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는 출입기자들을 초청해 경연장면을 관람토록 했다. 덕분에 스포일러 논란이 사라졌다. 기자들을 통해 옥주현의 <유고걸>, 장혜진의 <미스터>가 경연곡으로 알려졌다. 파격적 도전이었다. 이들은 주인공이 됐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은 나란히 하위권으로 쳐졌다. 역설적 상황이었다. 결은 다르다. 옥주현은 아이돌의 족쇄를, 장혜진은 <나가수>의 진화를 보여줬다.
장혜진의 한계
장혜진의 충격적 순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장혜진은 <나가수> 예고편의 실질적 주인공이었다. 리서치 사이트 '틸리언'이 지난 6~7일 조사한 '이번 주 가장 기대되는 무대'의 1위가 장혜진의 <미스터>였다.
장혜진은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완성된 '한국형 발라드'의 표본이었다. 장혜진은 청중평가단이 만족할만한 이력을 가진 보컬이었고, 그런 그가 부르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이소라가 부르는 보아의 노래만큼 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예고 기사만으론 결말이 그래야 했다. 더군다나 방송에서 장혜진은 이 편곡이 '로킹한'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강조했다. 장혜진이 록을 한다고? 그가 엉덩이춤을 춘다니! 당연히 순위가 나와야 맞잖아?
청중평가단은 그러나, 그를 택하지 않았다. 청중평가단은 장혜진이 가진 색깔을 요구했다. 장혜진의 <미스터>에는 색깔이 없었다.
장혜진의 편곡은 분명 기대 이하였다. 심지어 그가 과연 발라드 외 장르를 얼마나 이해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안타깝지만 장혜진이 자신 있게 말한 '헤비메탈적 편곡'은 실패했다. 도입부는 80년대 영국 뉴웨이브였고, 후반부는 정체성을 잃은 짜깁기에 불과했다. 어디에도 헤비메탈의 강렬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소라의 <넘버 원>에 있던 가수의 아우라가 장혜진의 무대에는 없었다.
청중평가단은 이를 냉정히 재단했다. 똑같은 카피무대에도 불구, 제임스 브라운을 본뜬 김범수의 <님과 함께>에 청중평가단이 움직인 이유는 '완벽한' 흉내에 있었다. 청중평가단이 김범수에 요구한 건 카멜레온적 변신이었다. 김범수는 이를 이행했다.
그러나 장혜진의 <미스터>는 마이클 잭슨의 <블랙 오어 화이트>와 '발라드 가수' 장혜진의 사이에 머물렀다. 그는 과감한 무대를 선보이지도, 자신의 색깔을 보이지도 못하고 갈 곳을 잃었다. 장혜진이 과감했다고 생각한 무대에 청중평가단은 '무채색' 평가를 매겼다.
양날의 검 '아이돌'
그런데 당황스러운 점은, 옥주현의 무대마저 청중평가단이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날 옥주현의 무대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의 무대는 아이돌 출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된 한 편의 '버라이어티'였다. 옥주현은 그래미상 축하무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함의 극치를 선보였다. 그는 댄서를 동원해 춤을 췄고, 곡의 절정부분을 창조했고, 이를 통해 원곡의 매력적인 리듬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한 이효리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간 '나는 성대다'는 지적에 할 말이 없어 보였던 옥주현은 '대중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는 가창력에의 부담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옥주현에게 <유고걸>은 승화의 무대였다. 옥주현은 아이돌→뮤지컬 배우로 이어져온 자신의 이력을 대중에게 당당하게 보여줬다. 옥주현이 <유고걸>로 자신의 색깔을 드디어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무대는 대중에게 '가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관객들은 옥주현의 무대를 보고 열광했지만, 그에게 표를 주진 않았다. 나쁘게 말하자면 <나가수> 특유의 '꼰대스러움'이 옥주현에게 적용됐다.
청중평가단은 <나가수>에서 좋은 무대를 판별하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나가수> 출발 당시를 돌이켜보면 그 기준이 드러난다. <나가수>의 안티 테제는 '아이돌'이었다. <나가수>는 아이돌 무대와 차별돼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근거를 세우기는 힘들지만) '음악성 있는' 가수의 곡이 나와야만 했다. 옥주현 등장 당시 대중이 그토록 반발한 이유는 그가 <나가수>에 설 자격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진 아이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넘버 원>은 부른 이가 한국대중음악상을 휘젓고, 여성가수의 단일음반 판매기록을 가진 이소라였기에 청중평가단을 움직일 수 있었다(물론 <넘버 원>의 편곡은 뛰어났다). 이소라가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면 '파격'이 되지만, 옥주현이 그렇게 하는 순간 대중은 실망한다. 청중들은 옥주현이 가진 아이돌로서의 색깔을 인정하지 않았다. 옥주현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무대였다.
▲10일자 <나가수>에서 선보인 장혜진의 <미스터>, 옥주현의 <유고걸> ⓒMBC 제공 |
둘이 나아가야 할 길
이날(10일) <나가수> 무대는 임재범과 이소라라는 두 기둥이 빠진 방송이 나가야 할 길을 분명히 제시했다. 남은 일곱 명의 가수는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줘야 살아남는다.
대부분의 멤버는 이 숙제를 슬기롭게 풀었다. 윤도현은 과도하게 순위를 의식하던 모습을 드디어 벗어던졌다. 곡 전반부와 후반부가 따로 놀던 편곡, 리듬이 사라지고 내지르는 보컬만이 남았던 YB의 무대는 <빙글빙글>을 기점으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살점을 제거하고 리듬감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곡의 기본'과 윤도현 2집 <an Band>에서 선보인 한국적 록의 힘을 윤도현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김범수는 다른 음악인에 비해 부족한 음악적 경험에도 불구,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매번 새로운 시도를 훌륭히 성공으로 이어가고 있다. 조관우식 발라드의 힘을 청중평가단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김조한은 최근 영입된 어떤 새 얼굴보다 기대할만한 인물임을 단 한 번의 무대로 과시했다.
장혜진은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점에서 장혜진에게 우려를 표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지적은 매우 정확했음이 입증된다. 장혜진의 영역은 적어도 <미스터>로만 평가해보면 지나치게 좁다. 그가 움직일 공간은 BMK처럼 보컬색깔에 맞는 특정한 곡에 한정된다. 장혜진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것이다.
옥주현은 제 색깔을 선보였음에도 당황스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이미 지난 여러 차례의 경연에서 옥주현은 충분한 자질을 보여줬다. 그리고 대중은 유독 옥주현의 커밍아웃을 깐깐한 눈으로 심사했다.
그러나 옥주현은 제 뿌리를 찾아가야 한다. 옥주현이 아이돌 가수의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역시 김범수처럼 이 영역 저 영역을 모두 건드리는 모험을 매주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옥주현은 김범수를 넘어서지 못한다. 결국 위기가 왔다손 치더라도, 옥주현은 한국 아이돌 음악이 10년 넘게 지내오며 단단한 줄기를 키웠음을 입증해내야만 한다.
두 명의 가수에게 다음 경연은, 그들의 미래를 점치게 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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