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슬픔의 피에스타]. ⓒJNH 뮤직 |
최백호, 김광민, 전제덕, 정엽 등 실력파 음악인들을 끌어들여 완성한 [슬픔의 피에스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쓸쓸한 집시 기타가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기타연주 앨범이다. 보컬리스트의 음악에 익숙한 이들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겠으나, 그의 정밀한 핑거링과 뼈대를 흩트리지 않는 연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듣는 이를 압도하는 기교가 긴장감을 자아내는 타이틀곡 <슬픔의 피에스타>는 전작의 명성을 잇는 화려한 곡이며 최백호를 끌어들인 <방랑자>는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다. <My Little Brother>, 새롭게 해석해 게리 무어를 추모하는 <One Day>가 '한국적'인 정서를 보강해 앨범의 안내서 역할을 한다. 앨범에서 가장 밝은 기운이 감도는 재즈곡 <환상의 노래>는 미묘한 속도의 변화, 새 악절마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악기들의 색다른 곡 주도로 연주곡을 듣는 최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박주원의 화려한 핑거링은 이 곡에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조금 황당한 <빈대떡 신사>와 극적으로 곡의 진행 속도를 바꿔 긴장감을 유발하는 곡으로, FC바르셀로나에 바치는 <El Clasico>는 앨범 후반부에서도 청자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물론 바르샤를 찬양하는 가사란 없으므로 레알 마드리드CF의 팬이라도 즐기는 데 무리가 없겠다).
기타연주곡이라는 점이 분명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청자에게 감동을 강요하는 주류 한국 가요로부터 멀어짐으로서 <슬픔의 피에스타>는 탈 한국적인 기운을 물씬 풍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정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박주원은 연주하기는 어렵겠으나 듣기에는 편안한 최적의 기운으로 그의 기타를 정돈하는 노련함을 발휘해, 듣는 이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다. 갓 서른을 넘은 이에게서 나온 앨범이라고 믿기 어려운, 환상적인 작품이다.
꽃다지 [노래의 꿈]
▲꽃다지 [노래의 꿈]. ⓒ꽃다지 |
애초 70년대 대학가의 포크 열풍으로부터 시작한 민중가요는 이후 대중음악권에 흡수되지 못하고 길거리로 밀려났다. 90년대 이후 브라운관에 김민기의 음악이 설 자리란 없었다.
둘을 아우르려는 시도가 이어진 건 필연이었다. 90년대 메이데이, 이스크라 등이 대중적인 록 사운드를 받아들인 앨범을 냈다. 국내 대표적 노래패 우리나라의 백자는 솔로 앨범을 발표해 홍대 음악신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바위처럼> 단 한 곡만으로도 전국의 대학생들은 모르는 이가 없는 꽃다지 역시 마찬가지다. 길거리뿐만 아니라 홍대 라이브 클럽에도 오르기 시작했고, 가사가 다루는 주제도 점차 넓어졌다. [노래의 꿈]은 그 결과물이다. 이 앨범은 연주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색다른 시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처받은 이를 어루만지려 작심한 <당부>,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주도하는 <친구에게> 등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들려도 어색하지 않은 곡이다. 90년대 모던록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연주방식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두 눈을 똑바로>, <Fighter>는 길거리의 열악한 스피커 시스템으로 감상하기는 아까운 곡이며, 이명박 대통령을 '까는' <Hey! Mr. Lee>는 민중가요의 젖줄이었던 포크 록의 전통을 살렸다. 특히 <Fighter>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랩-코러스의 완성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블루지한 기타는 근래 나온 가요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당연히 오늘 한국을 이야기하는 곡들이 이 앨범의 핵심이다. 주류가요에서는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이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든 대부분 주류 가수의 '현실비판적'인 노랫말과 달리, 꽃다지는 당연하게도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을 직설적으로 내뱉는다(물론 여기서도 대중가요 감상자들은 이 어법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길거리에 서 본 이들이 아니라면 <호각>, <내가 왜?>, <주문>, <길 위에서>의 매력을 백퍼센트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하다. 민중가요가 주는 전율은 길거리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아예 내년 대선과 총선을 이야기하는 <축제(정치라는 건)>와 같은 노래를 대중가요 프로그램에서 들을 수 없다는 점은 불행한 일이다.
(애초에 주류음악을 제외한 모두가 마찬가지이지만) 설 자리가 줄어들고 듣는 이가 줄어드는 열악한 현실을 버티며 이들은 네 번째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모금을 통해 힘겹게 제작됐고, 주요 음악 유통채널을 통해서는 구입이 어렵다. 이 앨범에 새롭게 주목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지만, 이 앨범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적어도 지금 한국의 현실에 가장 맞는 노래란 길거리에서 쏟아진다는 것을 이들은 여전히 힘줘 말하고 있다.
이디오테잎 [11111101]
▲이디오테잎 [11111101]. ⓒVU 레코즈 |
2진법을 자랑스럽게 앨범명으로 정했지만, 이들은 신시사이저에 드럼을 붙인 전통적 밴드 형태를 취하고 있고, 내뿜는 빅비트 사운드의 박진감도 철저히 공연을 계산에 뒀다. 이들의 공연을 어떤 식으로든 지켜본(심지어 네이버 온스테이지 클립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들의 사운드는 실내감상용 전자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메인테마를 밀어붙이는 가운데 변박과 효과음의 재배치로 기분을 바꾸는 건 마찬가지지만, 말초를 자극하는 강도는 근래 나온 어떤 일렉트로닉 밴드의 음악보다 강하다. 이 앨범은 디지털로 만들어낸 강력한 자극제다.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이 청자의 몸을 흔들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다. 리듬감은 록의 그것보다 즉시적이고, 듣는 재미는 주류가요에 못지않다. 더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아쉬움으로 남지만, 스피커 안에만 갇혀 있을 수 없다는 듯 거세게 날뛰는 음의 소용돌이는 적어도 듣는 동안은 청자를 무아지경으로 몰아넣는다. 수줍은 이들의 모습과 달리 자신감이 충만한, 근래 나온 가장 로킹(rocking)한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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