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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파랑새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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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파랑새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

[전태일통신 36] 새터민 아이들의 정신적 외상

2000년 겨울, 중국 길림성으로 탈북어린이들 실태 조사를 갔었다. 나는 북녘에서 중국으로 와 숨어 지내는 어린이들의 교육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갔는데, 한마디로 갔다 와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다. 너무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추운 만주 거리에서우리 겨레의 아이들이 공안원한테 쫒기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나가면 잡힐까봐 10살 안팎의 아이들이 2년 가까이나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숨어 살고 있었다. 이래서야 어디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미성년기가 지나면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에 빠진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나이에는 돌아가도 벌을 받지 않지만 일단 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면 북으로 돌아가도 감옥으로 가야 한다. 한국에서도 정보가치가 있는 사람은 받아들이지만 정보가치가 없는 사람이나 어린이, 청소년들은 받아들이지도 않는단다. 그러니 아이들은 갈 곳이 없고, 살 길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실태조사를 다녀온 나는 힘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 떠도는 아이들이 북으로 돌아가서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사정을 하고 다녔다. 다행히 그 해 9월부터 어린이들도 받아들이게 되었고, 부모 없이 혼자 오는 아이들도 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정부에서 아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안 된 상태라서 급히 민간단체에서 기금과 자원활동가를 모아 새터를 찾아온 아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야 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1000명이 넘는 북녘 아이들이 와서 살고 있다.
  
  부모 손에 이끌려 왔든, 스스로 찾아왔든 그 아이들은 남녘의 아이들과 똑같은 우리 겨레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파랑새를 찾아 이 땅에 온 그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고난의 행군'이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진정한 파랑새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한국에 오게 되었다
  
  노00(초등학교 5학년)
  
  나는 함경남도 함흥시 사조구에서 태어났다.

  
  태어나 유치원도 다니고 학교도 다녔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내가 8살 되던 해에 중국에 갔다. 그래서 우리 3형제는 외할머니네 집에서 살았다. 우리 할머니네 집은 가난하여 우리를 먹일 식량이 없었다. 그러나 외할머니와 큰어머니는 굶어도 같이 굶고 먹어도 같이 먹자며 우리를 자기네 집에 데리고 왔다.
  
  그런데 엄마가 1999년에 다시 나와서 언니, 나, 동생을 데리러 왔다. 그래서 우리는 99년에 중국에 오게 되었다.
  중국에서 언니는 남의 집 양딸로 가고 나는 엄마와 같이 살았다. 그런데 나는 그 다음해 남동생과 중국 공안원한테 잡혀서 다시 조선에 나오게 되었다. 조선에 나와서 나는 인민학교 2학년에 다니고 동생은 유치원에 다녔다.

  
  그때는 가난의 행군이 되어 모두 굶어죽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풀을 뜯어다가 먹었다. 그런데 하루는 배급소에서 배급을 많이 주어서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에 오기 전까지는 별로 어렵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언니와 엄마가 중국에서 잡혀 나왔다. 엄마는 감옥에 있고 언니는 미성년자여서 할머니 집에 왔다. 할머니 집에서 3달 동안 조사를 받고 언니는 나보고 중국에 가겠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11월 7일에 집을 나와 함흥역에서 기차를 타고 무신까지 와서 무신에서 다시 청진으로 내려와 청진에서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아침 하차를 타고 혜령에 밤 10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혜령에 있는 아재네 집에서 10일 있다가 그 아재와 같이 혜령에 있는 두만강에 6시에 도착했다.
  
  다행히 두만강은 얼어 있었다. 우리는 오자마자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 거기 있는 농촌집에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거기에 언니를 중국에서 길러준 삼촌이 와 있었다. 우리는 저녁밥을 먹고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 7시에 길림성에 있는 용정시에 도착했다. 우리는 용정에 있는 삼촌네 집에서 두 달간 있었다. 두 달 있는 동안 우리 집에 있던 언니 두 명은 한국으로 먼저 떠나고 우리 다섯 명만 남았다.
  
  그런데 있는 동안 중국 공안원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우리는 피난을 왔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아빠가 전화로 우리를 한국으로 보내라고 해서 우리는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 오는 동안 중국 공안원한테 잡힐까봐 마음을 조이며 왔다. 베트남에 한 달간 있다가 캄보디아에서도 한 달 있었다. 그래서 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 실제로 체험하면 너무너무 어려운 길이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 다닌 학교가 삼죽초등학교다. 그런데 북한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다른 것이 많았다. 처음 학교 왔을 때는 좀 이상했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 좋은 친구들이다. 정작 이제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니까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여기에서 영영 다녔으면 좋겠다.
  
  한국에 와서 두 달 동안 하나원에서 적응 교육을 하고 나라에서 정해준 정착지로 떠나야 하는 어린이가 쓴 글이다. 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살던 곳을 떠나 낯선 땅으로 살러 가는 일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힘들고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한 까닭이 없으면 대량 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어린이가 길게 쓴 이 글을 보면 얼마나 어려운 길을 넘어왔는지 알 수 있다. 하루면 올 수 있는 길을 네 나라를 거쳐 돌고 돌아서 겨우 왔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이 땅은 그들을 따사롭게 맞이하고 있는가? 5학년짜리 어린이가 글을 쓰면서 장소는 알 수 있다고 해도 시각까지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어린이는 중요한 이동 때마다 시각을 정확하게 적고 있다. 이 시각이 정확한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린아이가 잊지 못하고 기억할 정도로 생사가 걸린 시각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땅에 들어오기 위해, 들어와서 다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조사에 대비해서 탈출로와 시각을 외우고 또 외웠을 수도 있다.
  
  선생님께
  
  
정00(하나둘 학교 초등반 27기)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죄인지 궁금합니다.

  
  비록 난 아니지만 많은 북한 애들이 학교에 와서 중국에서 왔다고 하곤 학교를 다니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싫어도 정말 싫습니다.
  
  우리가 택해서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시키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여기에 있는 애들이 잘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마도 우리들은 오랫동안 고생을 했으니까 여기 애들과는 다를 겁니다.
  
  또 하나는 남한 애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한두 명 남한 애들이 있는 데서 끼어 있으면서 공부를 하지만 애들은 자기가 만약 이게 모두 북한 애들이고 그 중에 자기가 끼어 있다면 나는 과연 잘 정착할 것인가를 그 어느 아이나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는 그게 너무 짜증 납니다.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애들, 또는 북한 애들이 여기 애들에게 속이려는 그것이 너무 짜증납니다.(줄임)

  
  한국에 온 북한 아이들이 정착지에 가서 학교에 들어가면 북한에서 왔다고 하지 않고 중국이나 강원도에서 전학을 왔다고 속이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초기에는 북한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 때문에 무시당하고 놀림당하는 일이 왕왕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어린이 말대로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죄가 될 수도 없고, 죄가 되어서도 안 된다. 똑같은 우리 겨레의 아이들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어른들 때문에 고통 받은 만큼 더 소중하고 귀중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진정으로 파랑새를 만나 웃음 지으며 놀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언제쯤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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