미공조) 위주에서 민족공조로 비중을 옮겨 나가는데 불만을 가지고 한미동맹 강화에 주력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한반도관계인식구조는 먼저 한미관계가 좋아지면 남북관계도 등달아 좋아지고 나아가 북미관계도 좋아진다는 '순차적 삼각 순환구조논리'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관계 우선주의에 따라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키는 등 역사상 가장 좋은 한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정책과 관련해선 이명박 정부가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미국이 '전략적 인내'로 화답함으로써 북한 핵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방치하고 6자회담이 장기 공전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표방하고 '국제협력과 남북협력의 조화'를 강조했지만,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보기보다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남북기본합의서에 규정한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보기 보다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원칙과 보편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나라와 나라(국가 대 국가)' 사이의 관계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와 같이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보지 않고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봄으로써 남한 우위의 남북관계 설정을 염두에 두고 북한을 압박했다. 이명박 정부는 체제 역량이 우세한 남한이 갑(甲)이고, 열세인 북한은 을(乙)로 인식한다. 남한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북한은 남한이 만들어 놓은 관계 틀에 들어와야 한다는 논리를 세우고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남한우월의식은 북한의 반발을 샀고, 남북관계 재설정 실패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4. 대북정책 철학 부재에 따른 사건 위주의 대응

철학이 분명하고 정책의 비전이 있는 지도자의 경우는, 어떤 현안이 생기면 현안의 수위를 조절할 줄 안다. 대북정책과 관련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이 있으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응 수위를 조절해 가면서 큰 틀의 화해협력의 흐름이 손상되지 않도록 정세를 관리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북한 불량국가론의 대북관과 급변사태론의 정세관을 가진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와 관련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사건이 정세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일문제·대북문제와 관련한 지도자의 철학과 통찰력이 부족하면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그 사건이 정세를 지배하면서 큰 흐름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금강산 관광객 피격, 김정일 건강 이상, 로켓발사와 핵실험, 천안함-연평도 사태, 탈북자 강제 북송, '광명성 3호 실용 위성발사', 종북논쟁 등이 정세를 지배해 왔다. 현안 위주로 대응하다보니 전체적인 큰 그림 속에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냉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는 큰 틀의 구조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포괄협상이 필요하다. 그랜드 디자인 없이 '원샷 딜' 같은 그랜드 바겐으로 20여년간 끌어온 북핵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 비핵과 개방을 내세우고 급변사태와 흡수통일을 공공연하게 언급하는 근본주의 또는 도덕주의적 대북접근으론 남북관계를 풀 수 없다.

북한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하드 파워(hard power) 위주의 대북압박은 북한을 더욱 움츠려들게 만들었다. 남측이 대북 강경정책을 펼 때 북한은 이를 적대적 의존관계로 활용하여 내부 결속에 활용한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들어갈 수 있는 접촉, 제공, 대화의 통로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이를 차단했다. 하드 파워 위주의 강압정책은 북한의 대남 경계심을 높였고, 교류협력 차단에 따른 소프트 파워 사용 부재는 북한변화를 가로막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원칙만 있고 전략이 없는 기다리는 전략으로 남북관계를 풀 수 없듯이, 그랜드 바겐만 있고 그랜드 디자인이 없는 북핵해법으론 북핵문제를 풀 수 없다. 관광객 피격사건, 김정일 건강악화, 천안함 침몰사건 등 돌발사태가 정세를 지배할 경우 글로벌 이슈인 북핵문제의 해결의 집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남측정부의 대북 영향력이 커져야 6자회담 등에서 한국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남북관계 장기 경색이 6자회담의 장기 공전과 연관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2년 7·8월호(제19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6.15 12주년과 남북관계: 시사점과 교훈'입니다.

* 원제 : 6·15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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