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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하구나, 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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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하구나, 고려대

[다산 칼럼] 현상윤ㆍ유진오ㆍ김상협ㆍ김준엽의 '민족 고대'가 어쩌다가…

대학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대학을 소개하고 있다. 내용은 대개 그 대학의 역사와 현황을 설명한 것이 주종이다. 그런데 고려대의 학교 소개란에 들어가면 눈길을 끄는 게 하나 있다. 역대 총장의 사진과 프로필이 그것이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분들의 면면을 일별하면 고려대가 왜 유독 역대 총장을 소개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이 가운데는 걸출한 분이 유난히 많다.

초대 총장을 맡은 현상윤 선생은 3·1운동의 민족대표 48인의 한 분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가 쓴『조선유학사』는 유학(儒學)은 물론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명저의 하나로 꼽힌다. 그가 전쟁 통에 납북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상윤, 유진오, 김상협, 김준엽 …

현 총장을 이어 고려대를 이끈 분이 유진오 총장이다. 유 총장은 두루 알듯이 우리나라 헌법을 기초한 헌법 학자다. 그는 고려대 총장일 뿐만 아니라 당대 지성인의 대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 총장은 총장직을 세 번 연임하면서 법인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대학을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전통을 세웠다.

6대와 8대 총장을 맡은 김상협 선생도 당대의 대인이자 군자였다. 모택동 연구나 정치사상 연구의 권위자였던 그의 강의는 최고의 명강(名講)이었다. 그는 고려대에 내린 휴교령이 해제되자 학생들이 가득 모인 강당으로 가 군부를 향해 "하늘에 물어봅시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하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해 학생들을 울렸다. 그는 한동안 군부나 이른바 3김을 대신해 나라를 이끌 대안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9대 총장을 맡은 김준엽 총장은 고려대가 내실을 갖춘 대학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하는 데 이바지한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군에 투신한 경력이 있는 그는 고려대 교수가 되어 아세아문제연구소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구소로 우뚝 서게 한 뒤 총장을 맡았다. 그는 법인 관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석에서 고려대는 인촌 김성수 선생이나 김 씨 일문의 대학이 아니라 민족의 대학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곤 했다. 법인이나 정부에 대해서는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면서도, 그는 교수들을 누구보다 존중했다. 교수의 자문을 얻을 필요가 있으면 그는 교수를 총장실이나 음식점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로 직접 찾아가곤 했다고 들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고 능력도 탁월한 분이 많아 고려대 총장 가운데는 총장직을 마친 뒤 대학 밖으로 나가 활동한 분이 적지 않다. 유진오 총장은 박정희 시대에 야당의 초계파적 부름에 응해 신민당 당수를 지내며 군사독재를 견제하는 일을 맡았다. 김상협 총장은 총장을 맡기 전에 문교부장관을 지내는가 하면 전두환 시대에는 국무총리가 되었다.

걸출한 분들이 전통을 세워왔건만, 요즘은 …

유진오 김상협 두 분의 현실참여가 적절한 것이었는지 논란이 이어질 때 김준엽 총장은 몸으로 그 답을 제시해 지성인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여러 정권의 총리직 제의를 일언지하에 다 거절했다. 참말인지 과장인지 모르지만 총리를 맡아달라고 하자 김 총장이 "고려대 총장을 지낸 내가 어찌 더 아래 자리에 갈 수 있겠느냐"고 응수했다는 말은 교수사회의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세상이 변해서 그런지 요즘은 고려대 총장을 지낸 분들의 처신이 사뭇 달라졌다. 누가 보더라도 고려대 총장의 지위나 상징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자리에 나가는가 하면, 이력서를 들고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는 이도 있더니, 최근에는 직전 총장이 교우회 회장 선거에 나서 후배에게 고배를 마시는 일도 벌어졌다.

며칠 전에 어느 신문사 주필이 '창피하구나 고려대 교우회'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어찌 교우회뿐인가. 요즘은 고려대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참으로 부끄러울 때가 많다.

* 다산연구소(www.edasan.org) 홈페이지에 실렸던(4월 26일)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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