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는 지난달 31일 이 사건의 피고발인 중 한 명인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을 9월 28일에 이어 두 번째로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이 부회장을 상대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 씨 등 4남매에게 에버랜드 CB가 증여되는 과정에서 비서실 등 그룹 차원의 개입이 있었는지를 집중 조사했다고 1일 밝혔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31일 오전 10시부터 1일 새벽 1시까지 15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이 부회장은 재용 씨 등이 에버랜드 CB를 인수할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차장을 지냈고 비서실장이던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의 뒤를 이어 1997년 비서실장을 지내 CB 인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지난번에는 본인 얘기만 들었으니 이번엔 우리가 얘기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변소할지 들어봐야 한다. 우리 보따리를 풀어놓을 차례"라며 비서실 개입 의혹에 대한 증거를 상당히 확보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검찰에서 에버랜드가 CB 발행을 결정하고 이재용 상무 남매 등이 CB를 배정받는 과정에 비서실이 관여하지 않았으며 실무자 차원에서 결정된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필요할 경우 이 부회장을 한 차례 더 불러 조사한 뒤 지난달 23일 귀국한 이건희 회장을 소환할 방침이다.
에버랜드 CB 편법증여 사건은 이 회사 이사회가 1996년 10월 CB 발행을 결의하고 2개월 뒤 CB 125만4000여 주를 재용 씨 남매들에게 배정하면서 주당 최소 8만5000원대로 평가되던 에버랜드 CB를 주당 7700원에 넘겨 헐값 시비를 낳은 사건으로, 재용 씨는 CB를 주식으로 바꿔 최대주주(20.7%)가 됐고 그룹 경영권도 확보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는 이학수 삼성 부회장을 상대로 에버랜드 CB 발행과정뿐만 아니라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서울통신기술의 CB 발행과정에 관여했는지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에버랜드 사건 외에 삼성SDS의 BW 인수, 서울통신기술의 CB 인수 등과 관련한 고발 사건에 대해 당시 비서실 차장이었던 이 부회장이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재용 씨 남매가 편법으로 CB를 배정받거나 BW를 인수하지 않았는지를 추궁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재용 상무가 1996년 12월 에버랜드, 서울통신기술 CB를 인수한 뒤 주식으로 전환해 수백억 원대의 재산증식을 했고, 1999년 2월 발행된 삼성SDS의 BW도 재용 씨 남매와 이학수 당시 삼성전자 대표, 김인주 삼성물산 감사에게 100% 넘어간 과정에 의혹이 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삼성SDS의 BW는 '긴급자금조달 계획 보고서' 작성 후 1주일 만에 발행과 인수가 끝나 그 과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이전 조사대상자보다) 더 부인하고 있다"면서도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며 지금까지 확보한 관련자들의 진술과 증거들을 토대로 비서실 개입 정황을 밝혀낼 계획임을 내비쳤다.
검찰은 이달 중 이 부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한 차례 더 불러 조사한 뒤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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