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010 번호로의 통합을 추진해왔다. 이동통신사들이 각자 011·016·017·018·019 등 다양한 국번를 사용하고 있었고, SK텔레콤의 011을 선두로 각 번호가 이통사의 브랜드처럼 비춰지던 시절이었다. SK텔레콤의 시장 지배력이 강한만큼 011로 사용자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에 2004년 당시 정보통신부는 새롭게 출현한 이동통신 기술인 3G 서비스에 가입하는 이용자들은 강제적으로 010으로 국번을 변경하도록 하고, 010비율이 80%가 넘어가면 전 국민의 휴대전화 국번을 010으로 통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0년 2월 3G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80%가 됐고, 숫자로도 40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막상 정부가 정했던 기준을 충족하자 다른 문제들이 고개를 들었다. 정부의 통합정책이 발표된 지 6년이 지나면서 강제 통합안에 반발하는 소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간 같은 번호를 사용하면서 일종의 개인 자산으로 여기고 있는 번호를 정부가 강제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010 국번 변경에 반발해 3G로의 이동을 거부하고 있던 이들에게 '스마트폰 붐' 역시 그림의 떡이다. 스마트폰 역시 3G용으로만 출시되었기 때문에 번호를 바꾸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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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 방통위
정부가 주장하는 이용자 편의성과 경쟁 활성화의 취지 역시 전 국민 대부분이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상황에서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010으로 80%가 넘는 사용자가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SK텔레콤은 휴대시장의 50%을 점유하고 있고, 010으로 번호를 변경한 사용자들에게 딱히 돌아간 혜택도 없다.
오히려 정부가 고수하는 정책이 이통사의 갈등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일치감치 3G 설비를 확충하던 KT는 내년도 중순경 2G서비스를 중단할 계획이다. 2G사용자들이 KT의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기 위해 3G로 가입을 하는 것보단 타 통신사의 2G로 갈아탈 가능성이 높다. 현재 KT의 2G 사용자들이 약 94만 명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만만찮은 타격이다.
KT로서는 3G로의 완전한 전환에 앞서 번호 강제통합이 이뤄지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방통위가 여론을 의식해 이를 추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01X 사용자들이 3G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차선책이 절실하다. 지난 20일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각 이통사의 2G 서비스 중단 시점에서부터 3년 동안 01X 번호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에 안도하는 이유다.
하지만 방통위의 이러한 합의가 비난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년 동안 추진해오던 통합안을 사실상 유예하게 되면 이미 010으로의 변경에 합의한 소비자들의 역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정책 추진의 일관성에 대한 비난도 의식해야 한다. 결국 애초에 다가올 결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통합안을 꺼내든 방통위의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 문제란 얘기다.
한국YMCA전국연맹과 010통합반대운동본부가 23일 번호정책을 2G 서비스 중단시점과 연계하는 정책방안의 폐기를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들은 "01X 이용자들에게 3G 서비스를 허용하면서 강제통합번호를 해소함으로써 자연스럽게 2G 주파수 대역이 회수될 수 있도록 번호정책을 세워야 한다"며 "시장변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역행하면서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를 내세워 정책논리를 뒷받침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한 010 번호를 사용하는 이용자들 중 절반으로 추정되는 번호전환 가입자에 대해 전환 직전 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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