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달리 지금까지 대중소기업간 격차해소와 원하청관계의 개혁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진보개혁진영은 뚜렷한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이는 정운찬 위원장의 발언을 단순히 산업경제적 문제해결을 위한 진정성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이기에 난감한, 복합적인 정치역관계에 대한 판단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은 불공정하도급문제를 다시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재벌대기업의 하청협력업체에 대한 책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새롭게 고민하도록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초과이익공유제의 방향과 쟁점에 대한 논의를 정치적 논란으로 협소화되는 것을 저지하는 동시에, 이 문제를 재벌대기업의 불공정하도급문제와 중소기업의 구조적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 대책과 연동시키는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원청대기업과 하청중소기업간 양극화가 초과이익공유제의 배경
▲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을 불러온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
산업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원하청관계를 맺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경향이 상당부분 불공정하도급거래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은 학계에서 일반화된 상식이다. 정남기와 정재호의 연구(2008)에 따르면, 불공정한 원하청관계에 따른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는 기업의 경영성과를 나타내는 수익률지표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위탁대기업과 수탁중소기업간 매출액영업이익율의 격차는 2002년 3.11%에서 2004년 1.61%로 줄어들다가, 2005년 이후 다시 격차가 확대되어 2007년 현재 4.42%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영업이익에서 영업외손익을 가감한 경상이익과 매출액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매출액경상이익률에서 그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2003년 2.17%까지 줄어들었던 위탁대기업과 수탁중소기업간 매출액경상이익률의 격차는 2004년부터 다시 확대되어 2007년 무려 6.13%에 이르고 있다.
▲ 위탁대기업과 수탁중소기업의 수익률의 격차 변동추이 |
이러한 상황은 원하청기업간 불공정 하도급관계가 예나 지금이나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소기업의 육성과 산업경쟁력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원하청기업의 공정거래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중간착취를 수익재분배로 보상하는 특단의 조치
한편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현장과 학계는 물론, 여야와 정부조차 인식하였기 때문에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동반성장위원회의 정운찬 전 총리가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이 초과이익공유제는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대기업의 상생방안과 정부의 동반성장 추진대책이 불평등한 원하청관계에 묶여 있는 중소기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특단의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7월 이후 쏟아져 나온 재벌대기업의 상생협력방안은 사실상 기존 대책의 재탕에 불과하고 하청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원자재가격 상승분의 반영 및 납품단가의 합리적 결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계획이 전무하다.
정부의 9월 29일 종합대책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하도급법 개정안'은 협동조합에게 하도급대금 조정신청권을 부여하고 기술유용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제안은 원청대기업의 지원과 혜택을 하청중소기업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원자재가격의 반영과 납품단가의 인상 등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실현과정을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원하청관계가 가지고 있는 교섭력의 차이에 의해서 현실에서 왜곡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는 '목표이익의 초과분 중 일정부분'을 하청중소기업과 나누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초과이익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왔는가가 중요하다.
예상했던 바대로 정운찬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는 여당진영과 재계는 물론, 보수언론으로부터 '반시장적이고 현실적 적용이 어렵다'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아전인수격'의 전형이다. 이미 재벌대기업은 정부의 '반시장적인(?) 특혜'를 독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지 및 재개발 초과이익환수제와 같이 소위 불노소득에 대한 법적 규제가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독과점적 시장지위를 악용하거나 지대추구를 통해 정상수익 이상을 달성하는 경우 이를 '반시장적'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경제원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제의 핵심은 재벌대기업으로 대표되는 원청의 높은 수익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에 있다. 초과이익의 재분배에 대한 합리성여부는 바로 그 수익이 어디에서 나왔는가에 대한 판단에 달려 있다. 원청대기업의 수익은 원가절감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지는 납품가격의 통제, 하청기업에 대한 비용과 위험의 전가, 불공정하도급거래를 통한 중간착취, 소비자에 대한 가격전가 등을 통해 부풀려졌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연초에 수립하는 이익목표액을 연말 결산 이후 초과달성이 확인될 때 초과이익의 일정부분을 산하 하청협력업체들에게 나누어 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법적 강제가 아니라, 원청대기업의 자발적 실행을 기본경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세금 감면, 공정위조사 면제, 정부조달사업시 가산점 부여 등을 가미하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수익에 대한 협력업체의 기여를 인정하고 납품단가의 인하로 인한 원가절감이 원청기업 초과이익의 원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진전된 정책대안임은 분명하다. 이와 같이 초과이익공유제는 폐기되어야 할 비현실적 정책대안이 아니라, 공정거래의 확립과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위해 그 내용이 보완, 발전되어야 할 정책과제이다.
