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작년 12월 국회에 제출한 '자산유동화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지자체는 물론 국가까지 경제적 파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자산유동화란 대출채권, 부동산 등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증권화해 자본을 조달하는 기법이다. 자산의 과도한 유동화는 지난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꼽혔다.
정부는 개정안에서 자산유동화가 가능한 자산보유자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시키고, 신용도가 낮은 공기업이나 중소기업도 자산유동화를 가능하게끔 했다. 이전에는 주로 대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보유한 자산 중 부동산, 대출채권, 조세권 등의 유동화가 가능하리라고 보고 있다. 이 경우 4대강 사업처럼 대규모 재원 조달이 필요한 사업을 추진할 때 정부가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 또 국가부채를 늘리지 않고도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게 가능하다.
15일 조영택 민주당 의원과 참여연대의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부와 지방정부의 자산유동화, 꼭 필요한가'라는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경제 전반이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토론회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박효진 변호사,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이건범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김학수 금융위원회 과장, 원종현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의 참여로 진행됐다.
국가 자산유동화는 당겨 쓰는 빚?
박효진 변호사는 현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조세채권으로 자산유동화를 하는 행위는 미래의 국민이 낼 세금을 현재의 국민이 써버리는 행위"가 발생해 "현 정권이 미래 정권에 집행권이 있는 세금을 미리 사용하는 결과가 돼, 미래 국민의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할수 있다"고 비판했다.
유동화 대상 자산의 경제적 가치가 불안정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보듯,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들이 무너지자 최후의 대부자로 나선 곳은 정부였다. 그런데 정부가 자산유동화에 직접 나서면 최종 대부자가 사라진다. 그만큼 경제의 위험이 더 커지는 셈이다.
박 변호사는 "지금까지 (유동화) 대상자산의 경제적 가치의 불안정성 및 경제적 가치평가의 부정확성은 정부의 보증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보험으로 신용보강을 해 왔다"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자산유동화를 할 경우 더 이상 신용보강을 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효성도 없어
결국 정부나 지자체가 자산유동화를 한다손 치더라도 그만큼 위험비용(이자율)이 높아져 비용만 많이 들뿐, 국채나 지방채 발행과 큰 차이가 없으리라는 전망이 나올 수 있다. 자산유동화는 자산보유자와 투자자를 연결시켜 줄 유동화전문회사(특수목적회사)를 필요로 하고, 변호사 등의 선임비용까지 발생한다.
실제 다양한 참여자들이 이번 개정안으로 인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김태일 교수는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정부가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부동산 유동화 시 부실 책임 논란 등이 발생할 수 있고 보증인이 없으며 △정부 대출채권은 대체로 취약계층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유동화가 곤란하고 △정부 고유의 권한인 조세권을 과세권과 분리해 민간 투자자에게 양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비판했다.
한 마디로 현실성이 떨어지고, 실효성도 낮다는 얘기다.
이건범 교수는 "지방채시장의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채권발행이 실현가능한가"라고 의문을 표하고 "결국 (유동화) 채권 발행이 공공부문 부담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 경제 위험도 커져
무엇보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돼, 정부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채권발행을 남발하게 되면 그만큼 국가 경제가 큰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는 우려가 잇따랐다.
이 교수는 "중앙정부 재정문제가 심각하다"며 "(자산유동화가 쉬워질 경우) 중앙정부 채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방정부의 채무부담을 증가시켜서 지방재정이 악화되거나, 지방정부 역시 지방공사 등에 채무발행을 넘기는 행위를 통해 국가 전체의 공적부문 부실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종현 입법조사관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를 자산보유자로 명시하는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국민의 조세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국가나 지자체의 신용등급이 과도한 빚으로 인해 하락하면 그 여파는 국민경제 전반에 미칠 것"이라며 "자산유동화 제도는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지나치게 커, 페지하는 게 바람직하고 확대적용은 절대 불가하다"고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김 교수는 나아가 정부가 이번 개정안을 제출한 의도가 무엇인지도 의문이라고 의혹을 표했다. 그는 "왜 이번 개정안에서 굳이 ABS 발행주체로서 정부를 포함시켰는지 그 의도를 모르겠다"며 "정부가 어떤 자산을 담보로 무엇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려는 건지(에 대해) 분명히 담당자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학수 금융위 과장은 "이 법을 개정하면 국가, 지자체를 포함한 여러 경제 주체들이 대출을 받느냐, ABS를 발행하느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된다"며 "자금 조달 수단을 늘려줬다고 해서 무작정 국가 부채가 늘어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규제를 풀어놓고 다른 법 체계에서 적절히 규율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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