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행인들이 발걸음을 늦추고 유인물을 힐끔힐끔 들여다본다.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정사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자회견과 1인 시위가 열리지만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드물다. 이날 행인들의 눈길이 유난히 쏠린 건 현수막에 적힌 '전세'라는 단어를 보고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건져보려는 마음 때문일 게다.
민주당‧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은 21일 청사 앞에서 정부가 전세대란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며 단기 및 근본 대책을 촉구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전세 가격이 96주 연속으로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사회 단체들은 2년 전부터 대책을 미리 마련할 것을 촉구해왔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는 민주당 원혜영 전월세특위 위원장과 박영선 의원도 함께했다.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1회 보장과 전월세 인상료 상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한 박 의원은 "예고된 대란이었지만 정부와 여당은 안이하게 대처했다"며 "2월 국회에서 임대차보호법이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김종민 서울시당 위원장은 지게에 돈다발 모양의 스티로폼을 메고 와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전세 인상료 5000만 원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김 위원장은 "전세난의 대안이 임대공공주택 확충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부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며 "전세 대책을 요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경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서울지역협의회 부회장은 전세난이 세입자뿐 아니라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아동센터까지 위기에 몰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 부회장은 "가정이 어려운 아이들이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함께 생활하는 아동센터들이 최근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며 "센터 운영비는 임대료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센터 운영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즉각 처리해 당장 전세 부담에 시달리는 세입자들을 보호하는 한편, 4%대에 불과한 중소형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폐지되거나 완화된 재건축 시 임대주택 및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다시 되돌리고 중장기적 과제로 임대차 등록제, 임대차분쟁 조정위원회 도입 등 임대료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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