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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잡지 사망시대에 창간이라니?

[인터뷰] <대중음악 SOUND> 창간한 박준흠 "방법론 제시하는 매체 되고파"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음악 애호가에게 꿈과 같은 시대였다. 백만 장의 음반을 팔아치우는 뮤지션이 수두룩했고, 심지어 해외 유명 음악인들도 이 대열에 끼어들곤 했다. 음악전문지 시장도 놀라울 정도로 컸다. 90년대 당시 음악 전문잡지 시장에서는 <핫뮤직>을 중심으로 <지엠비(GMV)>, <월드 팝스>, <락킷(Rockit)> 등 여러 매체가 경쟁했다.

록 잡지를 사 모으던 팬들에게 1998년 1월은 조금 더 특별한 때로 기억될 것이다. 월간지 <서브(SUB)>가 창간했기 때문이다.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필진들로 꾸려졌던 <서브>는 헤비메탈, 팝음악 소개에 치우쳐있던 국내 음악잡지 시장을 동시대 영미권 최신조류로 끌어당긴 일등 공신이었고, 한국 대중음악의 100대 명반 리스트를 작성해 국내 음악의 성과를 되짚어보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 주인공이었다.

펜타포트 페스티벌 총감독과 가슴네트워크 대표로 더 잘 알려진 박준흠 전 <서브> 편집장이 새 잡지 <대중음악 SOUND(사운드)>를 만들었다. 무크지 형태를 취한 <대중음악 SOUND>의 창간호는 15일 발행된다. 학술지적 보고서와 현장 리포트, 그리고 대중음악 전문지 성격을 한 번에 아우른 <대중음악 SOUND>의 창간호는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지난 2년 간의 '루키 어브 더 이어(Rookie of the Year)'를 조명하는 코너를 비롯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죽음으로 사회적 관심을 일으킨 대중음악 유통구조에 대한 분석, 지난 10년 간 아이돌 음악 시장의 변화, 대중음악학과 신설 논의, 대중음악축제의 미래 등의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박준흠 <대중음악 SOUND> 발행인을 만나 잡지의 사망 시대에 다시금 잡지를 내놓은 이유를 들어보았다. 아울러 그의 음악관과 <서브> 시절에 대한 재평가도 요청했다. 인터뷰는 11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 ⓒ대중음악 SOUND

<서브>+<리뷰>=<대중음악 SOUND>

프레시안 : 음악잡지 시장이 사실상 사멸한 지금 왜 새로운 잡지를 만들었나?

박준흠 : 음악시장이 지난 십여 년 사이에 완전히 재편돼, 사실상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변화했다. 시장에 들어오는 자본의 절대크기가 줄어들었는데, 그마저도 극히 일부에 불과한 아이돌 시장에 집중됐다. 기형적 구조인데,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척박한 대중음악 현실을 직접 바꾸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현실을 바꾸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매체는 반드시 필요했다.

프레시안 : 꼭 음악전문지라야 했나? 워낙 잡지시장이 어려운데다, 특히 음악전문지 시장은 사실상 사망 상태이기 때문에 자꾸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박준흠 : 당연한 현실인데… 일반 매체와 전문지는 다룰 수 있는 분야와 종류, 독자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종합지에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일반 매체는 음악이 사회적 관점, 문화적 관점 등에 따라서 화제성을 가질 때만 타깃독자층을 상대로 관련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지난 십여 년 간 음악전문지에는 글을 쓰지 않는 평론가들이 생겨났고, 이들에 의해 음악평론 시장이 '음악가이드' 대신 '음악을 읽는' 평론 위주로 재편됐다.

물론 음악을 문화적, 사회적으로 분석하는 글도 필요하다. 그러나 순수하게 음악만을 논하는 '음악 가이드' 평론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전문지만이 소화 가능하다. 대중음악 평론이 '음악을 읽는' 글과 '음악 가이드'의 어느 중간에 위치한다고 보면, '음악 가이드'에 조금 더 무게추가 쏠려야 한다고 본다. 음반을 소비하는 사람을 위한 글이 죽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 : '이효리가 레이디 가가의 패션을 따라했다' 혹은 '어느 정권이 음악시장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글뿐만 아니라 '이효리 신보의 음악적 성취가 좋다/나쁘다'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박준흠 : 그렇다. 모든 음악 평론이 에세이가 돼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서브>와 같은 월간지 형태가 아니라 무크지 포맷이다.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는 장기적으로 볼 때 월간지, 혹은 주간지 형태로 가야하지 않겠나.

박준흠 :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돈이 없다. 정기발행을 하려면 총판을 구축하고,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근 근무자를 둬야 한다. 불가능하다. <대중음악 SOUND>를 만드는데도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들여서 기고료를 겨우 메웠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다. 도서출판 선의 김윤태 사장의 관심이 아니었다면 시작하기도 어려웠다.

