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산과 들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흔이 넘은 전쟁 세대부터 젊은이들에게까지 그것의 흔적은 어디서나 발견되었다. 특히 인간의 욕망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모든 욕망이 철저하게 금지된 유래 없이 독특한 공간인 비무장지대, 휴전선, 민통선 일대에서 그 경계는 뚜렷했다.
6월 25일부터 8월 20일까지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사진전 <경계에서(On The Line)>는 주명덕, 강운구, 구본창, 이갑철 등 대표적인 사진가 10명이 전쟁 60주년에 맞춰 작업한 전쟁이 만들어낸 '경계'에 대한 작업물이다. 작가들은 전쟁이 현재의 한반도에서 어떤 외형으로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경계'가 만들어낸 미묘한 사회 문화적, '심리적 파장'을 드러내고자 했다.
사진가들이 찍어낸 것은 기록보다는 해석이었다. 이들에 의해 전쟁은 클래식하게 또는 기발한 상상으로 재구성되고 해석되었다.
사진가 주명덕은 6.25 전쟁 중 치열한 전적지였던 다부동의 풍경을 특유의 검은 풍경으로 찍어냈고,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얼굴 포트레이트를 프레임 가득 담아냈다.
전시 개막 전부터 이목을 모은 사진가 강운구의 흑백사진은 그 고유의 연작사진과 서사적이면서 서정적인 이미지를 또 한 번 보여준다. 그는 동해에서 서해까지 일출과 일몰 사이에 철책선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을 기록했다. 그의 사진은 남한의 강화도와 북한의 개풍군을 한 병사의 실루엣으로 잇기도 하고, '정전 20697일'이란 글씨가 또렷한 사진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 이 사진들은 당초 계획했던 하루를 넘겨 이틀 동안 촬영됐다고 한다.
▲ 김화 ⓒ 강운구 |
▲ 철원 2010년 3월 26일 ⓒ 강운구 |
사진가 구본창은 박물관에 전시된 전쟁의 유물들의 포트레이트를 담아냈다. 지뢰와 탄두 등 무기류와 신발, 안경, 숟가락, 수통 등 병사들의 개인물품을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갑철 사진가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 지금 어떤 기운으로 살아있는지를 표현하고자 기갑부대와 천안함 희생자 영결식 등을 촬영했고, 최광호 작가는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나 국가의 우표를 주요 전적지 풍경과 함께 보여주어 과거와 현재를 잇고자 했다.
▲ 90mm 탄두 ⓒ 구본창 |
▲ 전쟁이후 15 ⓒ 이갑철 |
▲ 김윤기 상병 ⓒ 오형근 |
젊은 작가들의 기발한 사진들도 볼 만하다. 특히 사진가 난다는 임진각이나 전쟁기념관 등 구경거리가 되어 버린 전쟁의 파편을 모아 전쟁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 방관자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의 작품 중 '가칠봉, 1992'는 전적지인 가칠봉에서 1992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수영복 심사가 열린 코믹한 역사적 사실을 이끌어냈는데, 당시 미스코리아 미에 선발됐던 탤런트 이승연씨의 수영복 입은 모습에 작가의 얼굴을 합성해 놓고 한 군인이 지켜보는 장면을 연출했다.
▲ DMZ2010_1 ⓒ 고명근 |
▲ 전쟁과 평화 ⓒ 난다 |
이번 전시는 매년 고루하게 되풀이되던 레퍼토리를 벗어나 10명의 예술가로 하여금 그 고유의 시선으로 한국전쟁의 현재 모습을 표현해 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또 원로 작가부터 젊은 세대 작가까지의 표현과 감각의 스펙트럼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진행과정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적극적인 국방부의 태도였다. 작가들도 한결같이 말하는 것처럼 "예전 같으면 이런 저런 이유로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작업들을 오히려 "관제로 보일까봐 걱정"하며 적극 지원해 줬다는 후문이다. 작가들의 표현방식을 존중하는 태도에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이 전시는 영국 런던의 한국문화원과 미국에서 전시되고 참전 16개국의 국공립 미술관과 국립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될 예정이라고 전시 관계자는 밝혔다.
<참여작가>
주명덕, 강운구, 구본창, 최광호, 이갑철, 오형근, 고명근, 난다, 원성원, 백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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