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위반 시정을 위해 1400여명 이상 신규채용 (현대차 900명 이상, 기아차 500명 이상) △개인별 연장근로 관리 시스템 개발 △순환근무제 도입 △노조 대의원이 결정·실시하던 휴일특근을 관리자 결제 후 실시 등 휴일특근에 대한 관리 강화 △공장간 물량이동 및 전환배치 △법 위반 시정에 필요한 노후설비 교체 등을 위해 총 3559억 원 시설투자 △일이 많은 일부공정 교대제를 2조2교대에서 3조3교대 등으로 개편 △올해 말 일부 공장에서 주간연속 2교대 실시하고 내년에는 전 공장으로 확대
이로써 국내 완성차 5개사가 나름대로 제시한 장시간노동 개선대책이 거의 윤곽을 드러내게 되었다.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제 드디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총론 속에서 임금, 일자리, 비정규직, 노동강도, 생산성 문제를 놓고 전사회적 토론을 벌일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구체적 내용은 숨겨놓은 개선대책의 '윤곽'
하지만 안타깝게도 완성차 자본,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개선대책의 '윤곽'만 공개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들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현대기아차의 경우 근로기준법 위반 시정을 위해 1400명 이상을 신규채용 한다는데, 도대체 이 숫자가 무슨 근거로 산정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1주일 평균 2208건에 달하는 근로기준법 위반(연장근로 한도 초과)이 발생했다고 한다. 1주일에 2208건이면 한 달에 1만 건에 달한다는 것인데, 1400명 신규 채용으로 한 달에 무려 1만 건에 달하는 연장근로 초과를 어떻게 시정한다는 말인지?
게다가 현대차에서 주간연속 2교대 노사협의과정에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문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박태주 씨는 지난해 연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현대차 회사측이 스스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려면 최소 650개의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법만 지켜도 당장 수백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겁니다."(매일노동뉴스 2011.12.24.)
그런데 최종 발표된 현대차의 신규채용 규모는 650명이 아니라 최소 900명 이상이었다. 현대차가 한 차례 퇴짜맞은 개선계획서를 보완하여 제출한 시점이 12월 15일이었다. 그런데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현대·기아차가 지난해 12월 30일 제출한 이 같은 내용의 장시간 근로 개선계획을 지난 4일 승인했다고 한다. 이를 종합하면 올해 1월 4일 최종 발표되기 전까지 필요한 일자리 수를 놓고 조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숫자가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계산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완성차 근무형태는 컨베이어 시스템이기 때문에 연장근로 한도 초과가 발생하면 보통 같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체에 법 위반이 성립하게 된다. 즉, 같은 컨베이어에서 일하는 정규직만이 아니라 사내하청 비정규직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용노동부의 조사내용과 현대기아차의 개선계획은 정규직만을 상대로 한 것인가, 아니면 사내하청 규모까지 염두에 둔 것인가? 이런 기본적인 내용조차 공개하지 않고서 그저 신규채용으로 일자리를 1400개 이상 창출하겠다는 '윤곽'만 발표한 것이다. 주먹구구식 계산법이 적용되었는지, 과학적·기계공학적 계산법이 동원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최근 한나라당이 총선 공약 중 일자리 대책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제시한 것도 의심을 증폭시킨다. 게다가 현대기아차는 1400명 신규채용 규모 중 900명을 3월까지 선발하겠다고 밝히지 않았던가. 완성차 장시간노동 개선대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총선용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고용노동부와 완성차업계는 그 구체적인 계산법을 공개함이 마땅하다. '일자리 대책'이야말로 전 국민적 관심사이자 '공익'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 아니던가.
들쭉날쭉 일관성 없는 일자리 창출
현대기아차에 앞서 고용노동부로부터 개선계획을 승인받은 3개사 중, 한국GM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200여 명의 인력을 신규채용하고, 2078억 원의 설비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르노삼성의 경우 신규충원 규모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일부 공정에 대해 2조 2교대를 3조 3교대로 개편한다는 계획이어서 인력충원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오직 쌍용차만은 인력충원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 자동차업체는 최근 자동차를 많이 팔아 이익도 많이 남긴다는데 근로자 수는 예전과 차이가 없다"는 말까지 쏟아내며 장시간노동 시스템을 바꿔 일자리 창출을 독려한 바 있다. 그러나 윤곽이 드러난 완성차 개선계획과 판매량 증가 수치를 비교해보면, 신규 인력충원 규모에 일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래 표 참조. 판매량 수치는 각 업체가 언론에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으며, 해외공장에서 생산되어 판매된 것은 제외하고, 국내공장에서 생산되어 내수 판매되거나 수출 판매된 것만 집계했음.)
