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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들이 회사에서 죽었는데, 삼성은 돈 얘기만…"

삼성LCD 자살 노동자 유가족, 장례 미루고 진상조사 촉구

11일 충남 아산 탕정에 있는 삼성전자 기숙사에서 자살한 김 모(25)씨의 유가족들이 장례를 미루고 진상조사를 촉구하기로 했다. 경찰은 단순 자살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입사 이후 김 씨의 생활이 순탄치 않았을뿐더러, 사고가 났을 즈음 사측이 제대로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14일 오전 충남 천안 순천향병원 빈소를 찾았다. 故 김 씨의 모친 송 모(58) 씨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힘겹게 입을 뗐지만 푹 잠긴 목소리는 이내 울음으로 덮였다. 송 씨는 "처음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갔을 때는 차마 안치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며 "그저께나 돼서야 냉동된 아이 시신을 만지면서 죽은 이유를 밝혀내야 아들의 한을 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지난 11일 충남 아산 탕정면 삼성전자 가숙사 13층에서 뛰어내린 김 모(25)씨의 영정 ⓒ프레시안(김봉규)

"1년은 '나 죽었다'"던 김 씨, 두 달만에 고통 호소

故 김 씨는 학원차량 운전기사인 부친과 청소 노동자인 모친를 돕기 위해 지난해 1월 삼성전자 천안공장에 입사했다. 부친 김 모(57) 씨는 "아들이 삼성과 LG전자에 둘 다 합격했지만 삼성을 택했다"며 "아무래도 임금이 더 나오니 집에 도움 될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故 김 씨의 기본 급여는 약 100만 원 수준이었지만 잔업과 특근 수당을 합치면 한 달에 300~400만 원의 임금이 들어왔다. 물론 받는 만큼 이상의 일을 더 해야 했다. 유가족들은 "아들이 연수를 받고 배치된 후 2달여 만에 집에 왔을 때 힘들다고 호소하더라"며 "형식적으로는 3교대 근무였지만 12시간에서 15시간까지 일할 때도 있었고 수시로 불러내 일을 시켜 집에 온 적도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가족들이 찾은 김 씨의 유품 중에는 연수 기간에 사용하던 교육 노트도 있었다. 노트에는 설비 엔지니어가 알아야할 용어들이 촘촘히 적혀있었고 군데군데 "1년은 '나 죽었다'", "막내 지금의 마인드로 최소한 반년 이상", "초심 잃지 말자" 등 연수 당시 들었던 말들을 다짐삼아 적어놓았다. 하지만 그가 배치된 삼성 LCD 천안공장 클린룸의 환경은 다짐 이상이었다.

송 씨는 "아들이 원래 아토피가 있었는데 입사할 즈음에는 다 나았었다"며 "하지만 입사 뒤에 아토피가 악화돼 고통을 호소해왔다"고 말했다. 故 김 씨가 공장 배치되고 두 달 뒤 집에 왔을 때 아토피와 자극적 접촉성 피부염이 심해졌다는 말이다.

김 씨가 일한 곳은 삼성 LCD 천안공장 클린룸의 칼라필터 공정이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 의 이종란 노무사는 "칼라필터 공정은 감광제 등의 화학약품을 많이 사용한다"며 "방진복은 노동자로부터 제품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사람을 화학약품으로부터 보호해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공유정옥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소 전문의는 "아토피와 접촉성 피부염은 발병할 수 있는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단지 나아가던 아토피가 재발했다고만 생각할 수 없다"며 "기숙사 환경과 더불어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일을 해 왔다는 사실을 원인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故 김 씨는 결국 지난해 8월 타 부서로 옮겨줄 것을 요청해 자재관리부서로 발령 났다. 하지만 업무가 고된 건 다르지 않았고 결국 지난해 11월 병가를 냈다. 부친 김 씨는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아들이 잠을 못 이루고 앉아서 '회사 가기 싫다'며 애원해 회사에 병가를 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며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다음날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을 진단받고 5개월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회사는 2달밖에 병가가 안 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약물치료를 받으며 집에서 쉬던 故 김 씨는 상태가 호전되다가 병가가 끝날 시점이던 1월 초 다시 불안해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김 씨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故 김 씨는 11일 부로 다시 복귀하게 됐다.

▲ 故 김 씨가 지난해 1월 연수 당시 노트 한 편에 적은 노래 가사. 희망을 말하는 노랫말이지만 그는 1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레시안(김봉규)

"아들 소식 알린 게 구급대원…삼성은 뭐했나"

10일 인천에 있는 집에서 막차를 타고 천안으로 내려온 故 김 씨는 오후 10시 30분경 탕정기숙사로 들어갔다. 11일 오전 4시경 기숙사 13층 창틀을 넘으려 여러 번 시도하는 김 씨의 모습이 CCTV에 잡혔다. 오전 5시59분 집에서 자고 있는 가족들의 휴대 전화에 김 씨가 보낸 문자가 동시에 왔다. "엄마 아빠 누나 힘내시고 죄송합니다"

불안해진 가족들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故 김 씨는 받지 않았다. 오전 7시30분 경 가족들의 전화를 받은 이는 구급대원이었다. 그는 故 김 씨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후송 중이라고 답했다.

유가족들은 "아들 전화를 받은 구급대원이 사고 소식을 알려줄 때까지 삼성은 왜 알릴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분개했다.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삼성 측이 마련한 빈소가 차려져 있었다. 김 씨는 "장례부서 직원이라고 밝힌 이가 접근해 3일장을 치르도록 하고, 경찰서와 기숙사를 일일이 차로 태워주면서 언제 발인할 건지 계속 물어보더라"라고 말했다.

'관리의 삼성'의 면모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故 김 씨의 회사 동료들은 문병을 전혀 오지 않았고 관리 직원들이 장례를 돕겠다며 3~4명 씩 조를 짜 장례식장에 24시간 상주했다. 11일에는 부친을 빈소 인근의 모텔로 불러 '1년 연봉 2760만 원과 퇴직금, 위로금'을 제시했다. 사측의 사과를 기대했던 김 씨는 자리를 떠났다.

13일 사측의 안전총괄책임자가 찾아온 자리에서도 김 씨가 언론을 통한 공개 사과를 요구했지만 '요구가 뭐냐'는 답변을 들었다. 김 씨는 "사실상 보상비로 얼마를 바라냐고 한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가족들은 사측으로부터 정해진 시간에 발인하지 않으면 장례비를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말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故 김 씨가 뛰어내릴 당시 정황도 유가족들이 의문을 갖는 대목이다. 김 씨는 "경찰이 보여준 CCTV를 보면 김 씨가 창틀에 몇 번 올라가려 시도하는 걸 관리 직원이 보았지만 특별한 제지를 하지 않았고, 올라간 이후에나 안전 요원을 3명 대동하고 와서 아들을 데려갔다"며 "왜 처음부터 막지 못했고 6층으로 돌려보낸 아들이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갈 때까지는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유가족들은 14일 발인을 연기하고 김 씨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故 김 씨가 피부병 등을 호소할 때 사측이 취한 조치 △사측의 장시간 근무 및 잔업‧특근 강압 여부 △의사 소견서에도 불구하고 복귀 결정을 내린 근거 △1차 자살 시도 이후 관리 직원들의 조처 상황 △삼성 측이 장례 절차 진행을 독촉한 이유 등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 14일 충남 천안 순천향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故 김 씨의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한편, 삼성전자측은 이날 임원들에 대해서만 의무적으로 실시했던 정신과 검진을 일단 사원들에게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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