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일본 동부를 강타한 대지진 속에서 침착하게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주목을 받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사지로 들어간 원전 노동자와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고 침착하게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일본 특유의 문화가 엿보인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난 후 언론들은 원전에 남아있는 '최후의 결사대'를 사무라이로 묘사하며 영웅적인 면모를 칭송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원전에서 노동자들이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고, 정부는 법정 방사선 피폭 허용량을 올리면서까지 인력을 추가 투입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이지만 집단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일본의 정서와 닮았다.
한편으로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해 지진과 화산활동이 유난히 많은 일본에서는 재난 상황을 다룬 만화도 많이 나왔고 일부는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1936년생으로 <고르고13>이라는 장편 연재만화로 잘 알려진 원로 작가 사이토 다카오는 각각 1994년과 1997년 <생존게임>과 <브레이크다운>을 그렸다. <생존게임>에서는 지진으로 지각 변동이 일어나면서 섬에 갇힌 한 소년의 생존기를 다룬다. 소년은 문명이 사라진 곳에서 채집과 수렵, 불 피우기, 식량 저장 등 원시적인 생존 방법부터 하나씩 배워나가야 한다.
<브레이크다운>은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 후 닥친 대재앙 속에서 한 남성이 인간성을 지키며 생존해나가는 과정을 다뤘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는 평소 관심 있었던 자연 상식을 이용해 독성이 있는 식물을 구별하는 등 생존 전략을 만들어 나간다. 자신이 살던 도시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서로 식량을 빼앗으려는 인간의 이기심과 마주치지만 그는 인간의 공생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모치즈치 미네타로의 <드래건 헤드>는 재난 상황에 마주친 인간의 공포와 정신적인 혼란을 깊이 파헤친다. 만화에서 재앙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지만 거대하게 벌어진 후지산 분화구를 바라보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러한 일본 재난 만화들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비극도 정면으로 맞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와 힘든 상황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언뜻 보면 대재난 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욕심을 앞세우지 않는 일본인들의 정서는 이러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로 원전 사고를 악화시키고, 재난 지역에 구호 활동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 등 문제점이 나타나는 상황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모습이 의외라는 반응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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