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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새만금, 바그다드…'진짜 예술'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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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새만금, 바그다드…'진짜 예술'이 여기 있다"

[화제의 책]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우리가 1980년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그린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노동해방도', '장산곶매'를 이야기해야 한다. 1990년대에 환경운동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인들은 '쓰레기들', '펭귄이 녹고 있다', '우리는 당신을 떠난다'와 같은 그의 작품들을 알고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기 직전 바그다드에는 '야만의 둥지'라는 그의 걸개그림이 걸렸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최병수'라는 이름이 올랐지만 정작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현대성의 형성-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현실문화연구 펴냄)와 같은 문제작을 썼던 현직 목수 김진송이 만났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현문서가 펴냄)는 최병수가 숨 가쁘게 달려 온 지난 20년을 되짚어보는 책이다.

***목수가 화가가 돼 1980년대 미술운동의 상징으로**

1960년생인 최병수는 전수학교를 2년 다니다 그만두고 세상살이에 뛰어들었다. 화가가 되기 전 그의 직업은 무려 열아홉 가지다. 중국집 배달원을 시작으로 해 전기공, 웨이터, 막노동꾼, 배관공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가졌던 직업은 비닐하우스를 지어주는 목수였다.

1986년 그림을 그리던 대학생 몇몇과 술친구로 어울리게 됐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다니던 게 큰 인연이었다. 감은 안 왔지만 데모 얘기도 들었다. 그들로부터 신촌에 벽화를 그리는데 사다리를 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일당도 안 준다고 해서 고사하던 그는 결국 여학생 셋을 앞세운 설득에 넘어갔다. 벽화와 인연은 이렇게 맺었다.

신촌의 벽화가 지워진 뒤 최병수는 몇몇 대학생들이 자기 집 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일에 동참했다. 군사정권이 이런 움직임을 그냥 둘 리가 없었다. 결국 그도 경찰서에 끌려갔다. '사다리 짜주러 갔다가 진달래 몇 개 그린 게 전부인' 그를 경찰은 '화가'로 만들려고 했다. 그는 버텼다.

"둘이서 30분을 버티고 앉아 있었어. 그 형사도 이상한 고집을 피우데. 나를 화가로 적지 못하면 자기도 못 나가고 나도 못 나간다는 거지. 그렇게 서로 버티다가 우스운 생각이 들었어. (…)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그랬더니 형사가 조서에 '화가' 이렇게 찍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농담을 섞어서 나보고 관제화가라고들 했지. 나를 화가로 만든 건 경찰서야. 난 정부가 인증한 공식화가라고." '화가' 최병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때부터 최병수는 이른바 '민중미술'을 하던 화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했지만 정식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터라 물감도 못 다루고 그림도 못 그렸다. 그림도 보러 다니고 습작도 했다. 목수로 일하면서 뭔가 새기는 데 자신이 있었던 터러 1987년부터는 판화도 본격적으로 했다. '무늬'만 화가가 '진짜' 화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중미술을 하던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월간지 〈말〉도 즐겨 읽고 시인 김남주의 시도 읽었다. 점차 사회의 모순에 눈이 뜨이면서 분노가 쌓였다. 그림은 분노를 푸는 유일한 계기였다. 그러다 6월 항쟁이 시작됐다. 6월 9일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다음날 신문에서 이한열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진을 본 그는 '피가 거꾸로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날 밤부터 작업이 시작됐다. 그가 밤새 판 이한열의 판화는 다음날 집회 때부터 학생들의 가슴에 붙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대형그림의 아이디어를 냈다. 이한열이 다친 지 1주일이 채 못 돼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 '한열이를 살려내라!' 대형 걸개그림이 걸렸다. '미술운동가' 최병수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잔치가 끝났다고?…새만금, 바그다드, 평택에서 계속한다**

'노동해방도', '장산곶매'를 그리다보니 세상이 변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하는데 최병수에게는 변한 게 하나가 없었다. 그는 진보적 진영의 무력감이나 혼란에 빠져들지 않았다. 이즈음에 아니 이전부터 그는 환경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걸개그림 '쓰레기들'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1997년 얼음조각 '펭귄이 녹고 있다', 2000년 새만금 해창 갯벌에 세운 솟대와 장승 등 일련의 작업을 통해 그는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세계적인 미술가로 부상했다. 그는 이미 1988년부터 환경문제에 눈을 떴다.

"1988년도였을 거야. 신문에서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임금투쟁을 하는 기사를 보았어. (…) 어이가 없었어. 원진레이온은 대표적인 오염산업이었잖아? 지금 자신들 폐가 녹아내리고 있는데 공장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파업이면 몰라도 무슨 임금 투쟁이야? 나는 노동을 하면서도 내 몸 하나는 잘 챙겼었지. (…) 그 노동자들이 임금투쟁이 끝나면 어떻게 일할 것 같아? 아무렇지 않게 일하면서 또 폐수를 버리겠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을 더럽히는 일들을 서슴없이 저지른다면 말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지."

그의 '잔치'는 2000년대에도 계속 됐다. 사패산 터널 반대운동('노 터널!),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세계정상회의를 위해 제작한 '잔치를 벌이시렵니까, 칵테일 잔', 베트남 푸엔성 평화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솟대', 2002년 한 해에만 그는 사패산, 요하네스버그, 푸엔성 등지로 전 세계를 누볐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03년 2월 14일, 그는 '오일깡패 부시'로 분장하고 광화문에 나타났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온 몸으로 전쟁을 막겠다'며 이라크 바그다드로 떠났다. 그리고 걸개그림 '야만의 둥지'를 바그다드에 남기고 병을 얻어 돌아왔다. 하지만 병든 그를 세계는 가만두질 않았다. 바그다드를 떠난 직후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시작했다. 한없이 슬펐다. 희생된 이라크 어린이를 그린 '너의 몸이 꽃이 되어'와 동명의 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 너의 몸이 꽃이 되어, 누천년 누만년 / 너의 넋이 꽃이 되어 / 너의 넑이 꽃이 되어."

***"비로소 졸업장을 받은 기분이 들 것 같다"**

2004년 9월 최병수는 결국 피를 쏟고 쓰러졌다. 암세포에 잠식당한 위의 60%를 잘라냈다. 1986년부터 20년 동안 그야말로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 온 그에 대한 보상치고는 가혹했다. 하지만 그는 살았다. 그리고 2005년 출판사에 먼저 전화를 했다. 출판사와 약속한 지 10년 만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이 책을 내자고 제안하면서 "이 책이 나와야 비로소 졸업장을 받은 기분이 들 것 같다"고 고백했다.

처음에 '대담'으로 꾸릴 생각이었던 김진송은 결국 '노동자였던 목수' 최병수가 '화가가 된' 최병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김진송의 목소리는 철저히 낮췄다. 하지만 최병수와 반대로 미술계를 떠나 목수가 된 김진송도 목소리를 높일 때가 있다.

"이 사회에서 그가 머물러 있는 자리는 불안하다. 그는 20년을 줄곧 미술을 해 왔지만 미술계에서 그의 자리는 없다. 그는 줄기차게 운동을 해 왔지만 그 후광을 어깨에 두르지 않았다. 그건 그에게 향하는 아니 그를 보는 사회를 향하는 나의 불만이기도 하다. (…) 1980년대 미술운동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을 지금까지 펄펄 살아 있는 시대정신으로 지니고 있는 화가가 최병수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 인류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주의 미술가이자 실천적인 화가의 한 사람이 최병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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