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 제보자 돕는 모금운동 시작
BRIC은 6일 오후 '논문조작 사건 제보자를 위한 모금운동'이라는 공지 글을 자체 홈페이지의 소리마당 게시판에 올렸다. BRIC은 이 모금운동을 12월 24일까지 전개할 예정이다(모금운동 참여하기).
BRIC의 정동수 부소장은 "BRIC이 나서서 1년째 실직 상태에 있는 제보자를 돕는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했다"며 "이번 모금운동이 황 박사의 논문 조작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제보자가 과학계로 떳떳하게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부소장은 "모금 액수보다는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해 제보자에게 연대의 뜻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도 "기왕 시작한 것인 만큼 모금 액수도 제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모아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계가 나서서 제보자 지원" 목소리 높아
이렇게 BRIC이 제보자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데에는 4일부터 게시판을 통해 진행된 토론이 한몫 했다. 지난 4일 ID '나대로'는 '우리 과학자는 무엇을 했나'라는 글을 통해 제보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문화방송(MBC) <PD수첩>도 자리를 찾아가고 있고 심지어 논문 조작에 가담했던 사람들조차 다시 대학, 연구소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며 "그러나 제보자는 여전히 이목을 피해 음지에서 방황하고 있다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그래도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했다는 것 때문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기도 한다"며 "제보자의 눈물 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황우석 사태의 출발이 과학계에서 이뤄졌으니 과학계가 나서서 결자해지 해야 할 것"이라며 "과학기술부, 과학기술한림원, 학회, 대학 등 과학계가 나서서 제보자에 대한 지원을 논의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제안에 ID '153'은 "땅에 떨어져 밟힐 뻔한 한국의 명예를 그나마 지킬 수 있게 한 것은 제보자"라며 "제보자가 당면한 문제인 경제적 곤란을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모금을 하자"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제보자는 왜 실업자가 되었나?
이런 제안은 제보자가 2005년 12월 6일 해직된 지 꼭 1년 만에 나온 것이다. 그간 <PD수첩>, 생명공학감시연대 등은 "제보자가 과학기술부의 압력으로 해직당했다"며 과기부에 사과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과기부는 수 차례에 걸쳐 해명자료를 내 "제보자에게 퇴직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며 "제보자는 2005년 3월 병원에 입사 후 근무하던 중 2005년 11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무단결근 상태였고, 5일 상급자와 협의 하에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제보자 K씨가 작성한 해직 경위는 과기부의 해명과 전혀 다르다.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한학수 PD가 황우석 사태를 정리한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사회평론 펴냄)에서 해당 부분을 발췌한다.
"우리 병원은 과기부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어" 2005년 11월 말경부터 1주일 동안 SBS와 <조선일보> 기자가 '제보자를 인터뷰해야 한다'며 병원장과 홍보부장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과장 허락 하에 거의 쫓기다시피 병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5년 12월 4일경 병원의 신경외과 제1과장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통보하였습니다. "오늘 오전 중으로 사표를 제출하지 않으면 파면을 하니, 와서 직접 사표를 작성하라." 일단 병원으로 가서 신경외과 제1과장과 대화를 했습니다. 이 과장은 "어제 병원장과 이야기를 했고 국가정보원 쪽으로도 알아보았는데, 네가 제보자라고 확인해 주더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표 요구는 부당합니다. 휴가로 돌려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려 주시면 안 됩니까?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으나, "파면을 당하면 다른 병원에 들어갈 수 없다. 자진 사표 받는 것이 너를 위한 우리의 배려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장은 "우리 병원은 과학기술부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어"라고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파면당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사직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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