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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꿈은 꿀 수 있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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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꿈은 꿀 수 있어야 하지만…

[한미FTA 뜯어보기 160 : 왜 한미FTA에 반대하냐고?(8)] 반대는 시작일 뿐

제가 다닌 중학교는 큰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주변을 산동네가 둘러싸고 있어서 수업이 끝난 후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산동네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았죠.

반에서 제일 공부를 잘했던 제 친구는 산기슭에 있는, 방들과 마당이 뒤섞인 기묘한 구조의 집에 살았는데 방과 후면 밤늦게까지 그 애 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향하곤 했어요. 산기슭 좁은 골목에서는 가로등 불빛만으로도 아이들이 공을 차고 강아지들이 깡충거리며 뛰어다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엔 커다란 공터들이 있었습니다. 띄엄띄엄 서 있는 밤의 가로등 불빛 사이에 시커멓게 뚫린 공터들은 음험해 보였습니다. 그 공터의 한편에 천막으로 지은 집이 있었죠. 바람이 불면 천막이 펄럭거리며 부풀고, 천막 앞에 널린 낡은 옷들이 나부꼈어요. 어쩐지 무서워 뛰기 시작하면 뒤에서 검은 개가 컹컹 짖었고요.

환한 대낮에 천막집을 지나치게 된 건 좀 나중의 일인데요, 파란색 방수 천으로 만들어진 천막집 앞에 엄마, 아빠와 아이들의 신발들이 놓여 있고 작은 싱크대와 살림도구들도 보이더군요. 날씨가 쨍쨍하게 맑은 날이면 천막 앞에 실내화가 마르고 있기도 하고 공터에는 상추나 파 같은 야채들이 자랐습니다.

제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6년 간, 우리 가족이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그 가족은 내내 그곳에 있었습니다. 비라도 오면 공터는 온통 진창이 되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거나 비가 많이 오는 밤이면 파란 천막집이 펄럭이다가 날려가진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높은 아파트가 이렇게 많이 지어지는데도 천막을 치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과, 어쩌면 아주 많은 가족들이 그러하리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땅을, 그러니까 지구의 일부분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을까 뭐 그런 것들도요.

천막에서 살던 가족들은 어디로 갔을까?

몇 년 후 그 동네를 지날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야채가 자라고 천막집이 있는 넓은 공터 같은 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더군요. 비어 있던 자리마다 빼곡히 들어선 건 커다란 주차장을 가진 외국계 프랜차이즈 식당들, 화려한 상가와 교회들, 그리고 무수히 많은 학원들이었고요.

천막에서 살던 가족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었습니다. 그들에 대해선 오랫동안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들은 다시 어딘가의 공터를 찾아냈을까요? 아니, 어쩌면 이제 어디에도 공터는 남아 있지 않는 건 아닐까요?

아파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산동네,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집들, 좁은 골목길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도 모두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건 온통 세련된 모노톤의 아파트뿐이었으니까요.

멋진 슈트를 입고 오피스타운에서 일하는 사람들, 통통한 뺨을 가진 건강한 아이와 잘생기고 부자인 아빠, 친구들이 부러워할 삶을 스타일링하는데 여념이 없는 날씬한 주부, 바로 이런 사람들이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입주자들인 모양입니다.

텔레비전은 매일 그들의 삶을 광고하잖아요. 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원래 살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도 그곳에는 누군가가 살고 있었는데 말예요.

고층빌딩이, 쇼핑센터가, 주상복합단지가, 화려한 낙원이 건설되고 있는데 굳이 몇 푼의 보상금을 손에 쥔 채 쫓겨난 사람들을, 가난에 쭈그러든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부모가 일을 나간 뒤 하루 종일 문이 잠긴 지하방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보여줄 필요는 없기 때문일까요.

한미 FTA에도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장밋빛 미래를 위해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고 합니다. 아주 새로운 일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지금까지도 우리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훨씬 빠르게, 체계적으로 진행될 뿐일 겁니다.

더러운 담요를 두르고 짐짝처럼 누워있는 지하철역 노숙자들의 존재에 익숙해졌듯 우리는 이 모든 것들에 이미 익숙한지도 모르겠군요. 때로 뉴스에서 생계 때문에 자살한 일가족의 이야기가 나와도 그건 그저 개인적인 불행으로 여겨질 뿐이지요.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이런 '개인적인' 불행들이 훨씬 더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FTA가 요구하는 건 '낙원 주위의 지옥'

평화롭게 농사짓는 땅에 미군기지를 세우겠다고 평택에 군대를 투입했던 지난 5월 4일, 멕시코의 작은 마을 아덴코에서도 무장경찰에 의한 엄청난 폭력이 벌어졌다는 걸 아세요?

역시 강제퇴거에 항의하는 주민들을 진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기 월마트가 들어설 예정이었거든요. 꽃을 파는 14살 소년이 철거에 항의하다 목숨을 잃었다는군요. 월마트를 짓기 위해서 국가가 재래시장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쫓아냅니다. 그렇게 자기 삶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이제 고작 몇 푼을 벌기 위해 월마트에서 일해야겠지요.

자본의 욕망을 위해서 국가의 이름으로 민중에게 내려지는 추방 선고. 찬란한 자본의 제국, 월마트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낙원 주위에 지옥을,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떨이로 이용할 수 있기 위한 무력한 노동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FTA는 그런 작업들을 쉽게, 빠르게 만들어주는 협정이지요. 많은 것을 소유한 자들이 더, 더, 더 많은 걸 소유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저들만의 협정.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후 13년 동안 멕시코의 부자들은 엄청나게 돈을 벌어서 세계적 순위를 자랑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절대빈곤층으로 몰락했습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국경을 넘다가 죽어가는 사람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비참한 판잣집에 사는 사람들.

그건 결코 개인적인 불행도, 개인적인 무능력의 결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FTA가 요구하고 만들어내고 있는 가난입니다.

FTA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FTA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생계형 자살이 세계 1위,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속도가 세계 1위라는 이곳 한국에서 가난은 이미 세대를 넘어 존재를 규정하는 방식이 되고 있으니까요.

물을, 전기를, 의료를, 교육을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상품으로 바꾸고 있는 사회에서 '가난하지만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가난하지만 그래도 미래를 꿈꾸는 삶' 같은 건 점점 더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요? 모든 권리를 오직 자본만이 가지고 있는 세계라니 말입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본만이 권리를 갖고 있는 이 세계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의 권리를 다시 구성해내는 것이니까요.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 평생 살아온 곳에서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는 권리, 돈이 없어도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 아프면 치료를 받을 권리, 누구나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지구 위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 권리를요.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 관련 소식지 <인권오름> 최신호에도 게재됐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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