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10일 오전 기름 유출 피해 지역을 방문해 "태안을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태안을 비롯한 충남 6개 시·군 지역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었다. 현재 대규모 방재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유출 기름의 양이 많아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가로림만을 사수하라
10일 해양수산부의 발표를 보면, 기름은 계속 확산돼 국내 최대 어장인 가로림만 입구까지 진입했다. 가로림만 일대는 어장·양식장이 밀집한 곳으로 이곳이 오염된다면 생태·경제적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가로림만 입구 4.2㎞에 차단막(오일펜스)이 설치돼 있으나 조류 탓에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10일에는 가로림만으로 기름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방제 작업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헬기를 동원해 가로림만 바깥쪽에서 유처리제를 살포하고, 차단막을 뚫고 가로림만으로 들어온 기름은 약 70척의 방제선을 투입해 제거하고 있다. 10일 방제 작업에는 선박 150척, 헬기 5대, 인력 8000명이 투입됐다.
한편 9일 오후 9시 방제 작업이 끝날 무렵, 기름은 이 지역의 유명 해수욕장인 천리포·만리포를 비롯한 해안 40㎞ 남짓을 뒤덮었다. 해양경찰청은 이날 오전 7시 30분쯤 '허베이 스프리트' 호 원유 탱크의 파손 부위를 48시간 만에 응급 폐쇄했다. 그러나 이미 약 1만t의 원유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회수된 양은 전체 유출 양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강무현 해수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중앙사고수습본부는 9일 "유출 기름의 80% 가까이 해안 쪽으로 올라와 오염 지역이 더 넓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2~3일이 고비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출량이 많아 바닷물, 해안가 기름을 걷어내는 등의 응급 복구에만 2개월이 걸릴 예정이다.
대규모 환경 재앙…생태계 피해 불가피
국립공원 일대에서 일어난 이번 사고로 서해안 일대의 생태계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미 9일 국내에서 가장 큰 모래언덕으로 유명한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변이 검은 기름에 덮이고 인근의 생물이 기름에 폐사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생태계는 10년이 지나도 원상태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다에 가라앉는 원유가 문제다. 유출된 원유의 상당량은 해저에 가라앉아 오랫동안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주며 원거리 이동한다. 1995년 '시프린스' 호 사고 때 여수에서 유출된 기름은 부산까지 이동했다. 이렇게 가라앉은 기름은 독성 물질을 내뿜으며 플랑크톤, 조류 등에 축적될 수 있다.
바다 위의 기름막을 제거하고자 쓰이는 유처리제의 '2차 피해'도 문제다. 유처리제의 작용 탓에 잘게 부서진 기름 입자는 바닷물에 녹아 해양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유처리제를 바깥 바다에서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대량 사용으로 인한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는 인근 해안에서 생태계 피해 상황을 지켜보면서 뿔논병아리, 논병아리 등의 야생 동물 구조에 나섰으나 역부족인 상태다. 녹색연합은 9일 "환경부, 문화재청 등은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 현황 파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생태계 피해에 대한 안이한 대처를 질타했다.
안이한 정부 초기 대응이 어민 피해 불러
이번 사고로 인한 경제 피해도 엄청나다. 9일 오후 9시 현재 굴·바지락·전복 등을 키우는 태안군 내 전체 양식어장 445곳 5647㏊ 가운데 약 170곳 2108㏊이 오염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앞으로 1~2일 안에 피해 규모는 더욱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충남 최대의 양식어장 밀집 지역인 가로림만이 오염될 경우 그 피해는 엄청나게 증가할 수 있다.
정부는 8일 충남 태안·서안·보령·서천·홍성·당진 등 6개 시·군 지역에 '재난 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10일 태안을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정부는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곳에 복구를 위한 국고 지원, 피해 보상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9일 "어민 피해에 응분의 보상이 이뤄지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한편, 정부의 초기 대응을 놓고도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7시 30분쯤 '허베이 스피리트' 호 오일탱크에 구멍이 뚫려 원유가 유출되자 해양수산부는 '최악의 경우' 48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만리포·천리포 해안에 상륙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정작 이날 저녁부터 기름은 해안을 덮치기 시작했다.
녹색연합은 "사고 당일 지역 주민은 밤새 갯벌의 기름띠를 확인하고 흡착포 등 방제 장비를 요청했으나 지급되지 않았고, 8일 아침 7시까지 어떤 마을도 해안 방제 작업을 진행하지 못한 채 피해를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고 지적했다. 해양수산부의 섣부른 자신감이 초기 대응 실패를 자초했다는 것.
예인선단 강선이 끊기면서 사고
이번 원유 유출 사고 원인을 놓고도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조사 결과를 보면, 7일 오전 7시 30분쯤 '허베이 스피리트' 호 오일탱크에 인근을 지나던 예인선단의 해상 크레인을 실은 부선이 충돌하면서 기름이 유출됐다. 특히 예인선과 부선을 잇던 강선이 끊어진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해양경찰청은 현재까지는 해상 크레인을 싣던 부선을 예인하던 배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서 한쪽 강선에 무게가 집중되면서 강선이 끊어진 데 사고 원인의 비중을 두고 있다. 대산해양수산청은 "사고 2시간 전부터 예인선단에게 유조선 정박 여부를 알리고자 교신을 시도했으나 1시간 전에야 휴대전화로 교신이 됐다"며 사전 경고가 있었다고 해명했으나 예인선단의 삼성중공업 측은 사전 경고를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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