과연 재벌대기업의 자발적 의지와 시혜적 용단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지만 초과이익공유제는 원청대기업의 자발적(?) 의지에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혜성 선별장치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지 않아 확인하기 힘들지만, 초과이익공유제는 공유의 양과 방법을 전적으로 원청대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있다. 결국 재벌대기업으로 대표되는 원청업체가 이를 무시하면 실행 그 자체를 기대할 수 없는 '임의적 시혜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초과이익공유제의 혜택 그 자체가 재벌대기업과 직접적으로 하청관계를 맺고 있는 계열사와 1차 협력업체들에게만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하청구조의 중층화를 통해 이들 중견하청업체들은 상당한 정도의 자본력과 수익성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불공정하도급거래의 폐해로 인한 악영향을 규모가 적고 협상력이 약한 2-3차 하청중소업체가 더 많이 받고 있다.
한편 협력업체에 대한 기여도 평가 및 판단의 주체가 원청대기업이기 때문에 하청중소기업의 종속성과 전속성이 더 강화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원하청관계의 근본적인 문제가 원청대기업에 대한 자금, 물량, 기술측면에서의 의존성에 있다고 한다면, 하청중소기업의 독립적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초과이익공유제의 세팅(setting)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재벌을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리그'에 포함되는가에 따라 하청업체의 운명이 달라지도록 만드는 현행 그룹차원의 상생협력방안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오히려 초그룹적인 차원에서 업종별로 원하청간 공생협력기구를 만들고, 원청대기업의 초과이익 중 일정부분을 적립기금으로 조성하여 이 자금을 공정한 절차와 선정기준에 따라 하청업체의 기술개발과 고용투자에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수익재분배차원을 넘어서 생산영역에서의 상생협력방안이 보완되어야
한편 초과이익공유제는 전형적인 분배차원의 개선책이기 때문에, 생산에서의 상생협력방안이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하였듯이 하청중소기업의 가장 큰 고충은 원자재가격의 인상이 납품단가에 반영되지 못하고 납품단가 또한 일방적인 인하압력으로 인해 수익성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불공정하도급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초과이익공유제와 같은 실현이익에 대한 재분배정책만이 아니라, 협력생산과정에서의 비용 및 성과의 공유체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적어도 납품단가가 해당 원자재의 가격인상과 연동되는 방식을 보다 세밀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많이 논의되어온 납품단가조정협의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고 납품단가의 원가연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납품단가의 적정인상액과 관련된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모든 협력업체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기준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각 부품의 재료비인상과 연동시키는 방식은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매 분기 발표하고 있는 총 물가지수의 구성요인인 개별 물가지수를 해당 품목납품단가 인상액과 연동시키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현재 성과공유제는 원하청간 불평등한 교섭력의 차이로 인해 기술유출, 원가절감과 비용전가의 기제로 악용될 소지가 아주 크다. 또한 원하청기업간 불평등한 기업관계를 고려할 때, 양자간의 기술협력과 부품개발 등을 통해서 협력이익이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공유되기가 쉽지 않다. 바로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자동차산업의 경우 자동차공업협회와 자동차공업협동조합 등이 공동으로 그 기준과 절차를 정하고 이를 평가하는 지원센터를 공동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 기구가 원하청기업간의 공동이익을 위한 공동투자와 공동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거래의 정착, 강력한 하도급법의 재규제화로
초과이익의 재분배에 앞서 공정거래의 정착에 필요한 하도급법의 엄격한 규제강화가 요구된다. 현행 하도급거래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불공정거래의 관행이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상시적 감시감독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년 1회 서면실태조사를 통해 대금결정방식, 대급지급방식,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으나,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시감독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공정위가 독점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고발권을 중립적인 제 3기구에게 이관하는 동시에, 이 기구의 의사결정권을 정부 유관기관 및 관련 중소기업단체 및 협동조합, 관련 노동조합과 공익성을 지닌 민간전문가가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하도급계약서의 문서화를 법적으로 명문화하고 일정규모 이상 거래와 대규모 사업체의 경우 표준계약서 사용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현재 하도급법에서는 '계약서'라는 규정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일정한 사항을 기재한 서면'을 교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원하청관계가 계약관계가 아닌 단순 위탁생산관계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명문화된 계약서작성을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음으로써 하청업체가 법적 소송을 제기할 때 큰 불이익을 받고 있다. 권장사항으로 되어 있는 표준계약서의 작성을 10억 이상의 거래, 혹은 300인 이상의 사업체의 경우 의무화해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관계의 정착을 유도해야 한다. 만일 표준계약서의 작성이 이면계약과 같은 문제를 파생시킬 수 있다면, 하도급계약의 중요내용, 즉 납품단가의 액수, 계약물량, 주문사양, 계약기간, 대금지급방식, 단가조정방안, 재료비 및 원가반영방안 등의 항목을 공정위에 공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불공정하도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조치의 정비 및 개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벌대기업의 각성과 실천이 중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재벌대기업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노동자, 중소기업, 지역주민, 소비자, 더 나아가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회적 책임기업으로 재벌대기업이 되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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