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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운하, 유우익과 박형준이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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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반도 대운하, 유우익과 박형준이 막아라"

[기고] 학문적 소신과 배치되는 대운하 공약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승리는 예상된 결과였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낙심보다는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5년의 국정을 어떻게 견제하느냐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유권자의 선택으로 10년 만에 다시 얻은 기회인 만큼, 유권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잘 하길 바랄 뿐이다.

앞으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여러 충고와 지적이 따를 것이다. 한 가지 확신하건대,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철회하는 것만으로도 환경 관련 평가에서 노무현 정부보다 더 좋은 점수을 받을 것이다. (연안권 특별법을 통과시킨 노무현 대통령을 시민단체는 '환경 색맹'으로 규정했다.) 그만큼 대운하의 생태 파괴 가능성은 크다.

이 글은 이명박 캠프의 싱크탱크 활동을 했던 서울대 지리학과 유우익 교수와 왕년의 진보 진영 이론가였던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에게 보내는 일종의 공개서신이다. 그간 두 분의 논문과 저서를 탐독했던 일개 20대의 사회과학도로서 이 편지가 건방지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부담감이 있다.

더구나 이러한 서신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노무현 정부에 합류했었던 지식인이 정치인이 되면서 180도 바뀌는 것을 보면 지난 말을 가지고서 반박하는 '유치한' 논쟁은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운하 착공식만큼은 막아야겠다는 것만으로도 편지 쓸 이유는 충분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침 좀 맞는 게 대수랴.

유우익 교수의 환경 윤리는 어디로 갔는가?

유우익 교수는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 공약을 주도했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선 승리 이후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참가는 고사하면서 학교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기획한 공약을 내세운 대선 후보가 승리하고서 자신은 학교로 돌아간 점은 지식인으로서 깔끔한 행보다.

하지만 대운하 기획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에서 유 교수가 인수위가 운영되는 기간 동안, 조금 늦었지만 대운하 공약을 철회하는 권고를 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필자가 읽었던 유 교수의 논문을 보면 대운하 공약은 그의 학문관과 대척점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지역 개발에 있어 환경 윤리의 문제'(<지리학>제 27권 제1호)라는 제목의 논문을 1992년에 썼다. 상당히 오래됐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가 철학적 고찰이었던 만큼 사람의 철학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또 이후에 별다른 입장 선회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같은 입장으로 파악하더라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유 교수는 지역 개발에서 가져야 할 환경 윤리를 검토하면서 '생태 지향적' 입장을 주장했다. '생태 지향적 지역 개발'이란 "개인-집단, 집단-집단 간의 사회적 관계보다 인간-자연이라는 더 근본적인 관계에 기초"(31쪽)한 것을 의미한다. 논문만 본다면, 유 교수는 국내 생태 담론 지형에서 상당히 급진적 위치에 자리한 학자다.

유 교수는 또 "국토의 미래상이나 목표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는 논리가 벗어나서는 안 될 윤리적인 전제의 몇 가지 측면"(37쪽)을 들고 있다. 대운하를 떠올리면서 다음 대목을 읽어보자.

"인간이 만들지 않았으며 인간의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에 대한 현저한 파괴를 수반하는 개발은 정당화 될 수 없다." (37쪽)

대운하 총 550km를 뚫기 위해서 파괴되는 국토가 어디인지 세세하게 밝히는 것은 이미 충분한 연구 결과가 있다.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운하를 놓기 위해서 문경새재에 25km의 터널을 뚫어야 하는데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경제 수치만을 믿고서 자연 파괴를 정당화 하는 것은 평소 유 교수의 생태 지향적 환경 윤리와 대조된다.

그렇다면 문경새재를 포함해 대운하 건설로 수장되거나 파괴되는 '장소'는 유 교수가 주장하던 '장소'와 다른 곳일까. 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구가 불가능한 문화 경관이 개발 사업에 의해 훼손, 파괴되는 것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것은 보존 가치가 있는 개별 문화재뿐만 아니라 장소와 지역 전체가 갖는 가시적 경관 및 그 이미지의 개성까지 포함하여 포괄적인 의미에서 적용되는 말이다." (38쪽)

이명박 당선자가 직접 답사를 갔을 정도로 경부 운하의 모범 사례로 삼고 있는 독일 마인-도나우 운하의 환경오염 상황에 대해서는 독일 유학을 다녀온 유 교수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독일처럼 추악한 초대형 시멘트 건조물로 남을 가능성이 큰 대운하를 후손에게 남겨주는 것이 유 교수가 생각하는 생태 지향적 지역 개발인가?

