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조달한 자금에 대한 의혹이 점차 커지면서, 인수전이 점입가경으로 비화할 양상을 보이고 있다.
24일 현대그룹은 보도자료를 내 "일부 언론에 게재된 현대차 관계자의 주장은 명백한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라며 "민형사상 모든 법적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현대차 관계자는 이날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입찰 제안 때 이 자금을 현금성 자산이라고 한 현대그룹 측 설명이 허위로 밝혀졌기 때문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자체가 무효"라고 지적했다. 현대차는 최근 인수 관련 자문사인 골드만삭스를 통해 현대그룹이 조달한 현대건설 인수 자금 출처를 재검토해달라는 공문을 매각주간사에 보내기도 했다.
양측의 언론전은 단순 '흠집내기'로 치부할 성격이 아니다. 실제 현대그룹이 제시한 인수자금 5조5100억 원의 상당액이 의혹에 휩싸여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에 빌린 1조2000억 원이다. 당초 현대그룹은 이 자금을 두고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은행 예치금"이라고 설명했으나 법인의 자산규모가 33억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또 차입금은 전액 무담보, 무보증 자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프랑스 은행이 이처럼 좋은 조건으로 대규모 자금을 대출해줬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 인수ㆍ합병(M&A)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나티시스 측과 얼마나 오랜 기간 교류하며 신뢰를 쌓았는지는 몰라도, 무담보 대출로 저 정도 거액을 끌어왔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주식담보대출일 것이라는 추정만 난무한 상황이다.
일단 업계는 현대상선 우호지분을 보유한 넥스젠캐피탈을 통해 현대그룹 측이 나티시스 은행과 교감대를 나눴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넥스젠캐피탈은 나티시스 은행의 손자회사다. 지난 9월 17일에는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을 위한 270만 주 규모의 파생상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이 투자키로 한 8000억 원의 자금도 의혹을 낳고 있다. 동양그룹이 구조조정 중이라 투자 여력이 있느냐는 지적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언론은 "풋백옵션을 걸었다"고 보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풋백옵션은 일정한 자산을 정해진 기일에 약속한 금액으로 되팔 수 있는 권리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실패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장치다.
현대그룹은 "동양종금은 순수한 재무적 투자자로서 '자기 자금'으로 참여했다"며 "옵션 계약은 없다"고 해명했다.
동양종금 관계자는 "그룹 구조조정과 동양종금의 투자는 별개의 건"이라며 "현재로서는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다는 사실 외에는 어떠한 사실 관계도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동양종금증권이 특수목적회사(SPC,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을 발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등 담보물을 유동화해 어음을 발행,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인수 이해당사자들이 이 사실을 미리 고지해서도 안 된다. 일단 채권단은 "입찰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며 시장의 의혹을 짚고 넘어가는 차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채권단이 이날 밝힐 입장이 무엇이냐에 시장의 관심이 더 쏠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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