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이전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입사해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옛 파견법에 의해 정규직으로 봐야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2일 내려졌다. 제조업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를 원청회사가 직접 노무지휘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비정규직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획기적인 판결로 주목받고 있다. 회사 사업장에서 일하지만 회사가 고용하지 않은 노동자, 이른바 '간접고용' 문제가 파견 업종 확대를 추진하려는 분위기에 대항해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게 된 계기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비정규직 네트워크)와 금속노조 등은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간접고용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운동방향 토론회'에서 구로·평택·구미·인천 등 주요 공단과 파주 출판물류단지, 현대·기아자동차 등 주요 자동차 공장, 인천공항 사업장 등에 간접고용된 노동자 561명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통계 표본으로는 부족한 숫자지만 간접고용 노동자의 열악한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평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48.7시간으로 60% 이상이 주 45시간 이상 일하고 있었으며 60시간 이상 일한다고 응답한 이들도 15%나 됐다. 월 평균임금을 보면 70% 이상이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의 임금 구간에 분포해 있는데, 150만 원 이하를 받는다고 응답한 이들도 절반을 넘었다. 4대 보험을 적용받는 비율은 4명 중 3명꼴로 높았지만, 상여금과 자녀학자금·육아휴직 등을 제공받은 이들은 30%에 그쳤다.
상시고용 형태로 일하는 비율은 24.6%에 불과한 반면, 임시·계약직이 66.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상시고용이 아닌 이들 중 계약기간이 1년 이하인 비율이 10명 중 9명꼴이었고, 4명 중 1명은 6개월 이하의 단기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이들 중 68.8%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자동 연장되거나 재계약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귀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은 "계약기간을 볼 때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계약해지라는 해고의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며 "높은 재계약 비율은 고용불안이 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기업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응답자 4명 중 1명 "원청회사가 업무지시했다"
기업이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와 채용이 자유롭고, 임금을 억누르는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 사업장에서 일을 계속 하고 있지만 원청기업과 파견·용역·도급업체 간의 계약이 바뀌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속 업체만 바뀌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번 조사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이 1번 이상의 소속업체 변경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지난달 대법원 판결의 쟁점이었던 원청기업의 사용자성에 대한 설문 결과는 어땠을까? 응답자의 16%가 원청기업에서 채용 절차를 진행했다고 답했고, 업무지시 역시 원청업체 직원이 내린다는 이들도 25%를 기록했다. 원청업체와 소속 하청업체가 함께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25%여서 사실상 원청이 업무지시에 관여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은 셈이다. 또한 이들 중 57.2%가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사업장별로 보면 공단 지역의 파견 형태가 40%를 넘은 반면, 자동차 대공장 등에서는 용역·도급 형태가 80%를 넘는 특징을 보였다. 또한 공단의 영세중소기업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업장 사이에 이직이 많은 반면, 대공장에서는 소속업체가 바꾸거나 업무를 전환 배치하는 형태로 간접고용을 활용하는 비율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비정규직 네트워크는 보고서에서 "조사대상자 대부분이 제조업 부분 노동자임을 감안하면 공단 지역의 간접고용 중에서 불법파견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대공장의 경우에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60%가 원청의 직접고용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하고 있고 함께 일을 하는 경우도 40%가 넘는 점으로 미루어 위장도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원재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부장은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인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함에도 파기 환송심 이후 대응하겠다는 태도는 불법을 계속 저지르겠다는 것"며 "판결에 따른 집단소송과 정규직화 싸움을 계기로 노조 산하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물론 삼성·LG 등 재벌 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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