두 번째로, 내가 시간이 없다. 내 본업은 공연기획자이지 평론가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잡지를 만들었다. 내가 기획과 필진 섭외, 편집 등을 도맡고 출판사가 유통과 디자인, 인쇄 등을 전담하는 협업 시스템으로 책이 나오는데, 이렇게 만드는데 시간이 최소 석 달은 걸린다. 8월 펜타포트 페스티벌이 끝나고 <대중음악 SOUND> 창간기획이 시작됐는데, 이제야 첫 책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심층적인 콘텐츠를 만들려면 월간지 형태로도 소화하기 어렵다. 기획에 한 달, 기고자의 원고 마감에 한 달, 제작에 한 달이 필요하고, 각자 생계를 위해 본업도 소홀히 할 수 없으므로 재충전에도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크지가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다.

물론 주간지 형태로 미리 원고마감 시한을 넉넉히 두고 기획연재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서브>에서 '스페셜 텍스트: 산울림으로부터 Next Big Thing을 중얼거리며…'를 이런 포맷으로 연재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든 정기간행물은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하다.

(도서출판 선은 가슴네트워크가 기획한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한국의 인디레이블> 등을 펴냈다. 한편 <서브>가 창간 기념으로 연재한 '스페셜 텍스트: 산울림으로부터 Next Big Thing을 중얼거리며…'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하고,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 선정 작업을 이행해 국내 대중음악 분석의 기틀을 잡은 기획이었다.)

프레시안 : 창간호에 수록된 내용들을 보면 매우 전문적이다. 애초에 음악산업 관계자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삼은 것 같다. 좋은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시장 안에서만 머물지 않을까 우려된다.

박준흠 : <씨네21> 얘기를 하고 싶다. 영화 관계자, 마니아뿐만 아니라 영화 지식을 흡수하고 싶어했던 일반 독자까지 영화산업으로 끌어들이는데 <씨네 21>이 큰 공을 세웠다. 그렇다고 <씨네21>이 쉽고 가벼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대중음악 SOUND>는 <서브>에 엘리트 문화소비자를 타깃으로 했던 <리뷰>를 결합한 형태이고, <씨네21>의 성과를 음악판에서 내고자 한다. <대중음악 SOUND> 편집을 현장 리포트와 학술지, 그리고 대중음악 잡지의 성격을 코너별로 나눠서 배치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록된 내용들은 지금 한국에서 반드시 필요한 얘기들이고, 이제껏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 류형규 마니아디비닷컴(maniadb.com) 운영자가 쓴 '대중음악 유통의 현재와 미래'는 기자는 물론, 평론가도 쉽게 쓰기 어려운 글이다. 유통산업에 몸담고 있는 이가 음원 수익배분과 관련된 논의를 가장 정확하게, 팩트를 갖고 썼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죽음으로 음원수익 배분 문제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조금 생겨났으나, 이를 제대로 소화한 매체가 없었던 게 사실 아닌가. 분명 대중음악 독자 사이에도 관심이 있는 사안인데 말이다.

▲박준흠 <대중음악 SOUND> 발행인. ⓒ박준흠

<서브>로 돌아보는 한국 음악시장의 과거와 오늘

(<서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다. 한국 음악 잡지시장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매체이자, 시장의 몰락을 지켜본 잡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공연기획자가 아닌 '평론가' 박준흠에 집중됐다.)

프레시안 : 아무래도 <서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브>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가 컸고, 당시와 오늘날의 대중음악 시장 분위기도 워낙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 음악잡지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였나?

박준흠 :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서브>가 매달 8000부를 발행했고, <핫뮤직> 같은 경우는 전성기 시절 2만여 부까지 찍을 때도 있었다. (프레시안 : 놀랍다. 지금은 종합일간지도 2만여 부를 못 찍는 곳이 적지 않다.)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당시는 음반을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평론, 음악산업 지식을 소비하려는 욕구도 컸다.

프레시안 : <서브>의 가장 큰 존재의의라면 동시대 해외음악 조류와 본격적으로 발맞춘 잡지였다는 점과 한국 대중음악 평론의 기틀을 열었다는 점 같다. 제대로 본 건가?

박준흠 : 맞다고 본다. 출발이 늦었지만, <서브>의 창간으로 인해 헤비메탈이 아니라 동시대 얼터너티브, 브릿팝, 전자음악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이 시기가 홍대 인디신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이고, 당시 홍대음악이 해외의 최신 조류와 동일한 시간대를 걸었기 때문에 <서브>의 존재가 두드러졌다. 시기적으로 우연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필진이 워낙 좋았다. 최고의 팝음악 기자였던 성문영 씨(현재는 네이버 오늘의 뮤직 필진, <테이킹 우드스탁> 등의 번역자)가 있었고, <키노> 출신의 김미영이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없는 전문적인 글을 썼다. 그리고 김민규도 한국 대중음악과 팝음악의 동시대 감각을 갖고 있었다. 한국 대중음악은… 어쩌다보니 내가 기획을 하게 되면서 평론계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프레시안 : 본래는 글 쓰는 일까지 할 생각은 없었나?

