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80년대 한국을 닮은 말레이시아 '버르시 2.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80년대 한국을 닮은 말레이시아 '버르시 2.0',

[아시아생각]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말레이 시민들

오랜만에 말레이시아 정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9일 말레이시아 시민 수만 명이 민주주의와 선거개혁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하면서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이날 집회는 '버르시(Bersih) 2.0'이라는 62개 시민단체연합이 주도했다. 버르시 2.0 집회는 당초 내무부장관 히샤무딘이 집회의 성격을 '불법단체에 의한 불법집회'로 간주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 충돌이 예상됐다. 이에 더해 제1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 청년부와 친정부단체인 뻐까사(Perkasa)가 대응집회 계획을 발표하고, 버르시도 집회강행을 선언하면서 정치적 갈등이 고조됐다.

결국 집회 이전부터 불법집회 준비 등으로 수백 명이 체포됐고, 집회 당일에는 1400여 명에 달하는 집회참가자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 중에는 버르시 집행부는 물론 야당의 고위인사들도 대거 포함됐다.

▲ 지난 9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거리에서 '버르시 2.0'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말레이시아는 종족·종교·언어·문화 등 지극히 이질적인 사회구성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정치적 안정을 자랑하고 있다. 실제로 1957년 독립 이후 1969년 종족폭동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정치적 안정이 심각하게 저해된 적이 없었다.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거리투쟁을 벌이는 일은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거리투쟁이 자칫하면 종족간의 갈등으로 번질 개연성이 있다는 공포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사이에 말레이시아의 정치환경이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흔히 목격되던 대규모 거리투쟁이 간헐적으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버르시 2.0 집회가 그 대표적인 예다.

버르시는 말레이어로 '깨끗함'을 뜻한다. 버르시 2.0은 2010년 62개 시민단체가 특정 정당에 연계되지 않은 독립적인 공명선거연대를 추진한다는 목표로 결성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버르시 2.0은 2005년 7월 '선거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버르시의 연장이다.

버르시가 시민단체와 더불어 야당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데 반해, 버르시 2.0은 외형상 야당이 배제되고 시민단체들의 연합으로 재출범한 것이다. 공명선거 연대에 야당이 참여한다는 것이 자칫 왜곡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버르시 2.0은 실질적으로 시민단체와 범야권이 총결집된 '선거개혁을 통한 민주주의 달성'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번 7월 9일 집회에서도 야당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은 물론 주요 야당들의 핵심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거리투쟁을 선도하였다.

버르시는 출범 초기부터 2007년 1월 바뚜 따람(Batu Talam) 보궐선거, 2007년 4월 마짭(Machap)과 이족(Ijok) 보궐선거 등에서 선거감시운동은 물론, 선거개혁을 위한 각종 워크숍 등을 개최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2008년 총선을 앞두고 2007년 11월 10일 수만 명이 참여하는 대중집회를 조직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날의 대중집회는 1998년 마하티르 총리가 안와르 당시 부총리를 정치적으로 제거하면서 촉발된 개혁정국(Reformasi) 이래 최대의 거리투쟁으로 기록됐다. 이후 버르시는 일반대중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선거개혁운동을 전개했고, 이는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이 말레이시아 헌정사상 최대의 돌풍을 일으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올해 또는 내년 초에 제13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새로 출범한 버르시 2.0이 선거개혁과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것이다. 마치 2008년 총선을 앞두고 2007년 11월 버르시가 대중집회를 강행했던 것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물론 제1여당과 친정부단체들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버르시 2.0이 공명선거 달성을 위해 주창하는 요구안도 지난 2007년과 거의 동일하다. 대표적인 주장은 △유령투표자(phantom voter) 방지를 위한 투명한 선거인 명부 작성 △부재자 투표 개혁 △부정투표를 방지하기 위해 지워지지 않는 투표용 잉크 사용 △현행 8일간의 선거운동 기간을 21일로 연장 △모든 정당에게 공정하고 자유로운 언론보도의 보장 △관권 선거 방지를 위한 정부기관의 독립성 보장 △금품 선거를 포함한 각종 부정행위의 중단 △부패정치 척결 등이다. 요구안이 선거제도의 구체적인 개혁은 물론 민주주의 달성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에 이은 2011년의 버르시 집회에 우리가 주목해야할 이유가 단순히 제도적 요구사항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버르시 집회를 주도하는 구성원들이 1998년 개혁정국 이래 일련의 거리투쟁에 직접 참여했던 주역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버르시 활동이 1998년 개혁정국의 연장임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은 선거절차와 정치제도의 개혁을 지속적인 과제로 구체화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결집은 물론 일반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종족갈등의 유발 가능성이라는 이유로 터부시되어왔던 거리투쟁이 버르시 집회를 계기로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2011년 집회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체적으로 주도했고, 집회참가자의 면면에서도 다양한 종족 구성원들의 참여가 보다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안정된 권위주의 체제를 특징으로 하는 말레이시아에서 정치변동의 가능성은 요원해보일지 모른다. 수년에 한차례씩 개최되는 대규모 거리집회에서 그 희망을 보는 것도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개혁의 의지를 수만 명이 참여하는 거리투쟁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1998년 이전의 말레이시아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참여했던 세대들이 정치개혁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재의 말레이시아는 분명 다른 세상이다. 마치 1980년대 민주화의 열망을 공유했고 대대적인 시민사회의 정치참여를 경험했던 한국사회처럼.

* [아시아 생각]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칼럼으로 이 글은 '서남포럼'에도 실렸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