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는 정부의 'G20 결벽증'이 의외의 결과를 낳은 경우도 있다. 1900일 가까이 끌어온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 사태가 극적인 합의를 봤다. 7월부터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던 동희오토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들도 일터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부가 중재에 직접 개입한 건 아니지만 G20을 앞두고 평화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여겼던 싸움이 잇따라 일단락된 셈이다. '낭보'를 접한 민주노총도 논평에서 "G20을 앞두고 서울지역의 투쟁현안이 잇따라 합의되고 있는 점은 뭔가 뒤끝이 씁쓸하다'고 할 정도다.
▲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지난 2007년 12월 농성에 들어간 이후 이달 2일로 1048일을 맞았다. 기륭전자 사태 등이 타결되면서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장기농성장이다. ⓒ프레시안(김봉규) |
기륭전자 농성이 끝나면서 서울의 유일한 장기 농성장이 된 재능교육이다. 법적으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직인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1999년 노조를 만들어 2000년 특수고용직 최초로 사측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7년 사측은 학습자 교사들의 사실상 임금인 수수료가 깎이는 지급 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서비스연맹 재능교육지부 조합원들은 1000일이 넘도록 서울 종로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이들 역시 용역 직원들의 폭력과 농성장 침탈, 고소 및 고발과 손해배상 등 다른 장기농성장과 같은 고초를 겪었다. 사측이 본사 앞 공간의 집회 신고를 선점하고, 노조의 집회 일정에 맞춰 직원들이 질서 준수 캠페인을 벌이거나 거리 청소를 하는 광경까지 비슷하다. 다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이들이어서 문제를 풀어나갈 방도가 더욱 마뜩치 않다는 게 다를 뿐이다.
기륭전자와 동의오토가 결국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지만 재능교육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지난달 사측은 재능교육노조 오수영 사무국장의 집을 찾아 100만 원 상당의 집기에 가압류 '딱지'를 붙였다. 지난 2008년 사측의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후 위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강제 추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습지노조의 방송차와 강종숙 학급지노조 위원장의 차량까지 압류했다. 수백만 원 수준의 손해배상을 강제 추징해서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는 시도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반면에 노사는 지난해 여름 이후 이렇다 할 협상을 가진 적이 없다.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은 "사측은 해고 조합원의 복귀는 선별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단체협약을 맺지 않겠다고 한다"며 "이는 사실상 협상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5일 재능교육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제 서울의 장기투쟁 사업장은 재능교육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며 "재능교육 공동투쟁본부는 (기륭전자의 예처럼) G20 개최 전, 늦게는 올해 말까지 사태를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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