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동향이 심상치 않다. 실제로 전셋값이 많이 올랐다. '전세대란'이란 말은 과장된 수사가 아니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전세 물량 자체가 확 줄었다.
정부·여당 낙관 속 전셋값 상승 전국으로 확대…전세가율도 큰 폭 상승
정부와 여당은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지난 달 27일 "전셋값 상승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면서 "전세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4일에는 "전세난이 심각하다"며 조만간 당정회의를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가 8일에는 "전세대란은 전국적 상황이 아니며 경기 남양주와 서울 송파, 서초 등 일부 지역의 상황"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전세대란은 이미 전국으로 확대됐다. 지난 1일 국민은행의 '주택가격 동향 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지역인 전국 144개 시·군·구 가운데 123개 지역에서 전셋값이 올랐다. 지난달과 비교할 때 전국 평균 0.6%포인트 상승했다.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도 크게 올랐다.
속이 타는 것은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대전에 사는 조영근 씨(26세)는 내년 3월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구하기가 어렵다. 원하는 크기의 아파트는 전세금이 많이 올랐다. "24평 아파트를 봤는데 매매가가 1억2000만 원인데 전세가 9000만 원이라고 하더라"고 조 씨는 말한다. 조 씨는 "아예 매매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대출을 더 받아야 해서 부담스럽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하는 민경재 씨는 "요즘 매매 거래도 없긴 하지만 34평(112㎡) 아파트 같은 경우 보통 5억에서 5억5000만 원 정도에 가격이 형성되는데, 보름 전 같은 평형이 2억3000만 원에 전세로 나갔다"고 말했다. 민씨는 "전세대란이라는 말이 딱 맞다"며 "이 가격(전세가)은 3년 전보다 5000만 원 정도 오른 것"이라 귀띔했다.
전셋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살던 집에서 '눌러앉기'도 쉽지 않다. 집주인이 최근 전세 시세에 맞춰 전세금을 올리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민 씨는 "어떤 특정 아파트의 경우긴 하지만 2년 전 계약할 때보다 6000만 원을 더 주고 계약을 연장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의 한 부동산 중개소에서는 지난달 전셋값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8월 전세금을 올려 받지 않고 재계약을 한 집주인이 최근 전셋값 상승이 이어지자 뒤늦게 '1000만 원을 올려 달라'고 요구한 것. 세입자는 당연히 펄쩍 뛰며 반발했고 '차라리 진작에 올려 달라고 했으면 나갔을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이 중개소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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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오른 것보다 물량 없는 것이 '진짜 문제'
하지만 전셋값 상승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본질은 전세 물량 부족이다. 물론 전셋값이 오른 것은 사실이나 상승 폭은 최근 3년 간의 추세를 보면 그리 크지 않다. 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 조사'를 보면 지난 9월 전국의 전셋값은 지난달 대비 0.6%포인트(서울 0.7%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올해 3월의 0.7%(서울 0.8%)나 지난해 9월의 1.4%(서울 2.3%), 2008년 3월의 0.6%(서울 0.9%)에 비해 그리 큰 폭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전셋집을 구하는 수요자들은 몹시 절박한 상황이라 느낀다. '전세대란'에 대한 체감이 통계 수치와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체감과 수치가 다른 이유를 현장에선 잘 알고 있다. 서울 금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다들 월세만 내놓고 전세는 (물량이) 없다"며 "은행 이자 받아 봐야 별 것 없으니까 다달이 몇십만 원씩 들어오는 월세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전세를 놓던 집도 월세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영등포구 민경재 씨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도 현재 전세 물량은 한 건도 없다.
"저금리 정책 후폭풍, 전세 수요자가 뒤집어쓴다"
부동산 정보 사이트 '스피드뱅크'의 이미현 부동산연구소 연구원은 14일 "집 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게 되면서 전세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집 주인들이 낮은 은행 금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게 이유다. 전세금 상승은 저금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하지만 지난 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에서 드러났듯, 당국은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수출 대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원화 가치의 급격한 절상을 막는다는 목표를 일순위에 놓는 정책 기조와 맞물린다. 대기업 보호 정책의 후폭풍을 전세 수요자가 고스란히 뒤집어 쓰는 형국이다.
이제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볼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성찬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은 14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바로 가기)에서 현재의 전세대란은 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구입했던 한국 부동산 시장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세 제도는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던 한국적 상황에서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아파트 가격 붕괴 조짐이 있는 상황에선 전세 제도 자체가 존립 근거를 잃어버린다. 조 연구위원은 "토지 불로소득 추구에 기초한 아파트 매매"가 전세대란의 내부적 원인이라며 "투기적 가수요의 감소가 '민간 전세주택' 공급 감소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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