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시를 쓴 노동자 출신 시인 박영근 씨가 11일 오후 8시 45분 서울 백병원에서 4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전북 부안 출신으로 전주고를 중퇴한 고인은 상경해 노동자로 일하다가 1981년 동인시집 <반시(反詩)> 6집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흔히 '최초의 노동자 시인'으로 불렸고, 그의 뒤를 이어 1980년대에 박노해, 백무산, 김해화, 김기홍 등 노동자 출신 시인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노동문학'이 꽃을 피웠다.
고인은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동문화패 '두렁' 등에서 활동했고, 인천민예총 사무국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과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1994년에 제12회 신동엽창작상, 2003년에 제5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1980년대에 대학가에서 널리 읽힌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1984)를 비롯해 <대열>(1987), <김미순전(傳)>(1993),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1997), <저 꽃이 불편하다>(2002) 등 다섯 권의 시집을 남겼고, 시평집 <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2004)를 펴내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됐고, 장례는 15일 오전 8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시인장으로 치러진다. (전화) 02-590-2135.
고인이 남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시는 다음과 같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百濟. 6
부르네 물억새 마다 엉키던
아우의 피들 무심히 씻겨간
빈 나루터, 물이 풀려도
찢어진 무명베 곁에서 봄은 멀고
기다림은 철없이 꽃으로나 피는지
주저앉아 우는 누이들
옷고름 풀고 이름을 부르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어널널 상사뒤
어여뒤여 상사뒤
부르네. 장마비 울다 가는
삼년 묵정밭 드리는 호밋날마다
아우의 얼굴 끌려 나오고
늦바람이나 머물다 갔는지
수수가 익어도 서럽던 가을, 에미야
시월비 어두운 산허리 따라
넘치는 그리움으로 강물 저어가네.
만나겠네. 엉겅퀴 몹쓸 땅에
살아서 가다가 가다가
허기 들면 솔닢 씹다가
쌓이는 들잠 죽창으로 찌르다가
네가 묶인 곳, 아우야
창살 아래 또 한 세상이 묶여도
가겠네, 다시
만나겠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