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의회는 5일 정기국회를 열어 잉락을 총리로 선출했다. 잉락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재가를 받으면 총리 업무를 공식 수행하게 된다.
잉락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고 외국으로 도피한 탁신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으로 지난달 3일 총선에서 탁신을 지지하는 푸어타이당의 총리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탁신은 재임 시절 도시 빈민층과 농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실각한 이후에도 탁신을 잊지 못하는 이들의 표가 잉락에게 쏠렸다. 푸어타이당도 전체 의석 500석 중 263석을 얻었다.
하지만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13일 잉락의 당선 확정을 연기하고 선거법 위반 조사에 들어갔다. 부패 혐의 등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된 탁신 전 총리가 선거에 관여한 혐의가 있다는 이유였다. 자칫 친탁신 지지자들인 '레드 셔츠'의 반발을 부를 뻔 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0일 혐의가 없다고 결론내리고 잉락에게 당선증을 교부했다.
▲ 5일 태국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된 잉락 친나왓(44)이 태국 방콕 국회의사당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
재벌 출신인 탁신과 마찬가지로 잉락도 정치 경력이 전무했던 기업인이었다. 태국 치앙마이 대학에서 정치·행정을 전공한 후 미국 켄터키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통신·부동산 회사를 경영했다.
이 때문에 탁신의 '아바타'로 등장해 젊고 수려한 외모만 부각됐던 잉락이 산적한 국내외 이슈에 정치적 수완을 발휘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또 잉락 자신을 '분신'이라 칭하는 탁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잉락 앞에 놓인 최대 현안은 역시 오빠인 탁신 전 총리다. 탁신은 도피 이후 두바이에 머물면서 푸어타이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푸어타이당은 선거 기간 중 탁신 등 정치범 사면 공약을 내세우면서 '국가 화합'을 강조해 선거 압승 뒤 탁신의 복귀가 점쳐지지도 했지만 야당과 왕실은 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들이 친탁신인 '레드 셔츠'와 반탁신인 '옐로 셔츠'로 갈려져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옐로 셔츠는 지난 2008년 11월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무단 점거하고 시위를 벌여 친탁신 정부를 무너뜨렸고, 레드 셔츠는 2010년 5월 방콕 중심가에서 90명이 사망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여 조기 총선을 유도한 바 있다. 탁신이 귀국을 서둘렀다가 다시 친탁신과 반탁신 세력 사이의 반목이 심해질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캄보디아와의 국경분쟁 해결도 잉락의 과제 중 하나다. 캄보디아와 태국은 국경 지역의 11세기 힌두사원 '프레야 비히어'가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유혈 분쟁을 벌여왔다. 지난 4월에도 이 지역에서 양국 군대가 충돌해 민간인 포함 16명이 숨졌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달 18일 양국 군대를 모두 철수하라고 요구했지만 양국은 아직까지 철수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도 잉락이 탁신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50% 인상 등 빈부 격차를 해소할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기 때문에 앞으로 공약 이행 여부와 함께 야당과 재계의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잦은 쿠데타로 태국 정치에 개입해왔던 군부와의 관계 설정도 숙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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