▲ 자동차 업체별 판매량 증가율 |
박태주 자문위원의 말마따나 "법만 지켜도 당장 수백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쌍용차만 예외로 인정했다는 것인가? 판매 증가율이 다른 업체에 비해 3~4배 이상 높은 쌍용차에서만 신규 인력충원이 없는 개선계획서를 고용노동부가 승인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야간노동 없애는 대신 뺑뺑이를 돌아라!
▲ 자동차완성업체를 찾은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 |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채필 장관은 1월 4일 현대기아차 개선계획서 승인내용을 밝히며 기자실에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이 어렵지만은 않다." "현대·기아차의 작업내용을 보면 업무시간에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게 평균 60% 수준" "(작업강도를 현재보다 강화한다면) 근로시간을 줄여도 현재의 생산량을 충당할 수 있고 노동자들이 현재 받고 있는 임금 수준도 유지할 수 있다."
드디어 고용노동부가 사회적 논쟁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임금과 노동강도!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겠다고 나선 점은 참으로 가상하나, 이채필 장관이 한 말은 현대기아차 자본 측이 해온 말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비록 '윤곽'만 드러난 것이지만 논쟁은 논쟁대로 하자는 말 아니겠는가?
장관이 내뱉은 말은 전문용어로 현대기아차 작업 편성률이 60% 수준이라는 것이다. 편성률이란 "주어진 시간 가운데 실제 작업에 투여되는 시간"을 말하는데, 편성률 60%라는 것은 1분에 36초 동안은 작업에 집중하고 나머지 24초는 쉬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정말 노동자들이 편하게 일하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국제 노사정기구인 ILO에서도 가장 편한 자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조차 최소한 여유율을 15% 가량 주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편성률은 아무리 최대로 높여도 85%를 넘어서는 안 된다. 하다못해 정신노동을 하더라도 1분에 50초 이상, 1시간에 50분 이상 업무에 집중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60%라는 수치 역시 현대기아차 자본이 제시한 것일 뿐, 도대체 구체적인 근거는 하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실 현대기아차 자본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편성률이 60% 안팎이라며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너무 낮다고 비난해왔다.
오히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이 보고서는 경제, 사회통합, 환경, 인프라 부문의 259개 지표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과 비교한 것인데, 이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33개국 중 1위를 차지했고, 노동생산성 증가율 역시 34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많이 일하면서도 생산성 역시 최대로 높여왔다는 말이다. 다른 자료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가 발간한 보고서 내용이 이러한데도,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대기아차 자본이 고장 난 레코드처럼 '편성률 60%' 운운하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단 말인가?
상대적 고임금의 비밀
이번에 드러난 한국 완성차업계 장시간노동의 실체는 임금 문제 역시 새롭게 조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물론이고 노무현 정권도 '귀족 노동자' 운운하며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고 있다며 비난해왔다. 이제 그 실체를 한번 벗겨보자.
고용노동부가 완성차업계 노동시간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은 거의 모두가 연간 2500시간 이상, 대략 2600~2700시간을 일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국의 상용직 노동자 평균노동시간이 2100시간 정도임을 감안하면, 무려 20~30% 가까이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균노동시간보다 길어진 나머지 500~600시간은 대개 잔업·특근, 즉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가 되어 통상임금의 1.5~2.0배를 받게 된다. 이 계산법에 따라보자면, 통상임금 수준이 똑같다 하더라도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은 한국의 평균적인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40~50% 가량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연간 2100시간을 일하는 평균적인 노동자들보다 높은 본질적인 이유는, 연간 2600~2700시간에 달하는 야만적 장시간노동 체제 때문이다. 성과급과 상여금 수준이 높다는 점도 있지만, 본질적 이유는 노동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만약 이들의 노동시간이 주간연속 2교대 실시에 의해 연간 2000시간 수준으로 조정된다면, 이들의 임금은 현재보다 40~50% 가량 삭감된다. 초장시간 노동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상대적 고임금의 비밀도 벗겨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 주간연속 2교대 도입 등 장시간노동 체제를 바꾸기로 한 이상, 임금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높았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평균적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낮았던 것이라고 말이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법정최저시급은 4580원! 최저임금으로 연간 2000시간 일해도 916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최효종의 개그를 빌려서 말해보자면, "대학가 앞의 편의점 알바로 취직해서 최저시급 4580원을 받고 1년 동안 (밥도 안 먹고 집세도 안 들이고 교통비도 안 내며) 숨만 쉬고 살면, 1년 대학 등록금을 벌까 말까 한 수준"인 것이다. 초장시간 노동하는 이들의 임금 얘기를 할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최저임금부터 대폭 올리라고 해야지 않을까?
