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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의 '지각 고백'은 '책 광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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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의 '지각 고백'은 '책 광고용'?

메르켈 독일 총리도 나서서 '말년 고백' 힐난

독일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의 말년이 '오욕의 세월'로 채워지고 있다. 그가 17살 때인 1944년 나치 독일군 가운데 가장 악명 높던 친위대에 근무한 사실을 62년만에 털어놓자, 독일 문학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서전 발간 직전 이같은 고백이 나왔다는 점에서 '책 광고'를 위해 '노욕'을 부린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증폭되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좀 더 일찍 그의 모든 과거를 알기 원했다"

특히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 19일 "그라스의 '뒤늦은 고백'은 순전히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광고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맹비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마저 21일 "우리는 좀 더 일찍 그의 모든 과거를 알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그라스의 '말년 고백'에 대해 힐난했다.
▲ 그라스의 뒤늦은 '나치 전력 고백'이 '책 선전용'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FAZ

독일 ARD 방송의 심야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한 울리히 비케르트도 최근 그라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이제야 고백을 했으며, 왜 좀 더 일찍 고백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라스의 고백과 이에 대한 논란이 생중계된 덕분에 자서전은 그야말로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

당초 9월 초 시판될 예정이던 그라스의 자서전 <양파껍질을 벗기며>는 독일 유력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FAZ)>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밝힌 '나치 전력'이 화제를 모으자 이번달 16일로 대폭 판매 개시일이 앞당겨졌다.

1쇄 15만 부는 발매 이틀만에 매진됐으며, 번역출판권도 이미 12개 국으로 팔려나갔다. 독일의 일간지 <빌트>는 "그라스는 독일어판 인세로만 최소 170만 유로(약 20억4000만 원), 그리고 여기에 외국 판권료를 덤으로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빌트>는 나아가 "독자들의 75%는 그라스의 '나치 전력 고백 파문'으로 자서전 발간 소식을 알게 됐고, 상당수가 '묻지마' 구매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그라스의 '고백'은 '책 광고용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독일 출판계를 중심으로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책 선전' 같은 그라스의 답변들

그도 그럴 것이 그라스는 "왜 이제야 고백을 했느냐"는 질문에 "책이 출간됐으며, 그 책을 보면 알 수 있다"는 '책 선전' 같은 '군색한' 답변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21일 요약 보도한 비케르트와의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문답들에서 그라스의 '억지 해명'이 잘 드러난다.

비케르트 :그라스 씨, 왜 이제야 고백을 했나요? 그리고 왜 좀 더 일찍 고백하지 않았나요?

그라스 : 그같은 사실을 말하고 싶었으나 억눌렀었죠. 나 자신도 (그 질문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댈 수가 없어요.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그같은 사실을 담아 두고 있었죠..

비케르트 : 당신의 문집 속에서 지난 1967년 이스라엘에서 당신이 매우 중요한 연설을 했던 것을 발견했어요. 그 연설문에서 당신은 14살 때 히틀러 소년대원이었던 사실, 또 16살 때 나치군에 입대했으며, 17살 때 전쟁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들을 결코 은폐하지 않았다고 쓰고 있는데요, 나치 친위대 병사였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는 없었나요?

그라스 : 언급할 수도 있었겠지요. 나도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하고 있는데요, 내 책에 왜 그 문제에 대해 침묵했는지를 포함해 자세히 썼습니다. 그 책을 지금 구해 볼 수 있으니, 독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내 책을 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케르트 : 당신은 아무 것도 당신의 '기억의 짐'을 가볍게 해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좀 더 일찍 고백을 했더라면 '기억의 짐'을 가볍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라스 : 그래요.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이 책을 쓰면서 한 일입니다. 누군가는 그 고백이 너무 늦었다고 말하겠지요. 이제야 고백을 하게 됐는데, 나를 심판하고 싶은 사람들은 심판하겠지요.


<슈피겔> "미군에게는 1945년에 이미 친위대 복무 사실 시인"
▲ 그라스의 지문 날인이 찍힌 미군 서류. ⓒ슈피겔

<슈피겔>지는 또 그라스가 1945년 전쟁포로가 됐을 당시 미군에게는 자신이 나치 친위대원이라는 사실을 시인한 문서들을 단독 입수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 문서들 중에는 그라스의 지문 도장과 함께 그라스를 나치 친위대 소속 제10 기갑사단의 소총수로 기재한 서류도 있다.

이 서류에 따르면 그라스는 1946년 4월24일 포로수용소에서 일한 대가로 107달러 20센트를 받고 풀려났다.

또다른 서류에는 1944년 11월 10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Waffen SS(나치 친위대)'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에 대해 <슈피겔>은 "그라스가 친위대에 모집된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슈피겔>은 또 "최근 발견된 이 문서들은 나치군에 관한 기록들을 관리하는 기관에 보관돼 있다"면서 "나치군은 전쟁 말기 인사자료들을 대부분 파기했기 때문에, 나치 친위대에서 그라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기록한 또다른 문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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