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을 접하면서 대다수 한국인은 반사적으로 13년 전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40분쯤 서울시의 강남구 압구정동과 성동구 성수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하면서 출근, 등굣길의 시민 32명이 죽고, 17명이 부상한 바로 그 사건 말이다. 그러나 13년을 사이에 둔 이 두 사건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제2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
두 사건은 놀랄 만큼 흡사하다. 우선 매일 수많은 차량이 강을 가로지르는 비교적 낡은 다리를 오갔다. 1967년에 준공한 미니애폴리스의 다리는 40년이나 됐다. 성수대교는 1979년 준공한 15년 된 다리였다. 25년 차이 탓이었는지 성수대교가 중간쯤의 48미터(m)가 붕괴한 반면, 미니애폴리스의 다리는 완전히 붕괴했다.
두 사건 모두 출근길(한국), 퇴근길(미국)에 다리가 붕괴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등굣길(한국), 하굣길(미국)의 학생들이 피해를 당한 것도 똑같다. 특히 한국은 버스가 추락하면서 여중·고생 9명이 목숨을 잃어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학생 60명이 타고 있던 버스가 추락했지만, 모두 다 무사히 대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두 사건은 다르다. 똑같이 낡은 다리가 문제라지만 40년 된 미니애폴리스 다리 붕괴를 15년 된 성수대교의 붕괴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성수대교 붕괴 사건의 원인은 말 그대로 '부실한' 공사 탓이었다. 애초 상판을 지탱하는 구조물의 용접조차 불안전했으니 사고는 이미 준공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서울시가 안전 점검을 소홀하면서 사전에 사고를 막을 기회마저 놓쳤다. 부식된 구조물을 보수하기는커녕 녹슨 부분을 페인트로 칠하는 식으로 눈속임을 해온 상황이었으니 그나마 15년간 다리가 붕괴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사정은 성수대교뿐만 아니라 당산철교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족'의 나라, '건설족'의 나라
두 사건을 바라보는 양국 사회의 반응이 다른 것도 특별히 지적할 만하다. 다리가 붕괴하자마자 미국 언론을 비롯한 대다수 시민은 "혹시 테러?" 하고 질문을 쏟아냈다. 미국 정부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즉각 "다리 붕괴는 테러와 상관없다"고 발 빠르게 시민을 안심시켰다.
미니애폴리스 현지 언론 <스타트리뷴>도 2일자 사설에서 "TV 앵커와 라디오 리포터는 이번 사고와 9·11을 비교하지 않으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비록 당국이 재빨리 테러와 연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런 상상은 그렇게 빨리 없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이어서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재앙을 단순한 사고로 보지 않게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반응은 어땠을까? 성수대교가 붕괴하자마자 한국 언론을 비롯한 대다수 시민은 "예고된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았다. 사고 당일 한 방송사의 보도 제목을 열거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성수대교 붕괴 위험 경고했는데도 무방비", "시공한 동아건설, 부실 공사 아니냐는 여론 표적에 당혹", "성수대교, 과적 차량 방치해 와" 등등.
이런 상이한 반응은 한미 양국 사회의 특징을 반영한다. 한국 사회의 반응은 이른바 '건설족'이 지배해온 이 땅의 현실을 드러냈다. 그간 한국 사회의 부를 수십 년간 독점해온 재벌을 낀 건설업체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말이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그리고 불과 8개월 뒤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은) 그 단적인 예였다.
미국 사회의 반응은 이른바 '전쟁족'이 지배해온 그 땅의 현실을 드러낸다. 기업과 군부가 유착해 끊임없이 안팎의 긴장을 고조해온 미국 사회는 9·11을 기점으로 더욱더 전쟁족의 지배가 노골화되었다. 우연히 집 앞에 떨어진 밀가루를 보고서도 테러를 걱정하는 나라에서 다리가 붕괴하자마자 테러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똑같은 교량 붕괴에 '테러'를 떠올리는 '전쟁족'의 나라 미국과 재벌과 공무원의 '부패'를 떠올리는 '건설족'의 나라 한국.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각기 그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전쟁족'과 '건설족'의 이익을 위해 일반 민중의 안녕과 복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더 살 만해졌는가?
아직 미국의 다리 붕괴 사고의 원인이 명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안전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낡은 다리를 공사한 게 원인일 것이라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런 지적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사고를 전쟁족이 지배하는 나라, 미국의 '쇠퇴'를 예고하는 한 징후라고도 여길 수 있겠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부가 '9·11 사태' 이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 쏟아 부은 전비는 모두 6110억 달러(약 563조 원)에 달한다. 이 중에서 약 3분의 2는 2003년부터 시작한 이라크 전쟁에서 사용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당수 기업이 큰 수익을 올렸다.
반면에 이렇게 전쟁에는 펑펑 돈을 쓰면서도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미뤄지거나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시장으로 떠넘겨졌다. 그 과정에서 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 뉴올리안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쑥대밭이 됐고, 미니애폴리스 시민은 40년 된 낡은 다리를 매일 불안해하며 오가야 했다.
한국은 어떤가? 전국의 논밭이 아파트로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는 "농지를 활용해 골프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주말에도 숱하게 비어 있는 지방의 골프장을 염두에 두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생뚱맞은 정책이다. 여전히 한국은 좀 더 세련되어진 (그래서 더 힘이 센) 건설족의 나라다.
그렇다고 한국이 테러로부터 안전한 것도 아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스물세 명의 한국인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두 명이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스물한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은 어느 곳에서나 한국인이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 13년, 과연 한국 사회는 더 살 만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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