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들이 저축은행의 부실화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채권 중 4000억 원 가량을 인수한다. 건설업체와 저축은행의 '묻지마 수익성 경쟁'으로 일어난 부담을 예금자가 지게 된 꼴이다.
26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시중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정상화가 가능한 PF 사업장에 대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며 "전체 약 4000억 원 규모"라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은행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얘기다.
저축은행 부실채권, 은행이 인수
이번 부실채권 인수는 저축은행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 PF 사업장에서 저축은행 회수분을 은행이 인수하거나, 저축은행이 브리지론(단기차입) 형태로 보유한 채권을 은행이 본 PF로 전환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은행별 매입규모는 PF 규모에 따라 적게는 300억 원대에서부터 많게는 1000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는 결국 대기업과 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따라 발생한 부실을 예금자의 돈으로 메워주는 꼴에 불과해, 비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 원장이 애써 은행의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관치 의혹이 이는 것을 사전 차단한 것은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애당초 금융감독당국은 PF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부실 저축은행을 은행이 직접 인수토록 종용했다. 감독당국이 이와 같은 입장을 밝히자 시중은행들도 일제히 이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뒤이어 감독당국은 구조조정 기금을 이용해 PF 부실대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으나, 결국 한 발 나아가 은행의 '자율 인수'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결국 저축은행의 부실을 은행에 떠넘겨, 예금자들에게 부실처리 비용을 전가하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제대로 된 구조조정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관치금융을 통해 이와 같은 길을 막았다는 얘기다.
감독당국 모럴 해저드가 문제
물론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납세자에게 비용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이 최선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그에 따른 사전적ㆍ사후적 절차를 밟게 돼, 저축은행 경영진이나 감독당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무엇보다 제도를 개선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가능하다"고 차이점을 강조했다.
결국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부가 잘못을 책임지지 않기 위해 민간의 영역에 떠넘긴 게 이번 회의 결과의 전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 저축은행의 PF 부실 원인에는 정부의 잘못도 크다는 게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9일, 금융감독원이 부실 저축은행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직접 매매알선에 나서는 등 부적절한 개입을 시도해 저축은행 연쇄 부실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5년 정부는 저축은행 간 M&A가 가능하도록 감독규정을 개선했다. 또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8년 9월에도 영업구역 외 최대 5곳에 지점 설치가 가능하도록 저축은행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들은 무리한 덩치 확장 경쟁에 나서게 됐고, 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공격적인 영업 경쟁에 나섰다가 이번 사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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