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긴축 반대 시위대 1500여명은 당일 저녁 신타그마 광장에서 시위를 열고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외신들은 유럽 재정위기가 그리스, 스페인 등을 중심으로 여전히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국민들의 저항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아랍의 봄'을 불렀던 2010년 튀니지의 청년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이 이 노인의 죽음으로 재현될 수 있다고까지 전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그리스 통신원 헬레나 스미스는 5일 기사에서 크리스토울라스가 자신의 죽음으로 그리스에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주려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생전에 삶이 어려울 정도로 연금을 축소한 정부와 무능한 정치가들에게 분노했고, 젊은 세대들의 무관심에 대한 고민도 드러냈다.
<가디언>은 그의 죽음이 절망 속에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던져줬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노학자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란 책으로 유럽 젊은이들의 대대적인 저항을 이끌어냈던 것처럼, 그리스 청년들이 이 노인의 죽음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지 주목된다.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 <편집자> (☞원문 보기)
▲ 3일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서 목숨을 끊은 77세 전직 약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편지와 조화들. ⓒ로이터=뉴시스 |
그리스 노인의 자살, 절망 만큼이나 불굴의 용기 보였다
아테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연금수급인의 생애가 지인과 이웃을 통해 드러나면서 그리스 금융위기의 불공평함을 온 몸으로 드러낸 그의 모습이 부각됐다.
그리스 언론이 드미트리스 크리스토울라스라는 이름으로 보도한 이 전직 약사는 점잖고 준법정신이 투철하며, 꼼꼼하고 품위 있는 인물이었다. 77세의 이 노인은 3문단 분량의 유서에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보다 품위 있게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밝혔다.
그의 친구이자 이웃인 안토니스 스카르모우트소스는 현지 일간 <타 네아>에 "그는 자신의 자살로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길 원했다"라며 "그는 정치적 성향이 분명했을 뿐 아니라 (현 상황에) 격분해 있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울라스는 1994년까지 아테네에서 약사로 일했다. 동시에 열성적인 좌파로서 '돈을 내지 않겠다'(I won't pay) 등의 시민단체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이 단체는 통행료 부과에 항의하는 취지로 결성됐지만 긴축 반대 운동으로 급속히 커져갔다.
이웃들은 그가 홀로 살고 있던 집 1층 발코니에 항의 깃발을 걸어놓았었다고 말했다. 자살하기 하루 전 그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납부 시한이 몇 주나 남은 공동관리비를 걷자, 자기도 자신의 부담분을 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가 유서에 쓴 것처럼 35년 동안 국가의 도움 없이 연금을 붓던 그의 세심함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하지만 그리스의 다른 노인들처럼 이 은퇴한 약사는 (연금을 받는 대신) 역사적인 부채 위기를 겪고 있는 고국을 위해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유서에 그의 연금이 "내가 생존할 기회를 무효화시키는" 정도까지 깎였다고 적었다.
그리스 국회에서 내려다보이는 신타그마 광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그의 분노는 그리스를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길로 이끈다는 명분으로 부과된 세금과 연금 축소라는 불균형한 부담을 지고 있는 많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공감을 샀다.
오래전 이혼한 뒤 운동복 차림을 하고 자주 동네 거리를 산책하던 크리스토울라스는 동년배들처럼 그리스가 선택한 결정으로 크게 곤란을 겪었다. 또 그는 젊은 세대들이 긴축정책을 무관심에서 받아들이는 것에 속상해 했다.
그의 이웃 스카르모우트소스는 "그는 젊은 세대의 무력감과 지난 2년간 전개된 상황 모두에 매우 힘들어했다"며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신타그마 광장으로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직 약사는 자살한 당일 밤을 지나면서 긴축정책을 불공정하고, 궁극적으로 자멸하는 길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저항의 상징이 됐다. 끝도 없는 경기 후퇴가 지속된 지난 5년을 보내온 많은 그리스인들에게 크리스토울라스의 죽음은 절망에서 나온 행동일 뿐 아니라 터널의 끝에서 작은 빛을 비추는 불굴의 용기 중 하나가 됐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