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벌인 일련의 일들을 두고 항간에선 '조공외교' 또는 '조공시스템'이란 말이 등장했다. 심지어는 현대판 '세자책봉'이란 말도 등장하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과거 동아시아 중화질서의 눈에 빗대어 분석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런 용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어느새 대국(大國)으로 우뚝 선 중국의 위상이 전제된 것이자 동시에 동아시아 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 엄존한다.
북중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느덧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존도도 25%에 육박하고 있다. 한중 무역의 전성기가 도래했지만 양국 무역의 불균형은 매우 심각하다. 아무리 자존심을 차리고 말해도 중국이 우리에게 편의를 봐주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거대 중국시장을 향해 자발적으로 손을 벌리고 있다. 위기를 맞거나 호황을 맞거나 상관없이 모두 중국 대륙으로 달려가고 있다.
▲ G2의 위상묘사로 논란이 된 화보 |
서방 학자들 중에서도 특히 '조공시스템'을 거론하며 신중화의 시대가 도래한 양 흥분하는 논조를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말 '신중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중국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마치 중국이란 대국이 이미 중천의 태양처럼 굴기했다고 떠드는 것은 비단 중국인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주변국 인사들도 매한가지이다.
'중화(中華)'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공시스템'은 '신중화'를 대변하지 않는다. '조공무역'은 중화문명의 약발이 거의 다 빠지고 단지 경제적인 교류만이 활성화되었던 명청(明淸)대에 이르러 도입된 시스템에 불과하다. 시간적 선후로 말하자면 '조공무역'은 '중화'의 끝물이고, 그 규모나 파워로 말하자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실 중화의 위대함은 경제적 분야의 활성화가 아닌 문명의 힘으로 동아시아를 호령하던 시절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중화'란 무엇인가? 중화는 여러 중국적 요소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역사를 통해 드러난 중화는 구도이자 사상이고 질서이자 권력이었다. 고대 중화의 면모는 본래 지역과 혈연의 개념에서 출발했다. 왕이 사는 중심지역, 그리고 화하족이란 민족 정체성을 가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화의 중심축은 지역과 혈연에서 '문명'으로 이동했다. 문명의 우월적 중심지란 개념 속에서 화이(華夷) 사상이 배태되었다. 그리고 진한(秦漢)대를 거쳐 수당(隋唐)대에 이르면서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중화질서가 구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화의 위대한 면모는 결코 소위 책봉과 조공으로 보여진 정치경제적 역학구도도 아니고 강력한 군사력에 입각한 동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도 아니었다. 책봉과 조공시스템은 역대로 동아시아에 영향을 끼쳤지만 그 관계는 매우 느슨했으며 기본적으로 상호 자율적 체제를 유지했다. 또한 중국의 역대 군사력은 결코 당대 최강이 아니었으며 수시로 주변 유목제국의 위협에 굴복당하거나 침범 당하기가 일쑤였다.
▲ 소프트파워를 중시한 대국사유를 보여준 '대국책' |
청대 고염무(顧炎武)가 "성을 바꾸고 호를 바꾸면 나라가 망한 것이지만,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먹이면 천하가 망한 것이다"라고 말했던 그 '천하'가 곧 문물제도와 문명교화를 상징한다.
중화질서와 중화문명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고 말하는 수당대에 이르면 이 소프트파워가 가장 개방적이고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수당대 당시 소프트파워를 논하면 적어도 세 가지 면에 주목하게 된다. 첫째는 수당대의 불교, 한자, 법령, 제도와 같은 소프트파워의 동아시아적 확산이다. 둘째는 당시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적인 개방, 소통, 교류의 활성화이다. 셋째는 정치적 중화질서의 기반 위에서 중국적 원천을 지닌 문화가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에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중화 소프트파워의 전성기는 중화문명의 최고수준, 국제관계의 개방성, 중화질서와 이를 통한 중국문화의 확산이 확보되었을 때에 구현되었다는 사실이다.
'거꾸로 중화'의 시대다
명청대의 중화 위용은 수당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개방과 소통이란 측면에서 명청대는 해금(海禁)정책과 같은 폐쇄적인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중화의 전방위적 파워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조공무역'의 전성기는 이 때 등장하게 된다. 외면적으로 볼 때 국제무역의 활성화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한 듯 보이지만, 전체적인 면에서의 중화적 위상은 오히려 축소된 면이 있다.
따라서 '조공무역' 현상으로 '신중화'를 논하는 것은 용의 꼬리만 보고 용을 논하는 것과 같다. 진정한 중화의 시대가 오려면 국제적으로 공인된 중화 외교질서, 설득력 있는 정치경제적 제도나 법령,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문화적 내용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중국의 중화적 발걸음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경제적 성장을 통한 대국의 건설은 결코 견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중국 스스로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작 '소프트파워' 담론의 본산지인 미국보다 중국에서 '연실력(Soft Power)'은 훨씬 긴급하고 보편적인 화두로 자리를 잡았다. 중국에선 대국과 소프트파워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를 놓고 정부로부터 학계 그리고 민간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싸매고 연구 중이다. 바야흐로 '거꾸로 중화'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경제를 먼저 성장시켜 놓고 문물제도와 문명교화를 하나하나 다시 복원하고 중건하고 있다. 그 속도는 매우 빠르고 그 사업은 실로 입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화에 대응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중화는 중화로써 대응해야 한다. 중화의 다양한 면모를 일국주의나 민족주의 또는 지역주의나 군사주의 등의 단면으로써 대응한다면, 중화의 다양한 면모 속에서 하나의 지엽적 문제 속에 매몰될 개연성이 높다. '거꾸로 중화'의 시대에 우리는 진정 당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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