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중국 정부에 북송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한국의 압력은 전례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16일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에게 탈북자 문제를 인도적으로 처리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도 22일 취임 4주년 특별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국제규범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단체들은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구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일 열고 있다. 지난주 중국의 차기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첫 만남을 가졌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도 탈북자 구출을 요청하는 박선영 의원의 서한이 전달됐다.
▲ 23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인 김은주(왼쪽 두번째) 양과 참가자들이 중국 정부에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간 일부와 여당의 대선 주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탈북자 북송을 우려하면서 정부도 그간의 중국 내 탈북자에 대한 외교 기조를 바꾸고 있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유엔인권이사회에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는 방향을 검토중"이라고 밝혀 그간 비공식 양자협의를 통한 '조용한 외교'로 탈북자 문제를 처리해오던 방식의 전환을 시사했다.
민간 단체와 정치권, 정부가 중국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는 한 마디로 이렇다. "중국은 1982년 가입한 국제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에 의거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북한으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탈북자의 난민 인정 여부는 주권국가의 재량이지만, 고문방지협약에 따라 탄압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원래 국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액면으로 볼 때 타당한 주장이지만 실질적인 탈북자 구명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20일 한국의 화법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21일에는 "(억류된 탈북자들은) 경제 문제 때문에 중국으로 넘어 온 불법 월경자로 난민의 범위에 속하지 않고 유엔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2일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에는 "(탈북자 문제를) 난민화, 국제화, 정치화하는데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대응은 말로만 그치지 않는 듯 하다. 24일 일부 언론은 중국에서 붙잡힌 탈북자 9명이 이미 지난 주말 북송됐다는 한 탈북자의 주장을 보도했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한국 정부에 탈북자 문제에 관한 입장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탈북자 문제로 한중간 교섭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탈북자 북송을 강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중국의 이러한 강경한 반응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도 이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이니 국제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라는 논리는 티베트인 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중국에게 먹혀들지 않는다. 시진핑 부주석이 미국 방문 당시 강조한 것처럼 이 사안들은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이 '조용한 외교'를 통해서 중국 정부와 탈북자 문제를 논의했던 이유도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렸을 때 강경한 대응에 나서던 과거 사례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는 '혈맹' 북한과의 관계도 포함된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개방으로 이끌겠다는 방침을 이미 확정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중관계도 같이 험악해지고, 그간 조용한 성과를 내왔던 '조용한 외교'가 먹혀들지 않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는 탈북자 북송에는 는 인권이 걸려 있지만, 수면 아래에는 냉정한 국제사회의 현실과 외교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중국의 행태를 두둔할 일은 물론 아니다. 탈북자 구명 운동에 합류해 '소셜테이너'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차인표, 이성미 씨같은 이들의 노력을 폄훼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같은 힘의 논리와 외교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 가운데에서 실질적인 결과를 모색해야할 정치권이 분위기에 편승해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탈북자 문제에는 좌우가 없다"는 차인표 씨의 말과 달리 보수 진영에서 "진보 세력은 왜 탈북자 문제에 침묵하느냐"라는 정치 공세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문제를 국내정치에 활용하고픈 의도가 느껴진다.
한국이 더 '세게' 나갈수록 중국 정부의 입장 역시 세진다. 이는 한국 외교 당국이 "양자협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냉랭한 한중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냉랭한 한중관계의 기저에는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에 올인하면서 동북아 국가 사이의 힘의 관계를 고려하지 못했던 지난 4년의 오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장 혹독한 피해를 입을 이들이 지금 간절한 구명을 바라는 탈북자 들이다. 탈북자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는 지금, 정치 공세나 인권 구호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탈북자들에게 한국인증명서를 발행해 준다는 실효성 없는 대책은 대국민 생색내기용 밖에 안 된다. 민주통합당도 탈북자 북송 중단 결의안에 참여해 분위기에만 편승할 게 아니라 자신들의 집권 시절 했었던 실효적 해결책을 먼저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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