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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 변해야 산다…'현실의 벽' 깰 새 방향 찾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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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 변해야 산다…'현실의 벽' 깰 새 방향 찾을 것"

환경운동연합 떠나 새 둥지 차린 환경운동가들

"10년 넘게 환경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한 벽'에 맞닥뜨린다는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 환경운동 스스로 정리할 필요가 느꼈다."

지난 연말 환경운동연합을 떠난 중견 환경운동가 7명이 오는 26일 새로운 활동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 새로운 환경단체가 아닌 연구소를 표방한 것도 이채롭지만 더욱 더 눈길을 끄는 것은 7명 개개인의 면면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난 수년간 환경운동연합의 중요한 활동을 이끌어온 '일당백'의 환경운동가들이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의 2세대 활동가의 맏형 격이었던 박진섭(42), 환경운동연합 안살림을 챙겨온 김미현(40), 수년간 환경운동연합의 전략을 짜온 명호(38), 골프장 반대 운동을 이끌어온 황호섭(35), 생태도시 캠페인을 주도해온 박항주(35),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운동과 삼보일배의 실무를 도맡아온 장지영(33),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반대 운동의 이승화(27). 개개인이 지난 수년간 한국 환경운동의 산 증인들이다.

한국을 대표하던 환경운동가들이 잠시 현장에서 거리를 두고 호흡을 고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사로 서울 거리 곳곳이 뿌옇던 18일 이들이 새로 둥지를 튼 마포구 합정동 426번지를 찾았다.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100여만 원의 월세를 주고 빌린, 마당이 넓은 사무실은 환경운동가의 새 보금자리로 썩 잘 어울렸다. 26일 창립총회 준비로 분주한 한 편에서 박진섭 부소장을 만났다.

***"환경운동의 논리만으로는 환경문제 해결 한계…폭넓은 시야 필요했다"**

먼저 환경단체가 아닌 연구소를 표방한 이유를 물었다. "연구소 형태로 가자고 처음 주장한 사람이 바로 나다. 처음에는 후배들이 많이 당황했지만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들 공감을 했다. 10여 년 이상 현장에서 활동을 하면서 풀리지 않는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번쯤 정리하는 일이 필요했고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느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이었을까? 얘기의 초점은 앞으로 며칠 후면 완전히 방조제가 막히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돌아갔다. "10년 동안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운동을 해왔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새만금 문제'는 환경운동의 논리만으로는 해소가 안 되겠구나, 하는 답답함이 고개를 들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전라북도민을 설득하는 일인데 '새만금 갯벌이 중요하다', 이런 환경운동의 핵심 주장만으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박진섭 부소장은 말을 계속했다. "새만금 문제는 기본적으로 전북도의 경제 문제인데 그것까지 고려하는 환경운동의 종합적 전략이 없었던 셈이다. 이제 환경운동 역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전략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새만금 문제가 그 단적인 예다. 생태계 파괴에 대한 반대만을 절대 가치로 내세우는 환경운동은 이제 변해야 한다."

***"기존 환경운동 관성으로는 한계…전문성, 대안에 대한 열망, 지구적 시각 가져야"**

박진섭 부소장은 새로 시작하는 운동이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도 내놓았다. "환경운동,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은 지 15년이 넘었다. 초창기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은 커진 반면 활동의 에너지가 소진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현장의 실천과 경험을 정리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한 '희망제작소'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것일 텐데,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박진섭 부소장은 기존 환경운동의 한계를 다른 측면에서 또 지적했다. "1990년대에는 환경운동이 퍼포먼스를 하면 언론이 사진을 크게 찍어서 보도해줬다. 하지만 지금 그런 환경운동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폭로, 고발만으로도 환경운동이 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됐지만 이제 그런 방식만으로는 대중을 설득하지 못 한다. 더 깊이 있고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태지평'이 생각하는 새로운 환경운동은 무엇일까? "우선 환경운동이 전문역량을 쌓아야 한다. 환경문제를 지적하는 데서부터 대안을 내놓는 것까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당장 '황우석 사태'에서 환경단체가 제 역할을 한 게 뭐가 있나? 생명공학의 사회적 문제는 갈수록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준비를 하는 환경단체는 없다. 본격적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개발압력이 5~10년 내에 본격화 될 텐데 환경운동이 지금부터 손 놓고 있으면 또 그때 가서야 반대운동하는 수밖에 없다."

환경운동의 시야가 국내에 제한돼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국제적 시야를 가지지 않고서는 환경문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생태지평'에서는 각종 환경 관련 국제조약, 국내 환경법, 국내 환경정책의 연속성과 불일치를 검토해볼 계획도 갖고 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지구적 차원에서 또 국내적 차원에서 환경문제는 어떻게 변해왔고 또 그에 대한 지구적, 국내적 대응은 어땠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야 앞으로의 과제가 설정될 수 있지 않겠는가?"

***"환경연합 내부 갈등은 작은 이유일 뿐…환경연합과 경쟁관계 아니다"**

뒷얘기에 관심이 안 갈 수 없었다. 이들이 따로 둥지를 차린 데는 환경운동연합 내의 갈등도 한몫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사무총장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 환경운동연합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더욱 더 증폭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줄지어 중견 환경운동가들이 환경운동연합 문을 나선 데는 이런 이유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진섭 부소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런 갈등이야 어느 조직에서는 있지 않느냐? 더구나 환경운동연합 같은 큰 조직에서는 그런 갈등이야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내부 갈등보다는 새로운 운동에 대한 필요성이 더 절박한 게 환경운동연합을 떠나게 된 큰 원인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 그런 고민을 자주 공유했던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행동을 같이 하게 된 것일 뿐이다."

이런 배경이 환경단체가 아닌 연구소 형태를 차리게 된 원인으로도 작용했을까? 박진섭 부소장은 부인하지 않았다. "사실 환경단체가 아닌 연구소를 지향하는 데는 기존의 환경운동연합과 경쟁관계라는 인식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필요하다면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와 공동으로 작업도 같이 할 생각이고 또 지원할 일이 있으면 지원도 할 생각이다."

***"1~2년은 배고플 생각해야지. 조만간 회원 500~600명의 튼실한 조직 될 것"**

아직 정식으로 '살림'을 차리기 전이지만 벌써 100여 명의 회원이 확보돼 있다. 고철환 전 지속가능위원회 위원장, 김인경 원불교 부안교당 교무, 세영 신륵사 주지 스님(이상 공동 이사장),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정성헌 촌장(이상 고문),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이사), 전승수 전남대 교수(연구위원) 등의 임원도 위촉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아무래도 처음 시작하는 살림이 넉넉할 리 없다. "한 1~2년은 배고플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그 정도 고생이야 감수해야지. 하지만 조만간 회원 500~600명의 튼실한 조직을 만들 각오를 갖고 있다. 현장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연구원들과 학계의 전문 역량이 결합되면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한다."

'생태지평'은 2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안국동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창립총회와 기념식을 연다. 이들이 최근 힘이 부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환경운동에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목소리 높여 기자를 배웅하는 환경운동가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02-338-9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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