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23일 지금부터 40여 년 뒤까지 우리나라 경제의 잠재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아 눈길을 끈다. 정부가 잠재성장률 전망치를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 자체가 처음이다. 재경부가 그렇게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경제정책을 고민하는 증거처럼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를 앞으로 40여 년간의 미래를 수치로 단정적으로 전망하는 태도가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재경부는 이날 '참여정부 3년 경제운영 평가 및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그 일부로 '우리 경제의 미래 모습 전망'이라는 자료를 내놓았다. 재경부는 이 자료에서 현재 5% 수준인 우리나라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010년까지는 평균 4.8%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1~2020년에는 4.3%, 2021~2030년에는 3.1%, 2031~2040년에는 1.9%로 단계적으로 낮아지는 데 이어 2041~2050년에는 1.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전망치는 그동안 민간 전문가들이 밝혀 온 대체적인 잠재성장률 전망치에 비해 가까운 미래에는 더 높고, 먼 미래에는 더 낮은 편이다. 재경부가 이 전망치를 어떻게 계산해낸 것인지는 소상하게 밝히지 않아 그 구체적인 근거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의 지속 등으로 인구증가율이 둔화되고 경제규모에 비교한 자본투입 비율도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경제가 선진화되면서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낮아진 다른 나라들의 일반적인 경험도 고려됐을 것 같다.
그러나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경제적, 비경제적 변수들이 얼마든지 끼어들 수 있는 앞으로 40여 년간의 잠재성장률 전망을 10년 단위로, 그것도 복수의 시나리오나 '최저치~최고치'의 범위로가 아니라 단일의 퍼센트 숫자로 단정적으로 발표한 것은 무책임하거나 뭔가 의도하는 바가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2020년대까지는 그렇다 치고 2030~2040년대에 잠재성장률이 1%대가 된다는 예측은 국민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2020년 이후에는 우리 경제가 감당해야 할 인구의 절대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정도의 성장잠재력만 갖고 우리 국민들이 삶을 원활히 꾸려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잠재성장률 전망과 관련해 "현 시점에서 현재 있는 것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그 정도 수준으로 가겠다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더 높은 수준의 잠재성장률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소재부품산업을 어떻게 키워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 체질을 바꿈으로써 국내적 산업연관효과를 제고하고 잠재성장률을 얼마만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거나, 남북한 간 경협이나 경제적 통합이 얼마만큼 진전되면 성장잠재력 확충효과가 어느 정도 될 것이라는 등의 대안 시나리오 몇 개 정도는 덧붙였어야 하지 않을까?
여론의 향배에 둔감하다고 할 수 없는 재경부 관리들이 "봐라! 이대로 가면 앞으로 30여 년 뒤부터는 경제성장률이 1% 정도밖에 안 될 거다"라고 국민들에게 겁을 주는 발표를 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꼭 어떤 구체적인 의도는 아니더라도 재경부 관리들의 사고방식 또는 지향이 그 배경에 깔려 있을 것 같다. 그건 무엇인가?
그것이 국가경제를 책임지고 있다는 재경부 관리들의 사명감이기를 바라고, 그 사명감이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올바른 감각과 판단에 근거한 것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날 이례적으로 먼 미래의 잠재성장률 전망치를 밝힌 자료에서는 그런 사명감이나 고민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한덕수 부총리는 기자들에게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개방을 하고, 사회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총요소생산성을 높이고,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인력이 줄어드는 것에 대비해 능력을 확충하고, 투자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외국자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나 제도 등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섞이긴 했지만, '개방'과 '외국자본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제도의 변경'을 강조하는 태도가 읽혀지는 발언이다. 행여 재경부가 국내적 논의를 건너뛰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관료적으로 밀어붙이는 데 잠재성장률 전망까지 동원하려는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사실 개방을 해도 국내 소비시장만 내어주는 방식의 개방이라면 잠재성장률이 높아질 리 없고, 외국자본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도록 국민의 인식과 제도를 외자에 친화적인 쪽으로 변경한다 해도 온통 투기자본만 들어와 단기차익만 뽑아가게 한다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자본투입 확대 효과가 나타날 리 없다.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양극화 해소를 통한 내수기반의 확충, 일자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적 서비스 인프라의 구축, 국내적 연관효과가 적은 수출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대-중소기업 상생적 선순환 구조로 바꿔나가는 노력 등이 아닐까 싶다. 재경부가 중장기 전망 태스크포스를 통해 보다 정교한 전망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니, 그 결과에서는 보다 희망적인 대안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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