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FTA의 발효로 인한 우리 농업의 피해 규모를 연간 586억 원으로 예상했으나, 협정 발효 이후 우리가 칠레로부터 수입한 농산물 증가액은 전부 합쳐도 40억 원에 불과한 실정입니다."(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2005년 3월 16일 국회 초청 FTA 포럼 자료집 <선진형 통상국가로 가는 길: 자유무역협정(FTA)과 국회의 역할> 4쪽)
"어차피 경제가 살 길은 수출밖에 없습니다. 수출하려면 FTA를 해야 합니다.(이명박 대통령, 2011년)
그들이 보고하지 않은 FTA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2011년 신년사에서 식량 안전이 전지구적 문제(全球性问题)로 등장했다고 보고하고 이에 대한 총력 대응을 제창했다.
일본 정부는 작년 6월 발표한 <식료 농업 농촌 백서>에서 일본의 식량자급률 41%(열량기준)를 2020년까지는 50%로 끌어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일본의 농지면적을 앞으로 10년간 461만 헥타르(ha)로 유지하기로 했다. 왜 이렇게 중국과 일본은 농업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들은 미국과 유럽연합과의 FTA를 하지 않는 것일까?
2003년의 노무현이 옳다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미국과의 FTA를 결심하기 이전인 2004년, 이미 미국은 한미 FTA연구를 마쳤다. 그래서 미국이 FTA를 해서 얻을 것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 연구는 한국과의 FTA를 성사시킬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왜 그랬을까? 바로 한국의 농업 문제 때문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5월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한국은 농업 분야를 위협하는 어떠한 FTA도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J. Schott. <Free Trade Agreements: US Strategies and Priorities>, 194쪽)
그렇다. 2003년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옳다. 농업은 하나의 사회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 부분이다. 한국은 농업이 없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나 홍콩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같은 세계최대 농업강국과 FTA를 하지 않는다.
한국 농업은 지난 16년 간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만으로도 버겁고 거친 숨을 힘들게 겨우 내쉬고 있다. 1995년 WTO 가입 이후 한국 농업의 부가가치는 20조 원 대에서 성장을 멎었다. 2009년의 농림어업 부가가치 24조 원은 10년 전인 1999년의 수준이다.
2009년 한 농가당 평균 경지 1.45ha는 2002년의 그것과 같다. 전체 농가에서 2ha 이상의 농가가 비율 14.4%는 9년 전인 2000년의 14.9%보다 오히려 낮다. 2009년 호당 농업소득 969만 원은 1995년보다 더 낮다. 식량자급률은 사료 포함 26% 수준이다. 선진국에서 최악의 자급률인 일본보다도 더 낮다. 이 모든 수치는 한국이 아직 미국, 유럽, 중국과 FTA를 하기 이전의 수치이다.
한미·한EU FTA는 왜 구제역인가?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2005년, 한칠레 FTA 협정 발효 이후 칠레에서 수입한 농산물 증가액을 '전부 합쳐도 40억 원'에 불과하다고 했다.(국회 초청 FTA 포럼 자료집 <선진형 통상국가로 가는 길: 자유무역협정(FTA)과 국회의 역할> 4쪽)
그러나 발효 5년차인 2009년에 이르러 칠레산 농축산물 수입은 FTA가 없었던 2003년에 비해 1490억 원이 늘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부문 FTA 이행 영향 평가 및 보완대책 평가> 28쪽)
칠레와의 FTA에서는 쌀은 물론이고, 사과, 배, 육류, 낙농품 등 주요한 농산물은 대부분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수입이 급증하였다.
한미·한EU FTA가 한국 농업에 줄 충격은 WTO나 한칠레 FTA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구제역처럼 한국 농업에 만성적이고도 상시적인 고통을 줄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농업을 밀어 낼 것이다.
한국이 지난 16년간의 WTO 체제 동안 요구받았던 관세율 감축은 평균 24%였다. 그러나 FTA는 그것을 100% 다 없애는 것이다. WTO 체제에서는 '농산물특별긴급수입제한조치(SSG)'가 있어 외국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관세를 더 올려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한EU FTA는 이런 최소한의 방어조차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인정받은 몇 개의 품목도 10년에서 20년이 지나면 방어 장치를 영구적으로 상실한다. (한미 FTA 부속서 3-A, 2항, 한 유럽 FTA 부속서 3, 2항)
쌀을 제외했다고? 이미 쌀마저 소비량의 약 13%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그리고 쌀은 2015년 전에 전면 개방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한미·한EU FTA를 보면 관세 철폐를 계속 가속화하기로 되어 있다.
▲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 ⓒ프레시안 |
구제역은 관료주의가 만든 재앙이다. 발생 현장에서 즉각적인 판정과 대응조치조차 준비하지 못한 관료들이었다. 그런데도 관료들은 축산농민이나 이주노동자에게 실패를 전가한다. 한미·한EU FTA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에게도 한미·한EU FTA에 우리 농업이 노출되었을 때의 대책이 없다.
일본정부의 2009년 보고서는 일본이 농업강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해서 농산물에 대해 관세를 철폐할 경우 일본 농업 생산액의 42%가 감소하고, 농업 식품산업 관련 종사자 375여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한국의 공무원들은 아예 이런 종합 연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농민들이 다방에서 커피나 마시며 보조금을 축낸다고 비난한다.
나는 이 연재에서 농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대안은 미국, 중국, 유럽연합과 같은 농업강국과 FTA를 하지 않는 것이다. 2003년의 노무현과 2011년의 후진타오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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