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무역구제 분야의 우리 측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한 항의로 자동차 작업반과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을 중단시켰다는 김종훈 수석대표의 6일 발표와 달리 7일에도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단이 지적재산권 분과에 참여해 미국 측과 협상을 계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 겸 상품무역 분과장에 따르면, 한미 FTA 5차 협상 나흘째인 7일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단은 비행기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으나,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단은 빅스카이 리조트 협상장에 남아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쟁점들에 대해 미국 측 협상단과 협의를 진행했다.
지적재산권 분과가 여러 분야에 걸친 다양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적재산권 분과와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이 공동회의를 갖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로 비쳐진다.
그러나 이는 전날인 6일 우리 측 대표단이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아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과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을 중단시켰다"고 강조했던 것과 앞뒤가 안 맞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에 대한 국내 여론의 관심이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에 대한 양국 간 협의에 쏠려, 상대적으로 의약품-지재권 연계협상에서 다뤄지는 의약품 특허 관련 쟁점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의약품-지재권 연계협상에서는 무슨 내용이 다뤄지나?
현재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과 지적재산권의 연계협상이 필요한 핵심 사안은 △특허 심사나 허가의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특허기간을 연장하는 문제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추가 특허 부여에 의한 특허기간 연장) △특허청의 특허 심사 업무와 식약청의 의약품 허가 업무의 연계 등이다.
특허 심사 및 의약품 허가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특허기간을 연장해주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서는 금지돼 있다. 하지만 미국은 호주와의 FTA에서 특허의약품의 특허 신청이나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지연이 발생할 경우 이를 특허기간의 연장으로 보장해준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 조항이 도입될 경우 다국적 제약회사의 오리지널 의약품은 2~4년 간 특허가 연장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에버그리닝도 의약품-지재권 연계협상에서 뜨거운 쟁점이다. 하나의 의약품에 의약품의 화학적 조성물에 관련된 특허, 생산과정과 관련된 특허, 의약적 용법과 관련된 특허, 제형이나 조합과 관련된 특허 등 다양한 특허 조항이 걸려 있을 수 있다. 미국 측은 이런 점을 이용해 호주와의 FTA에서 '새로운 사용'이라는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다국적 제약사가 추가로 새로운 특허를 부가해 의약품의 특허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식약청의 의약품 허가 업무에 특허청의 특허 심사 업무를 연계하는 것도 논의 대상이다. 식약청과 특허청의 업무가 연계될 경우 제네릭(복제약) 회사의 제네릭 출시가 늦춰지고 그만큼 오리지널 약의 특허기간이 길어지는 효과를 낳는다. 우리 정부는 국내에서 식약청-특허청 업무 연계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이같은 조치들이 도입돼 특허기간이 5년 연장되는 효과가 날 경우, 다국적 제약사의 매출상위 10개 품목만 계산해도 약 5000억 원의 국내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의약품-지재권 연계협상에서는 이밖에도 비위반 제소(non-violation complaint, 한 협상국이 시행한 정책이나 조치가 통상협정 조항을 위반하지 않아도 상대국 기업의 이익에 침해가 됐다고 판단될 때 해당 기업이 정부를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의 도입,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 정부가 공공목적 등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특허 제약기술을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것)의 제한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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