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대구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서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세계금융 질서 개편과 한국경제' 심포지움 참석자들은 이와 같은 공감대를 표하며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금융거래 규제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토빈세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교수가 제기한 금융거래세(Financial Transaction Tax)로, 외환에 일정한 세금을 매겨 투기자본의 활동을 억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프랑스의 시민단체 아탁(ATTAC), 영국의 시민단체 네트워크인 로빈후드세 캠페인 포럼 등이 이 세금 도입을 각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영호 유한대 총장(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그 동안 시민사회단체에서 주장하던 토빈세 도입 논의에 미국 오바마 정부와 프랑스 등에서도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며 "토빈세를 도입해 '고삐 없는 말(국제 투기자본)'에 고삐를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韓, 토빈세 G20 의제로 이끌어내야
▲김영호 유한대 총장 ⓒ프레시안 자료사진 |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라디오연설과 이날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G20에서 논의될 4대 과제로 △시장환율제 강화 △금융안전망 강화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개발지원 등을 꼽았다.
김 총장은 우선 IMF 개혁의제를 예로 들며 "개발도상국의 지분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IMF 회원국 전부에 토빈세를 도입하도록 하는 게 좋은 방안"이라며 "이렇게 걷어들이는 세금을 개도국의 개발을 지원하는데 활용한다면 저개발국 지원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지난 2008년 통계를 근거로 "각국이 자국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외환거래에 토빈세(금융거래세)율 0.5%만 매겨도 6500억 달러의 세수를 확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영철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도 "토빈세가 도입될 경우 확보 가능한 막대한 재원에 세계가 관심을 가지면서 도입 논의가 시민단체에서 정부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며 "토빈세는 국제적 차원의 경제정의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어 세계자본주의 운영방식에 중대한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했다.
왜 토빈세인가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은 토빈세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저개발국 지원뿐만 아니라, 국제 투기자본의 횡포를 견제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장 위원장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의 원인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금융세계화에 따른 금융·투기자본의 탐욕과 약탈"이라며 "이들 투기자본을 규제하지 않고서는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 위원장이 지적한 투기자본의 횡포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의 권고대로 금융시장을 개방하면서, 투기자본에 경제주도권을 상당부분 내줬다.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칼라일 펀드, 론스타 펀드, 골드만삭스, 매틀린페터슨, UBS캐피탈 등이 국내 제조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긴 후 청산해, 국내 산업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토빈세와 같은 규제가 없어 이들 자본 대부분은 단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이들 자본의 활동에 적정 규모의 세금만 매겨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장 위원장의 주장이다.
일각에서 토빈세 도입은 "세계 모든 국가가 동시에 실시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미 성공사례는 여러 번 나왔다는 반론도 나왔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브라질 룰라 정부다.
최정식 UNI 한국협의회 사무총장은 "브라질은 1993년부터 모든 은행구좌의 거래활동에 세금을 매기는 은행거래세를 도입해 헤알화 가치 인상을 막고, 탈세 부작용을 줄이는데 성공했다"며 "브라질 정부는 지난달 18일자로 은행거래세율을 종전 4%에서 6%로 더 끌어올렸다"고 강조했다.
브라질 정부는 은행거래세로 걷어들인 세금을 빈곤층 지원에 투입해 1995년부터 2008년 사이 연평균 0.9%씩 빈곤층을 줄여나가고 있다고 최 사무총장은 덧붙였다.
벨기에 정부도 토빈세를 보다 세분화해 환율이 급변할 경우 외국계 자금에 막대한 세금을 매기는 이중외환거래세를 2004년부터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일상적인 외환거래에는 0.005%의 낮은 세금을 부과하지만, 환율이 지정변동폭인 상하 5%를 넘어설 경우에는 세율을 50%로 크게 끌어올린다.
그러나 참석자들 주장과 달리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서 토빈세 논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뿐만 아니라 IMF, 미국 등이 미온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토빈세 도입 논의는 내년 파리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로 프랑스가 선점한 상태다. 사르코지 정부는 금융거래세를 세계 주요국이 도입하고, IMF를 큰 폭으로 개혁하자는 내용의 의제를 주요 안건으로 상정했다.
김 총장은 "변동환율제가 금융의 국제화를 불러와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를 일으켰는데, 이에 대한 규제를 늦춘다면 진정한 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며 "1999년 대구라운드에서부터 한국 시민단체가 강조한 토빈세 도입을 한국 정부가 고려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로빈후드세는 뭐지? 금융거래세는 도입을 주장하는 나라, 단체별로 각자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가장 널리 통용되는 별칭이 토빈세며, 영국에서는 로빈후드세로 불린다. 실제 과세되고 있는 이 세금이 영국인들에겐 홍길동처럼 친숙한 의적의 이름을 얻은 까닭은 다음과 같다. 작년 12월 9일 영국 정부가 금융회사에서 임직원 1인당 2만5000파운드 이상의 보너스를 지급할 경우, 초과액의 50%를 세금으로 걷어들이는 예산안을 발표하자 금융권이 "로빈후드세"라며 반발했다. 이날 심포지움에 참석한 사이먼 쇼퍼 로빈후드세 캠페인 포럼 대표는 "간단히 말해 '은행도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취지의 세금"이라며 "은행에 보다 적극적인 과세를 실시해 그 수익으로 실업자와 세계의 굶주린 아이들, 최빈국을 돕는데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과 8개월 전 만들어진 이 연합단체는 짧은 기간 안에 영국에서만 110개의 시민, 노동단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합으로 성장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 제프리 삭스 등 세계적 경제학자 350여명이 이 캠페인에 참여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사이먼 대표는 "자본시장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합계의 60배에 달할 정도로 커졌는데도, 제대로 된 과세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는 이 시장을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사이먼 대표는 로빈후드세가 제대로 도입될 경우 당장 금융위기로 고통받은 국민들을 돕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영국이 금융기관에 쏟아부은 구제금융 규모는 영국국민 1인당 5만 달러를 부담한 수준"이라며 "왜 금융기관은 이익은 자신들이 가지고 어려울 때는 국민세금을 달라고 하나"고 지적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익을 사유화하는 금융기관을 지원할 게 아니라, 평소 금융기관에도 적합한 세금을 매겨 국민을 돕자는 얘기다. 사이먼 대표는 "최근 IMF도 금융거래세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전 세계의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로빈후드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