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내용을 들으면서 필자는 낯설음을 넘어서 놀라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메르켈은 행정 수반으로서 '선거를 공정히 치러야 한다'는 식의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발언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주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당(기독교민주당·CDU) 후보자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상대 정당 후보를 상당히 높은 수위로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게다가 그녀가 비판을 하고 있는 대상은 자신의 정당과 함께 대연정을 꾸리고 있는 사회민주당(SPD)의 후보였다.
'현직 총리가 선거전에서 저렇게 발언해도 되나?'
이번 선거까지 브레멘 주는 SPD, CDU가 12년간 연립정부를 꾸리며 주정부를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SPD의 후보였던 뵈른젠은 선거전에서 CDU와의 연정 지속을 언급하지도 약속하지도 않았다. 이는 판세 분석상 과반수 의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제1당의 지위를 고수할 것이 분명한 SPD로서 새로운 판을 짜는 데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였다.
SPD측의 이런 모습을 메르켈은 강도 높게 비판하며, "한 정당의 선거 후보가 집권 후 자신이 어디로 나아갈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희한한 일"이라며 브레멘에서 SPD가 CDU와 연정을 지속할 것을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그녀는 이어서 "나는 그것을 말할 용기가 없는 뵈른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유권자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후보를 상대로 정치적 공격을 퍼부었다.
한 마디로 뵈르젠과 SPD를 찍지 말라는 선거 운동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사용한 어휘는 아주 감정적인 것이었다. 필자가 '자격이 없다'고 점잖게 번역을 해서 그렇지, 사실 그는 '구역질난다' 혹은 '역겹다'라는 뜻의 단어 '위벨(übel)'을 사용했다. 뉘앙스상으로 자신은 뵈른젠을 '역겹다'고 느끼고 있으며, 유권자에게 이에 공감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정치' 발언, 용인할 수는 없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곧장 '어, 총리가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라면, 최고 권력자는 선거에서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며, 당파적인 행동을 취해선 안 되는 것이 상식(?)일 텐데, 하면서 말이다. 허나 메르켈이 이러한 발언을 한 후, 독일의 정가와 언론에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그녀의 발언의 '적법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 SPD도 메르켈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나서지 않았고, 국가 지도자로서의 품위 운운하는 평을 하지도 않았다. 오직 주요 언론사들은 그녀의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발언을 '따옴표'를 치며 조용히 보도할 뿐이었다.
후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법치(rule of law)'는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금권, 관권 선거가 판을 치며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유린했던 경험이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199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정화를 이루었으나 여전히 그러한 기본 가치가 손상되는 광경이 자주 발생함을 목도한다. 법치의 완성을 위하여 분명 원칙을 지켜내는 공권력이 필요하며, 행정부는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판을 바라보면서 언제부터인가 드는 생각은 민주적 정치문화가 아직 덜 발전한 상황에서 모든 정치적 의사소통이 '법의 잣대'에 억눌리는 상황이 지나치지 않나 하는 점이다. 선거는 이념과 이해가 치열히 각축을 벌이는 장이다. 그런 갈등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 각각, 즉 유권자의 권리를 기초로 민주주의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 선거는 나라의 미래를 이끌 정치 지도자를 새로 선출하는 '축하의 향연'으로서 의미도 지니고 있다. 뜻이 있는 국민이 이 장에 가급적 많이 참석하고 상호 자유롭게 비판하며 합리적인 주장을 펴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선거'의 조건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정치적 행위들이 적법성 시비에 오르는 상황은 그만큼 우리가 공정함을 기반으로 한 관용과 타협의 정치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상황을 방증한다. 선거가 탈법과 적법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하는 만큼, 그 축제로서의 의미는 상실된다.
금권과 관권에 의해 탈법이 감행되는 후진국의 정치문화에 비해서는, 법의 잣대로 그것을 비판하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법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서도, 아주 당연시되게 그것이 준수되면서도 날카로운 정치적 공방이 풍부하게 오가는 선거에 비하면 그것은 아직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낮은 모습일 것이다.
'독재 컴플렉스'와 '법리 과잉지배' 모두 극복해야
지난 주말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 모임에서 장시간 발언을 하며 야당과 야당 지도자에 대해 수위 높은 비판을 했다. 야당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나섰다. 그리고 보수언론은 대부분 노 대통령의 행동을 굉장히 낯설고 어색한 것이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노 대통령 발언의 정치적인 내용이나 그 수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그는 행정 수반이자 국가 원수로서 대내적으로 중립,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과 함께, 정치가로서 자신의 정책이 계속 지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중의 역할을 지니는 것이 제도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그것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공무원의 정치적 무권리와 노동기본권의 박탈을 오랫동안 상식으로 생각해 온 관습적 인식이 여전히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구나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의 적합성 이전에 상황의 적법성 시비부터 불거지는 상황은 씁쓸하다. 한나라당이 여당이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콤플렉스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과거 최고 권력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함부로 야당 지도자를 옥에 가두거나 암살까지 기도하던 식의 시대가 간 자리, 이제 법 위의 권력자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내리는 것에 성공하였다지만, 그렇다고 법이 정치에 재갈을 물리는 꼴이어서야 민주주의가 꽃 피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치가의 발언과 태도를 법으로 심판하기 이전에 유권자의 선택과 선거의 논리가 그것을 심판하도록 하면서 정치질서가 매끄럽게 재생산되는 민주주의를 꿈꿔본다. '독재의 콤플렉스'도 '법리의 과잉지배'도 극복한, 의식있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논의의 장에 권력자도 정치가도 녹아 들어가는 그런 사회 말이다. 물론 정치가들이 수준 높은 윤리의식을 갖추고 활발한 비판을 개진하되 정도를 지키는 것은 그런 사회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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