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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베벌리힐스' 생겨서 자랑스럽나요?"

[이태경의 고공비행] 압구정동 재건축 계획안이 지닌 문제점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압구정동이 드디어 재건축될 모양이다. 서울시가 압구정 전략정비구역 지구단위 계획안을 마련한 것이다. 압구정동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촌(富村)이긴 하지만, 압구정동 소재 아파트들은 건축된 지가 30년도 넘은 만큼 재건축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1976년 수립된 영동2지구 택지 개발계획에 따라 압구정동에는 1980년대 초까지 24개 아파트 단지, 총 1만335가구가 들어선 바 있다.

아파트가 노후해 주민들이 살기가 매우 불편하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면 재건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압구정 전략정비구역 지구단위 계획안이 압구정동 주민들만을 위한 잔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압구정동=한국판 베벌리힐스

▲ 압구정동 아파트.
보도에 따르면 압구정동에는 평균 용적률 335%를 적용해 최고 50층, 평균 40층의 아파트가 건축된다. 현재 압구정동에는 15층 높이의 아파트들이 있다. 또한 주민들이 원할 경우 소형평형 의무건설 비율이 면제되는 '1대 1 재건축' 방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조합원 분양 물량 1만335가구, 일반 분양 물량 1489가구 합계 1만 1824가구가 압구정동에 들어선다. 한편 부지 면적의 25.5%는 기부채납하고, 주변 올림픽대로를 지하화 할 예정인데, 지하화 한 올림픽대로 위에 총 24만4000㎡(서울광장의 17배) 규모의 공원을 조성한다.

서울시가 만든 압구정 전략정비구역 지구단위 계획안은 언뜻 보아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노른자위에 위치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할 경우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재건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이 아파트 소유자들에게 귀속된다는 점인데, 압구정동은 부지 면적의 25%를 기부채납 하는 방식을 통해 재건축 초과이익 중 일부를 환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 계획의 이면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압구정동 지구단위 계획안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소형평형 의무 비율 준수 규정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재건축시 전용면적 기준 60㎡ 이하 주택 20%, 60~85㎡ 주택 40%, 85㎡ 이상 주택 40%를 건축하는 이른바 2:4:4 방식이 현재 통용되고 있는데, 서울시는 1:1 재건축 방식을 압구정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재건축시 이른바 2:4:4 방식을 대개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이 방식이 재건축으로 인한 초과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소형 공동주택을 보급하는 방편이며, 소셜믹스(social mix)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1:1 재건축을 강력히 희망하는 압구정동 주민들의 숙원에 화답해 소형평형의무비율 규정을 형해화시키는 패착(敗着)을 뒀다. 압구정동 주민들이 소형평형의무 비율을 혐오하고 1;1 재건축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대형 위주로 구성된 압구정동에 소형이 들어오면 상류사회에 균열(?)이 생길 수 있고, 집값 상승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기할 것은 압구정동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1:1 재건축 방식이 온전한 의미의 1:1재건축도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시가 압구정동 재건축 단지에 매우 높은 용적률을 적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비록 위법은 아니지만 압구정동 재건축 지구에는 1489가구(모두 85㎡이하)의 일반분양분이 발생한다.

현재 압구정동 아파트 가격은 3.3㎡당 3000만 원에 달하는데 재건축이 끝난 이후에는 3.3㎡당 5000만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만약 일반분양분 전체를 85㎡로 분양하고 분양가를 3.3㎡당 50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가구당 분양가는 15억이고 일반분양분 전체를 계산하면 무려 2조24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분양대금이 발생한다. 물론 이 분양대금 대부분은 기존 조합원들에게 귀속돼 조합원들의 건축 분담금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거칠게 계산해 봐도 압구정동 1만 335가구에게 가구당 2억원이 돌아가는 셈이다. 압구정동 주민들은 1:1재건축 방식을 취함으로써 기존 평형은 그대로 유지-압구정동 같은 최고급 공동주택단지의 경우 대형일수록 3.3㎡당 단가가 높은 건 상식이다-할뿐더러, 일반분양분 매각을 통해 건축비 부담도 크게 덜게 된 것이다.

서울시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의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는 기부채납도 문제가 많다. 보도를 보면 서울시는 기부채납 받은 부지를 매각한 대금으로 올림픽 공원 지하화 및 압구정공원과 서울숲을 연결하는 '꿈의 보행교(Dream Bridge)'건설 비용을 충당하려고 한다는데, 기부채납 받은 부지 매각 대금으로 전액 충당이 가능한지도 의문이고, 설령 가능하다해도 그게 서울시민 전체를 위한 공익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시, 압구정동 대하듯 낙후지역을 대해야

서울시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된다면 압구정동이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탈바꿈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재건축으로 인해 압구정동 주민들은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을 얻고, 대한민국 최고의 주거환경 속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압구정동 주민들은 국가와 서울시로부터 받은 혜택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다. 국가와 지자체가 구축한 인프라 덕분에 높은 집값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압구정동 주민들이 건물이 노후해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할 일이지만, 이를 통해 천문학적 토지 불로소득을 노리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압구정동 주민들은 재건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초과이익을 전유하려 하지 말고 공공에 환원하는 것이 옳다.

끝으로 서울시에 한 마디. 서울시의 압구정동 재건축 계획안을 보면 99마리의 양을 가진 부자에게 1마리의 양을 더 보태준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서울시가 다른 낙후지역에도 압구정동에게 베풀고 있는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보여주길 기대하겠다. 물론 다른 재건축 추진 지역에서도 초과이익은 공익을 위해 대거 회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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