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의 '노마디즘(유목주의)'이 지식인 사회에서 회자된 지도 10년 가까이 된다. 심지어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가 미래 인류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유목하는 인간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몽골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몽골 출신 영화감독인 비얌바수렌 다바와 독일인 영화감독인 리자 라이쉬가 같이 쓴 〈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김라합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서양의 눈을 통해 습득된 '유목'의 이미지가 얼마나 편견에 가득 찬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가축 도살 이면에 깃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
2005년 10월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는 이색적인 영화 〈황국의 동굴〉이 눈길을 끌었다. 몽골 아르항가이 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바트출룬과 부에나의 가족이 초원에 버려진 개 한 마리를 만나면서 겪는 얘기들을 담은 영화다. 〈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는 이 영화를 찍는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가면서 '몽골의 진실'을 우리에게 알린다.
1999년 독일 뮌헨으로 영화를 공부하러 간 다바가 다시 몽골의 초원으로 돌아가 '몽골의 진실'을 알리는 데 주력하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본 몽골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분명 서양인이 만들었을 이 다큐멘터리는 몽골의 가축 도살을 비문명의 징표처럼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몽골에서 가축은, 모든 생명체의 존엄성을 알고 그것에 경외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숨을 거둔다. 우리는 도살을 하고 난 뒤에는 버터기름 등잔에 불을 붙인다. 우리가 지을 수밖에 없는 죄를 스스로 분명하게 의식하라는 뜻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짐승이나 송아지는 먹지 않고 신중하게 고른 다 큰 짐승의 고기만 먹는다. 늑대에게 죽은 가축의 고기는 먹지 않는다. 그 짐승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을 견뎌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살당하는 짐승의 피가 절대로 우리의 어머니인 대지에 닿지 않게 한다."
다바는 이런 몽골의 가축 도살에 독일에서 본 가축 도살 현장을 대비한다. "죽음에 내맡겨진 돼지들이 한 축사에 빽빽하게 몰려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류가 흐르는 막대기로 돼지의 머리에 충격을 주면 돼지들이 차가운 바닥으로 거칠게 쓰러지고, 쇠로 된 격자 막대기들 사이로 돼지들의 발굽이 죄어졌다. 피, 칼, 내장,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산업사회의 도살은 과연 칼질에 피와 내장이 튀기는 몽골의 가축 도살보다 더 '문명화'된 것일까? 다바는 이런 의문을 갖고 다시 몽골의 초원으로 돌아갔다.
***신발부터 집까지 자연에 대한 존경으로 가득**
이 책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바트출룬과 부에나의 가족이 겪은 어느 여름 초원의 얘기는 이와 같은 '유목의 진실'을 알린다. 낮은 생산성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유목생활에서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심 역시 필수적이다. 이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은 초원생활을 하면서 신고 다니는 장화부터 유목민들의 이동식 천막인 게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
"몽골 장화의 비밀은 신발 바닥의 맨 앞부분에 있다. 바닥 앞부분이 위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기 때문에 이걸 신으면 발을 뒤꿈치에서 발가락 쪽으로 부드럽게 구르면서 걸을 수밖에 없다. 손으로 만든 신발조차도 이런 식으로 자연에 경의를 표한다. 각이 지고 납작한 신발로 식물들을 짓밟아 뭉개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몽골 국민의 65%가 주거지로 삼는 게르 역시 마찬가지다. 광활한 초원 곳곳에 이동경로를 따라 집을 지어둘 만도 하건만 몽골 사람들은 생존의 근간이 되는 초원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작은 공간만 소유한다. 그나마 이런 소유마저도 몽골 사람들은 자연의 보살핌 덕분으로 여긴다.
"(이동을 위해 게르를 철거한 후) 바트출룬이 말한다. '나의 아름다운 땅 항가이야, 우리가 여름을 여기에서 보내게 해주어 고맙구나!' 부에나는 남편이 천막 안 난로가 있던 자리에 놓아 둔 돌멩이 세 개에 우유를 제물로 뿌린다. 이 돌들은 거기가 몇 달 동안 불이 있던 자리라는 걸 상징한다. 부에나는 마지막으로 달구지 바퀴와 말등자에 우유를 부린다."
***위기에 처한 몽골의 유목…초원과 교감 유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몽골 사람들의 유목생활은 위기에 처했다. 범지구적인 사막화 때문에 초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1년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하면서 도시와 초원 사이의 인구이동 제한이 없어져 너도나도 도시로 향하는 것도 지난 15년 새 변화한 모습이다. 특히 급격히 확대되는 빈부격차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또는 부자가 되고자 도시로 향하는 발걸음을 부추기고 있다. 바트출룬과 부에나 역시 이런 고민에서 예외가 아니다.
영화 〈황구의 동굴〉과 이 책은 몽골에 실제로 있는 '황구의 동굴'에 얽힌 전설을 모티프로 했다. 다바는 전설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바트출룬과 부에나의 여섯 살배기 큰 딸 난사와 초원에 버려진 개 조호르의 우정을 전면에 내세웠다. 난사와 조호르의 우정 역시 전설처럼 영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몽골 사람들이 초원과 교감하는 능력을 얼마나 계속 유지할 지에 달린 듯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