그는 이어서 환경파괴를 담보로 한 개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빚이 후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 개발은 무엇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37쪽)

현재 대운하 찬성 측의 주장은 생태 측면은 침묵하고 경제 효과만을 뻥튀기 하는 수준이다. 이는 지극히 자기중심, 인간 중심적인 환경 윤리다. 유 교수는 이러한 윤리를 "개발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회사의 지배 윤리"(32쪽)라며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 교수는 일부에서 "정치적 공방 과정에서 마치 멀쩡한 땅을 파서 콘크리트를 바르고 물을 채우는 것으로 잘못 이해됐다"면서 대운하를 여전히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대운하 계획이 경제 성과에만 집착하는 것을 볼 때 이는 도리어 유 교수가 비판했었던 자기중심적, 인간 중심적 환경 윤리로 돌아가는 것 혹은 투항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대운하의 경우에는 이념 지형을 떠나서 비용 수익 분석이라는 계량적 분석 기법에 있어서도 설득력을 잃었다. 이렇게 거센 반대와 문제점이 지적되는 공약을 어떡하든 간에 실행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상대성과 우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확실한 것은 다만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과 그 삶을 영위하기에 족한 만큼의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다 불확실한 것뿐이다. 불확실한 것을 우리가 모두 결정지으려 한다면, 그것은 만용을 넘어 죄악이다." (37쪽)

전 한반도를 관통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자신의 임기 내에 끝낼 것을 생각하는 이명박 당선자를 보면서, 그가 마치 대운하 사업을 서울시장 시절의 청계천 복원 사업처럼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들었다. 유 교수가 이명박 싱크탱크로 합류한 연유가 궁금했던 내게 한 지인은 "이명박 당선자가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기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정도의 논란이 있는 문제라면 다시 학교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의 책무가 끝났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비록 자신이 설계한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만용을 넘어서 죄악을 막기 위해서 당선자에게 철회하라는 고언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유 교수가 썼던 저서 중의 일부분을 발췌하는 것으로 유 교수에 대한 편지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정권적 차원에서 졸속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으며, 지역이기주의와 무책임한 여론에 무력하게 끌려 다니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새삼스럽게 국토 구조 개편을 위한 정책 과제를 생각한다면, 이를 냉철히 반성하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유우익, <국토와 산업의 미래상>, 1997, 13쪽)

이명박 당선자의 입이 됐던 박형준 의원, '귀'도 되길

대통령 인수위에 참가한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그간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이명박 당선자의 입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지면에서는 한때 지식인이었을 때 박 의원이 했던 대운하와 관련이 될 법한 얘기는 빼놓고 정치인 박형준으로서의 발언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박 의원은 지난 2004년 <인물과 사상> 1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 입법안을 두고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를 지적하면서 개혁 정책의 성공 조건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첫째, 개혁안이 정교해야 한다. 둘째, 폭넓은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한다. 셋째, 야당과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는 것을 포함해 성공적인 정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넷째, 개혁을 실행할 때 범위를 좁게 설정하여 빠른 시간 안에 대중들에게 성공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59~60쪽)

박 의원이 기고한 이후에 참여정부가 밀어붙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안건의 정교함도 떨어지고, 국민적 합의는커녕, 시민단체와의 제대로 된 FTA 토론도 피한 것을 보면 참여정부는 박 의원의 고언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차기 정권에서도 이러한 과오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운하에 있어서 필자가 아무리 객관성을 담보해서 평가한다 하더라도 박 의원이 제시한 조건 중에서 네 번째 조건인 '빠른 시간 안에 대중들에게 성공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는 성급함 말고는 충족시키는 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은 가능하면 모든 이들을 아우르고 중립적인 표상을 지녀야 한다. 편향적 인식이 국가 경영에 가장 큰 독이라면, 균형 감각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59쪽)

이러한 박 의원의 말은 이제는 향후 5년 동안 온전히 자신을 비롯하여 이명박 당선자에게 향한 말들이 되었다. 박 의원이 이명박 당선자의 '입'으로서 인정받았다면 이제는 당선자의 '귀'가 되어서 국정을 현명하게 운영하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긴 편지를 쓰지 않더라도 무슨 의미인지는 박 의원이 잘 알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맑은 '눈'과 '귀'가 되어주길 부탁드리며

'안티 조선' 운동이 촉발되면서 강준만 교수가 주도적으로 시행한 실명 비판, 쉽게 말해서 당신은 이런 말을 했었는데 왜 지금은 다르냐는 비교를 통한 비판 방식에 회의가 있었다. 당사자가 침묵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대운하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5년뿐만 아니라 수십, 수백 년 후까지도 생태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감이 그만큼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대운하 공약이 인수위 기간 동안에 보류 내지 철회의 기미가 없다면 추후에는 정치인 시절의 글뿐만 아니라 여전히 진보적 학자들에게 인용되고 있는 학자 시절의 논문까지도 들추면서 비판을 해야 하는 민망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일이 발생되기 전에 유우익 교수와 박형준 의원이 앞으로 5년 동안 이명박 당선자의 맑은 '눈'과 밝은 '귀'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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