완성차업계가 진실로 노리는 것
개선계획서의 '윤곽'이 나오면서 또 다른 실체도 벗겨지기 시작했다. 신규채용 몇 백 명으로 생색을 내는 대신, 완성차 자본은 이를 계기로 현장 노사관계를 쥐락펴락 하려 한다. 이를테면 개선계획서 내용 중 노동자 개인별 연장근로를 관리하겠다든지, 휴일특근을 관리자 결제 후 실시한다던지, 공장간 물량이동과 전환배치를 하겠다든지 하는 내용들이 그러하다.
이 항목들은 모두 현장에서 노동조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인데, 이런 것들에 대해 자본이 일방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신규채용만 해도 그렇다. 도대체 어느 라인 어느 공정에 몇 명을 추가로 채용해서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겠다는 것인지 공개도 하지 않고, 노사 간 대화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휴일특근과 연장근로를 관리한다고? 아니, 연장근로와 휴일특근을 없애서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하자면서 이게 무슨 망발인가? 이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 측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지점이 아니라 현장을 '관리·통제'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장시간노동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전환배치·물량이동·혼류생산 등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휘두르고 싶은 것이다.
이제 점점 자본가들의 개선(?)계획이 '윤곽' 수준에서 구체적인 내용들이 베일을 벗고 드러날 것이며, 현장 노동자들은 그 계획이 어떤 노림수를 갖고 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신규채용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물량에 따라 자본의 필요에 따라 나사못처럼 여기 박혔다 저기 투입되었다 뺑뺑이를 돌게 된다는 사실을! 거기에다 신규채용을 통해 그동안 불법파견 문제로 투쟁을 벌여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온순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함정까지 파놓았다.
장시간 노동 근절과 일자리 늘리기, 생활임금 보장은 포기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와 자본의 의도가 무엇이냐를 떠나,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늘리기, 생활임금 보장이라는 총론을 포기할 수 없다. 저들은 노동강도를 높이고 임금을 줄이고 현장통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어쨌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임금, 일자리, 비정규직, 노동강도, 생산성 문제를 놓고 전사회적 토론을 벌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 앞으로 <인사이드 경제>는 이 주제들을 놓고 하나씩 하나씩 고용노동부와 자본의 논리를 해부해볼 계획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도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이 이 토론에 참여하기를 당부드린다. 이 골치 아픈 논쟁에 뛰어들라는 말이냐고? 물론 필자 입장에서야 각종 수치가 동원되는 토론에 더 많은 이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것보다 더 기초적인 토대를 쌓는 작업을 함께 해보길 원한다.
이를테면 장시간 노동의 문제가 과연 완성차만의 문제이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현실은 완성차와 완전히 똑같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선업·전기전자·공작기계 등 웬만한 제조업도 모조리 장시간노동에 근로기준법 위반이 비일비재하다. 화학섬유의 경우에는 아예 3교대 사업장이 많기 때문에 더욱 심각할 것이라 예상된다.
그렇다면 자기 사업장에서 도대체 얼마나 극심한 장시간노동이 행해지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공개해보자. 괜찮은 회사라면 임금명세표에 월 노동시간이 찍혀 나올 테니, 명세표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무직의 경우에는 명세표에는 정취근무시간만 찍히지만, 사실은 야간노동과 휴일근무에 시달리면서 시간외수당도 못 챙겨먹고 있지 않은가? 그런 '공짜 노동'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 사무실에 걸려있는 벽걸이 시계를 사진으로 찍어 공개해보자.
1주일이나 한 달에 몇 시간을 일하고 있는지, 그중에서 임금으로 몇 시간치를 받고 있고 '공짜 노동' 시간은 몇 시간인지, 그렇게 장시간 근로와 고된 노동을 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은 어느 정도인지를 얘기해보자. 그게 바로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질 중요한 토론의 소중한 밑바탕을 만들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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