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과학계, 시류에 너무 쉽게 영합"
김준민 교수는 최근 펴낸 책 <들풀에서 줍는 과학>(지성사 펴냄)의 마지막 부분에서 최근 과학계의 풍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식물생태학의 권위자인 그는 "21세기를 흔히 '생물학의 시대' 또는 '생명공학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생물학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운을 뗐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문제점 중의 하나가 시류에 너무 쉽게 영합한다는 것인데 최근에는 생명공학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정부, 학계, 그리고 재계도 생명공학 연구에 지나치게 매진하고 있다"며 "정부와 산업계가 지원하는 연구비조차 생명공학 분야에만 집중되고 있는데 이런 점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실험실에서 세포와 유전자 수준의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마이크로생물학에 속하는 유전학, 세포학, 생리학, 생화학 등은 '시대의 총아'로 각광을 받는 반면 그 대척점에 위치하는 매크로생물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진화학, 생태학, 분류학, 생물지리학 등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김 교수는 이어 "마이크로생물학 분야의 연구 결과는 상업적 이익과 직접 연결돼 굳이 국가가 지원하지 않더라도 든든한 후원자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데 반해서 매크로생물학 분야는 그런 상업적 활용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오직 정부의 지원으로만 연구할 수 있다"며 "선진국이 그동안 매크로생물학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이런 사정 탓"이라고 설명했다.
"너도나도 줄기세포 연구…우리가 정말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소외"
김준민 교수는 또 최근 줄기세포 연구에만 초점을 맞추는 생명공학 바람에 '거품'이 있음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그처럼 잘 나간다는 생명공학에서도 우리가 세계적 수준까지 도약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며 "요즘 세태처럼 너도나도 줄기세포 연구에만 매달리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연구분야가 소외되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동식물종을 활용하는 연구야말로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연구를 위해서는 생명공학과 생태학이 모두 동원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인삼이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인삼보다 약효가 더 탁월하고 효능을 인정받는 이유가 뭔지를 알기 위해서는 생명공학자, 화학자의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인삼이 왜 그런 특이한 기능을 갖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생태학자의 연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산림 복원에 생태학자들이 앞장서라"
김준민 교수는 이밖에 자신이 평생을 바친 생물학 연구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후학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김 교수는 "1세대 생태학자로서 가장 아쉬운 점은 헐벗었던 산림이 푸르러지는 과정의 변화를 제대로 기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라며 "설악산, 지리산, 혹은 제주도에 제대로 된 '야외생물학연구실(Field Biological Station)'을 두세 곳 정도 개설했더라면 오늘날 우리나라 생태학은 훨씬 더 발전했을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수십 명의 연구자가 사시사철 상주하면서 생태학 관련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산림, 갯벌, 늪지 등 귀중한 자연생태계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했더라면 요즈음 제기되는 중요한 환경문제에 대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어 후학들이 북한의 산림 복원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거듭 부탁했다. 그는 "산림녹화 사업을 하면 홍수, 가뭄 등의 피해가 줄어들기 때문에 농업에 적지 않은 혜택이 돌아간다"며 "이 사업이야말로 실질적인 차원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을 돕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생태학자들은 과거 남한에서 산림녹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했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북한 산림녹화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를 포함한) 1세대 또는 1.5세대 생태학자들부터 과거의 경험을 반추해 북한의 산림녹화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문서를 남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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