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의 입에서 "이적 행위"라는 단어가 나왔다. 조금 있으면 "국보법(국가보안법)"이라는 단어도 나올 기세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적을 이롭게 했다'고 지적한 대상은 참여연대다. 한발 나아가 검찰은 참여연대의 "이적행위" 여부를 검토해 "국보법 적용 대상인지" 판단하겠다는 방침을 언론에 흘렸다.
수많은 '천안함 미네르바'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뉴스도 나온다. '천안함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전기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유포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쌓여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는 한나라당 주류의 핵심 정두언 의원의 분석이 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상황인데, 벌써 60명의 '천안함 미네르바'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중 17명은 불구속 기소가 됐다고 한다. 40명은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기소되는 누리꾼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쇄신파가 스스로 올려놓은 '기대치'…부응할 수 있을까?
그렇다. 지금은 한나라당 '쇄신파'가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고리타분한 당풍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 쇄신파 리더 격인 김성식 의원, "붉은 한나라가 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쳤던 홍정욱 의원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한나라당스러운"일 들이 "촌티"를 풍기고 있는 바로 지금 말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기대치를 훌쩍 높여 놓았다. '쇄신 연판장'에 이름을 올렸던 홍정욱 의원은 지난 9일 초선 의원 간담회에 참석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쏟아냈다.
"우리는 참보수의 메시지를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봐야한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검찰조사를 남발해 공안정국을 만들고, 북한과 전쟁불사의 의지를 보이는 것이 보수의 가치인양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헌정과 법치를 중시하면서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면서 반대의견을 억누르고, 안정적 성장과 점진적 변화를 주장하면서 전쟁불사의 원칙을 고집하는 것은 유연하고 신선한 보수가 아니다. 시대흐름 역행하는 교조주의적 우파와 수구적으로 회귀한 보수의 메시지를 근본적으로 정화하고 재정립해야 한다."
홍 의원 말대로 쇄신의 흐름이 이어질 수 있을까?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지방선거의 패인을 분석하며 "지나친 이념 공세 등에 대해 '너무나간 것 아니냐'는 생각은 했지만 여론조사 결과에 중독돼 별 생각 없이 넘겼다. '왜 당시에는 문제제기 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반성할 점이 있다"고 했다.
'반성'을 했다고 하니, 이제는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하는 일만 남았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지금 상황은 쇄신파들에게 시험대다. 선거 패배 후 촉발됐다 소멸된 다른 모든 쇄신 논의들의 운명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실제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참여연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사태 관련해 의견서를 보낸 사실이 알려진 후 한나라당은 전광석화의 속도로 '색깔론'으로 몰려가고 있다. 15일 대정부 질문에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우려스러운 수준의 발언을 쏟아냈다. '색깔론'에 묻혀 '쇄신론'은 쑥 들어갔다.
관건은 쇄신파의 '반성'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 여부다. 이쯤에서 초선 쇄신파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발언들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는 다음과 같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국방부 감사 결과 수많은 '조작' 사실이 드러난 지금, 시민사회 단체에서 다른 사실들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정부의 잘못 아니냐. 정부가 애초 국민들을 상대로 '400쪽'짜리 '외교용 천안함 보고서'를 보여주며 '북한 관련' 사실을 적극 설명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천안함 관련 전단지를 돌린다고 경찰에 연행된다'는 두려움을 국민에게 주면 되겠나. 국민들이 비웃고 있다."
참고로 두 번째 '기대치'와 관련해서는 비슷한 발언이 있었다. 김성식 의원은 9일 정부의 불심검문 완화 방침에 대해 "'누가 내 가방을 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국민에게) 주면 되겠나. 국민들이 비웃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자각하는 정치인들이 이번에 혁신의 리더십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드컵 북한전 응원하면 잡아갈까"
14일 기자와 대화했던 33세의 '평범한' 회사원 이모 씨의 발언을 소개한다. 14일 기자와 대화했던 그는 대뜸 "이러다가 월드컵 북한전 응원한다고 하면 잡혀가는 것 아냐"라고 물었다.
평균 정도의 시사 감각을 가진 그는 최근 한 기업체에 경력직으로 들어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문 볼 시간도 없다던 이모 씨의 농담이 기자의 귀에는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쇄신파'가 그토록 귀담아 듣고 싶어하는 '민심'은 이런 지경이다.
어떤가. 지금, 한나라당 쇄신파가 나서서 '한나라당스러운 당풍'을 혁파할수 있는 적기가 아닌가? 미네르바 구속, 방송인 김제동에 대한 압력, '회피연아 동영상' 유포자에 대한 고발 등은 모두 지난 일이고, 천안함 관련 누리꾼에 대한 조사와 참여연대 사태는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쿨(cool)보수'를 주장하는 홍정욱 의원의 주장을 친이계 정옥임 의원은 "자칫하면 꼴보수로 들릴 수 있다"며 깎아내렸다. 지금이야말로 한나라당 내에도 '꼴보수'가 아닌 '쿨보수'도 존재함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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