박준흠 : 원래부터 음악쪽 일을 하려고 했다. 병역특례(박준흠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를 마치고 케이블 방송국에 들어갔고, 동시에 서울재즈아카데미를 다녔다. 그때 <서브> 발행인이 된 인물을 알게 됐다. 내가 음악을 많이 듣는 걸 그 사람이 눈여겨보고 <서브> 창간을 제안했고, 이뤄냈다. 당시만 해도 난 샘플러 CD를 만드는 정도의 역할만 하려 했다. 다만 한국 대중음악 기획은 꼭 필요하다고 봐서 그 아이디어를 전하려 편집회의에 참석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그 일을 하게 됐다. 첫 인터뷰가 김창완 씨였다.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질문지를 읽느라 바빴다. 그때는 인터뷰 요령이 없었다.

프레시안 : <서브>가 나오던 시대는 인터넷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았던 때고, 그만큼 평론가의 지위도 높았다. 지금은 잡지를 인터넷이 대체하면서 정보의 유통량이 놀랄 만큼 많아졌고, 평론가의 권위는 낮아졌다. 격세지감이 들지 않나? 이는 <대중음악 SOUND>의 자립에도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

박준흠 : 두 가지로 나눠서 얘기하고 싶다.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잡지의 기능을 대체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대중음악 SOUND> 창간호에 실린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이 주도한 음악인 대담,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가 쓴 글, 김보성 흐르는문화학교 모단스쿨 교장이 쓴 대중음악학제에 대한 논의 등은 인터넷을 뒤진다고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당장 지금 인터넷을 뒤져보면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지 않나? 하다못해 음반유통사도 기획사와 유통사를 혼동해 인터넷에 표기한 경우가 적지 않다.

평론가에 대한 불신이 있는 건 사실이고, 평론업계의 문제도 있다는데 부분적으로 공감한다.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평론가로의 데뷔 문턱도 낮아졌는데, 그러다보니 자기 중심을 채 잡지 못한 평론가들이 데뷔하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다.

(김규항 발행인은 록음악 애호가이며 프로급의 실력을 가진 연주자다. <대중음악 SOUND> 참여필진과 편집위원에는 현직 교수, 음악산업 관계자, 평론가 등 다양한 이들이 참여했다.)

프레시안 : '자기 중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박준흠 : 최소한 음악을 십 년 이상은 '집중적으로' 들어야 글을 쓸 때 흔들리지 않는다. 새로운 장르가 나올 때 충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평론가라면 자기가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명확히 세워놓아야 한다. 이게 흔들리면 곤란한데, 그런 평론가도 있다. 앞서 내가 좋은 평론가란 '음악 읽기'보다 '음악 가이드'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얘기를 했다. 평론가도 취향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면 독자는 자기 취향에 맞는 평론가를 따라가고, 그 평론가가 소개하는 음악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평론가가 흔들리면 당연히 그를 믿던 독자는 '아, 속았네'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평론가와 독자의 취향이 맞지 않는데 독자가 그를 욕하는 건 당연히 무시해야겠지.

프레시안 : '박준흠'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업적은 아무래도 '한국의 100대 명반' 기획이다. <서브>에서 처음 시도한 기획은 나중에 <경향신문> 연재로도 꽃피었다. <대중음악 SOUND>에서도 이런 기획을 다시 할 생각은 있나?

박준흠 : '100대 명반'과 같은 작업은 정기적으로 하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5년에 한 번 정도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꼭 그 작업을 내가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제발 다른 분들이 이 작업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리스트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고, 기획 아이디어를 보는 것도 기대된다. <대중음악 SOUND>에서 이를 소화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구체적으로 해보지 않았다.

프레시안 :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뚜렷하게 양극화돼 있다. 한국음악과 해외음악, 아이돌 음악과 성인 음악, 인디음악과 주류음악 간의 간극이 매우 크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여성의 소비 규모에 비해 남성의 음악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나?

박준흠 : 교육, 노동 문제가 큰 원인 아닐까 싶다. 청소년들이 하는 일이란 게 공부하거나 티비 보는 것 정도밖에 없지 않나. 성인이 되면 죄다 88만원 세대가 되고, 휴식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결국 가장 편한 여가수단인 티비에 의존하게 되고, 가장 자극적인 음악인 주류음악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 남성의 음악소비가 무뎌지고 여성이 늘어나는 건 확실한 현상인데, 왜 그런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군대 때문인가…?

프레시안 :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이 부활할 수 있으리라고 보나?

박준흠 : 파이가 커지는 게 중요하고, 무엇보다 '정상화'되는 게 중요하다. 아이돌만 큰 시장은 결국 무너진다. 주류 음악시장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인디신의 아이디어를 필요로 한다.

두 신이 공생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당장 아이돌 음악만 봐도 변화를 알 수 있다. 최근 아이돌이 음악적으로도 일정 부분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이돌도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아이디어는 결국 인디음악과의 교류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대중음악 SOUND>가 그 방법론을 보다 충실히 설파하는 매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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