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한송이를 바칩니다
리영희 선생님 영전에 마음으로 흰 국화꽃 한송이를 바칩니다. 이제 행동하는 지식인의 등대는 누가 밝히실 것인지요?
그저께 제가 조문을 다녀온 후 막막한 심정 가눌 길 없어
트위터에 선생님의 부음을 전했더니
heavenful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시민이 제 글에 단 댓글입니다.
선생님의 영전에 국화꽃 한송이 바치려는 사람이 어찌
그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온 국민이,
온 시대가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내던 시절에,
선생님은 세 번 해직 당하고 다섯 번 감옥을 들락거렸습니다.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이 한 끼 밥을 위하여,
자신의 안락을 위하여 곡학아세할 때에도,
선생님은 그 밥상을 차버리고,
비오고 찬바람 부는 길거리에 나가
바른 소리, 의로운 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야만의 시대에 이성의 잣대를,
허위의 시대에 진실의 빛을,
불의의 시대에 정의의 깃발을
높이 세워주셨던 리영희 선생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진실과 정의를 희구하는 동시대인들에게,
의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게 만들었던 리영희 선생님!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자 삶의 좌표였던 바로 그 리영희 선생님이
먼 걸 떠나셨습니다.
글자 한자 허투루 쓰지 않았고,
옷매무새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고,
허위와 불의, 굴종을 참지 않으셨던,
청죽 같던 선비와 그의 시대가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냥 슬퍼만 할 수 없는 이유는
선생님이 평생 맞닥뜨렸던 그 야만, 그 허위, 그 불의의 벽이
아직도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평생 괴롭혔던 민족의 모순,
이데올로기의 망령, 사대주의와 자본의 우상, 대결과 갈등의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 머리 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주신 바다와 같은 지혜, 용광로 같은 열정, 얼음칼 같은 냉철함으로
우리는 이 슬픔과 절망의 벽을 넘어
선생님이 한평생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꿈꾸었던
그 세상을 기필코 열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통절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마음속에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곧은 비석 하나 세워야 합니다.
그 비문에,
우리 마음의 스승 리영희 선생님.
민족의 분열을 평화적인 통합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전진하는 민주주의로,
가난한 가람의 고단한 삶을 고르게 잘 사는 삶으로,
바꾸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용감하게 행동하며,
아름다운 민주사회를 더불어 꽃피우겠다고 새겨야 합니다.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훈훈해지고,
팔다리에 힘이 불끈 솟구치게 하던 리영희 선생님.
이제 당시 평생 짊어졌던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남은 우리들에게 내려놓고 깊이 영면하소서!
2010년 12월 8일
박원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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