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대자동차 공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인해 조금씩 들썩이고 있습니다. 울산·아산·전주공장의 비정규직 교섭위원들이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에 동시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공장을 순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25일 대법원이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관계상의 제 이익에 실질적인 지배력 내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 내지 단체교섭의무를 지는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습니다.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따라 금속노조와 현대차 아산·울산·전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합 활동·고용안정·노동시간·산업안전보건·복지후생 등 현대자동차 원청회사가 실질적으로 사용자로서의 지위에 있는 80개 조항의 요구를 확정하고 지난 6월 3일 현대자동차에 단체교섭을 요구하였습니다.
현대자동차 회사는 6월 10일과 14일 울산과 아산공장에서 열린 1·2차 교섭 모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22일 전주공장에서 3차 교섭이 있지만 현대차는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대 재벌에게는 대법원의 판결도 '지나가는 개가 짖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진짜 어머니, 진짜 사용자
어떤 사람의 차를 다른 사람이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고 칩시다. 배상책임이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운전은 다른 사람이 했지만 배상 책임은 차를 빌려준 차주에게 있습니다. 원청사용자성 인정인 셈입니다. 하다못해 이런 자잘한 교통사고도 진짜 사용자를 찾는 게 세상의 상식입니다.
올해 금속노조 비정규직 교섭의 핵심은 원청 사용자성입니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통근버스를 이용하고, 똑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노동을 하고,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합니다.
작업 내용도 똑같습니다. 왼쪽 볼트는 정규직이 조이고, 오른쪽 볼트는 비정규직이 조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이 노동을 해서 남는 이윤은 오로지 현대차와 기아차 등 원청회사가 챙깁니다. 그렇게 해서 현대차는 작년 3조 원, 기아차는 1조5000억 원의 순이익을 남겼고, 올해는 이를 훨씬 뛰어넘을 예정입니다. 원청회사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같은 사용자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솔로몬의 재판이 나옵니다. 한 아이를 놓고 두 어머니가 서로 자기 아들이라 우깁니다. 솔로몬이 판결을 내립니다. "이 아이를 공평하게 둘로 나눠 가지라." 진짜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를 양보합니다. 가짜 어머니야 아이가 죽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진짜 어머니가 가려집니다.
2006년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비정규직이 라인을 멈췄습니다. 라인을 세우니 피해가 발생하기 마련. 여기서 진짜 사용자가 누구인지 가려집니다. 피해가 발생하든 말든 별 상관이 없는 하청업체 사장은 가만히 있고 현대차가 난리가 났습니다. 관리자들을 동원해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파업이 끝나자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소·고발했습니다.
누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제 사용자임이 명백히 드러난 것입니다.
교섭 요구에 반응없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서야
굳이 이런 몇 가지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원청회사가 사용자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당연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에 대해 현대중공업 원청이 사용자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현대자동차는 비정규직의 교섭요청에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원청이 실질적 사용자라는 당위성만을 가지고 "교섭에 나오라"는 요구만 해서는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대기업들은 아직까지 이윤창출에는 눈이 멀어 있지만 윤리경영이나 양심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천민 자본이기에 그렇습니다.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는 순간에도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고생하며 일만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차없이 잘라버립니다. 나아가 호시탐탐 정규직의 구조조정을 노리던 자본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말'로 해서는 절대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지도, 교섭에 나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옛말에 "무는 개를 돌아본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리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라고 외친들 자본들에는 귀로 흘려듣는 말일 뿐입니다. 각 지회를 넘어서 그 자본에 속해 있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야 합니다.
원청 사용자 인정 요구는 노조 강화의 발판
그 다음은 금속노조의 관심과 지지입니다.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노동기본권마저 수세에 몰려 쩔쩔 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노동조합은 조직력을 강화할 새로운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비정규직 투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지회들이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로 정규직과 하나가 될 때 노조는 조직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입니다.
과거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는 노력이 실패한 후, 수년 동안 소극적인 활동을 지속해 왔습니다. 물론 '정규직화 쟁취'보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 약간은 후퇴한 것 아니냐는 자괴감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금속노조도 정권과 자본의 탄압으로 약화되는 걸 감안하면 그다지 실망스러운 요구는 아닙니다.
금속노조가 원청 사용자성 의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원한다면 충분한 성과를 내리라고 봅니다. 또한 이 싸움은 최근 파견직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계획을 막아낼 수 있는 적절한 시도이기도 합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가 비정규직을 없애고 불안정 노동을 끝내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현대자동차에 촉구합니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즉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교섭에 나오십시오. 계속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교섭과 절규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기계를 멈추고 라인을 세워 진짜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가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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